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4. 22:33ㆍ과학/과학사
수소 기구를 날린 캐번디시가 처음에 수소를 추출한 방법은 금속에 산을 떨어뜨려 발생한 가스를 모으는 것이었다. 기구는 이 작업을 확대한 것이다. 실제로는 고철을 통에 채우고 여기에 산과 물을 더해 발생한 수소를 파이프로 풍선 안으로 보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이 방법에 따르면 다량의 수증기가 발생하여 종이로 만든 기구가 젖어 버렸다. 또한 산을 만들려면 초석이 필요했지만, 질산은 화약의 원료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건 바로 라부아지에였다. 이전에 캐번디시는 플라스크 안에 넣은 수소와 산소를 전기 불꽃으로 폭발시키면 물이 생성되는 걸 실험으로 증명했다. 여기서 바로 라부아지에는 물은 수소와 산소의 화합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반대로 하면 물은 수소와 산소로 분해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라부아지에가 생각한 것은 요컨대 산화철을 인위적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는 총신으로 사용되던 길이 1.2미터의 철관을 준비했다. 그것을 타오르는 석탄 속에 비스듬히 꽂아 가운데 부분이 빨갛게 될 때까지 가열했다. 그리고 총신에 물을 조금씩 주입해 나갔다. 물이 총신 안을 흘러가면 물속에 포함된 산소가 철과 반응하여 수증기와 수소가 혼합된 기체가 발생했다. 이 기체를 농축하여 순수한 수소를 추출한 것이다. 이 제조법에 자신이 있던 라부아지에는 나중에 사람을 30명 모아 그 앞에서 이 실험을 실증해 보였다.
프랑스 정부는 수소를 주입한 기구의 군사적 가능성을 바로 인정했다. 기구는 곧 적의 동태를 감시하려고 전장에서 사용하였다. 또한 나폴레옹은 영국 침공을 위해 '기구 부대'를 창설하였다. 이집트 원정에서 기구를 실전 배치하려고 했지만, 영국 함대의 넬슨 부제독이 사전에 파괴하여 실제로 활약할 기회는 없었다. 수소를 이용한 비행선은 독일에서 여객 수송에 사용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적의 감시 및 폭격에 사용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대서양 횡단 노선에 취항하였으나, 그 상징적인 힌덴부르크호의 폭발 사고로 안전성의 신뢰가 무너져 그 자리를 항공기에 양보하게 되었다.
힌덴부르크호 참사
1937년 5월 6일 목요일에 일어난 항공 역사상 큰 참사였다. 뉴욕 근교의 공군 기지에 착륙하려던 중 갑자기 폭발하여 화염에 휩싸였다. 이 사고로 희생자 36명의 숫자는 그리 큰 숫자는 아니지만 순식간에 불타버렸고 그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상징적인 항공 역사상 큰 참사가 되었다. 화재가 어디서, 왜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격렬한 화염은 가득 실린 수소 가스의 가연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제플린 비행선(힌덴부르크호도 그중 하나)은 수백만 마일의 비행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부상자도 내지 않은 안전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힌덴부르크호의 폭발 사고로 비행선을 이용한 여객 수송의 꿈은 사라졌다. 그러나 머지않아 항공기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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