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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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대성당 안의 파리, 양자
러더퍼드는 이렇게 비유했다. 런던에 있는 로열 앨버트 홀의 크기로 부풀어 오른 원자를 상상해 보자. 그러면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자핵의 크기는 벼룩 정도의 크기다. 또한 당시 신문은 원자핵을 찾는 것은 대성당 안에서 파리를 찾는 것만큼 힘들다고 쓰고 있다. 이 대성당 주변을 작은 파리가 날아다니는 그림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지만,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 원자를 대성당에 비유한다면, 원자핵은 모래알 하나에도 못 미치는 크기인 것이다. 원자 속은 거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는 러더퍼드의 주장은 옳았다. 바꿔 말하면, 우리 자신과 그 주변 세계의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거의 비어 있거나 공허하다.양자역학은 공간에서 입자의 정확한 위치를 예측할 수 없으며 다른 위치에서 입자를 찾을 확률만 예측할 수 있다..
2025.03.15 -
[과학] 원자를 연구하는 방법
20세기 초에는 원자가 가장 작고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물질이라는 생각은 부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크룩스관과 방사능의 발견은 원자보다 훨씬 작은 입자의 존재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문제는 볼 수도 없는 그런 작은 것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한스 가이거와 어니스트 마즈든이라는 두 동료와 함께 원자를 이용하여 원자의 성질을 밝히려 하였다. 러더퍼드는 방사성 물질이 붕괴 과정에서 두 가지의 매우 다른 방사선을 발생시킨다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알파 입자와 베타 입자이다. 이 중 더 무겁고 투과성이 약한 알파 입자를 탐침(조사하기 위한 물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러더퍼드는 서투른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실제 실험은 두 명의 동료에게 맡겼다..
2025.03.14 -
[과학] 수수께끼 같은 방사선
엑스선의 발견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은 자극을 받아 빛을 발하는 물질 중에도 엑스선을 방출하는 다른 물질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베크렐의 할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결정, 그중에서도 우라늄 염의 결정 수집가로 유명했기 때문에 베크렐은 우라늄 염을 실험에 이용했다. 먼저 우라늄 염의 결정을 잠시 햇볕에 쬐어 빛을 모은 다음 조심스럽게 포장한 사진 건판 밑에 놓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았다. 생각대로 결정의 자국이 감광판에 나타났다. 이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한 다음 이번에는 우라늄 염을 햇빛을 쬐지 않고 결정과 사진 건판 사이에 구리 십자가를 놓아 보았다. 지금까지 실험은 실험하기에 앞서 결정을 햇볕에 쬐어 빛을 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의인지, 파리가 유난히 흐렸기 때문..
2025.03.13 -
[과학] 생각 속에만 있었던, X선
물질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생각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였다. 실제 보이지 않아서 항상 논쟁을 일으켰다. 음속의 단위로도 유명한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하는 원자는 '생각 속에나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하처럼 생각한 과학자는 몇 명이었고, 1890년대 후반에는 대부분의 화학자가 수소, 헬륨, 탄소 등 모든 원소는 각각 고유한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음에 어떻게 발전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물리학자들은 이미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전기, 빛, 자력은 모두 간단한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이제 좀 더 흥미진진한 연구를 하고 싶었다. 물론 태양에 관..
2025.03.13 -
[과학] 화학자의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 각국은 식민지 시장을 두고 다투었다. 어느 나라도 확장 정책을 취하며 전쟁을 불사했다. 폭약은 개량되어 전례 없는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다. 수소 기구가 정찰과 폭격에 이용되었다. 독가스도 사용되었다. 염소가스 등 독가스가 무방비 상태의 병사들에게 쏟아졌다. 제1차 세계대전은 화학자의 전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물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황이 결정되었다. 파괴의 극한 상황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독일과 영국의 연구실에서는 대량살상무기의 연구가 계속 진행되었다. 원자폭탄은 20세기 물질 이해의 성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뿌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화학자가 개발한 독가스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어 무기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사용한 ..
2025.03.09 -
[과학] 로맨틱한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
라부아지에의 죽음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런던에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다. 그 이름은 험프리 데이비이다. 그는 1801년에 열린 첫 강연부터 극찬을 받았다. 강연은 당시 유행의 첨단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젊은이, 그리고 지적 호기심이 강한 낭만주의자들로 항상 가득 찼다. 행사장인 왕립연구소 앞 거리는 관람객들의 마차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런던에서 처음으로 일방통행으로 지정할 정도였다. 데이비는 화학자였고, 강연도 화학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성황은 실로 놀라웠다. 데이비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재능이 있었을 것이다. 약간의 폭발 실험을 선보이거나, 당시에는 아직 놀라움의 대상이었던 전기를 이용한 실험도 도입하면서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탈리아 파비아 대학의 물리학 교수였던 알레..
2025.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