2025. 3. 3. 23:31ㆍ과학/과학사
그 문제의 파리 만찬회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1783년, 프랑스 전역에 기구 열풍이 불었다. 제지업을 하던 몽골피에 형제가 최초의 기구를 발명하여 그것을 프랑스 리옹 남쪽 교외의 아노네((Annonay))라는 곳에서 날린 것이 시작이었다. 이 거대한 풍선은 종이와 베옷으로 만들어졌고, 바닥에는 큰 구멍이 있었다. 지금, 기구는 그 가장자리에 있는 남자들이 들어 올렸고, 아래에 쌓인 짚 더미에 조심스럽게 불을 붙였다. 또한 기구 아래에는 승객이 탄 바구니가 설치되어 있었다. 승객은 바로 양, 수탉, 오리들이다. 풍선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밧줄이 풀려 기구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6천 명 정도의 구경꾼들은 처음 보는 광경을 보고 기뻐했다.
기구를 발명한 몽골피에 형제는 이론가가 아닌 실무형 사람들이었다. 기구를 개발한 동기도 상업 목적과 군사적 이용에 있었다. 그들이 만든 기구는 오늘날의 열기구인데, 형제는 물건을 태울 때 나오는 연기 속에 기구를 상승시키는 가스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이 가스를 '몽골피에 가스'라고 불렸다. 이윽고 경기 대회도 개최하면서 유인 비행을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유인 비행을 성공시킨 사람에게는 상금을 줬다. 또한 누가 먼저 상금을 타느냐도 화제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위험하므로 죄수를 태우려고도 생각했다. 1783년 11월 21일, 지원자 남성 2명을 태운 기구는 처음으로 유인 비행에 성공했다. 그 기구의 지름은 무려 15미터였다. 또한 부력을 만들기 위해 대량의 짚을 지름 1.8m의 철 냄비 위에서 태웠다. 2명을 태운 기구는 바람을 타고 8km 거리를 25분 동안 비행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일 후,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가연성 기체'인 수소를 이용한 기구가 유인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수소를 영국인 헨리 캐번디시가 발견하였고 라부아지에 의해 명명된 것이었다. 수소의 무게는 공기의 13분의 1이기 때문에 물건을 상승시키는 능력은 매우 높았다. 비행의 모습은 파리 시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40만 명이 지켜봤다고 한다. 이 수소 기구는 43km를 비행하여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에 압승했다. 게다가 상승 능력이 강력했기 때문에 크기는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최초로 유인 비행에 성공했다는 영예와 상금은 몽골피에 형제에게 돌아갔다. 이 기간에 미래의 기구에 대해 심의하는 위원회의 회원이 된 라부아지에는 수소의 장래성을 인정하고 대규모 생산에 따른 문제점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물질을 분해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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