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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신대륙에서 들어 온 새로운 식물 연구를 시작하다.

과학/과학사

by 도서관경비원 2025. 10. 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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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용한 식물이 주목받게 된 것은 이른바 「신대륙의 발견」이 계기였다. 이 발견이 인류 역사에 남긴 여운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지만, 금과 은의 채굴, 침략과 정복, 전쟁, 제국을 둘러싼 다툼 등을 제외하면 동물계와 식물계에 미친 영향은 혁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 발견 후 200여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유럽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그중에는 모험가도 있었고 정복자도 있었다. 그리고 정착민도 식민지 총독도 있었다. 신대륙의 발견은 유럽 사람들에게 유럽 밖에 있는 손대지 않은 자연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1687년, 아일랜드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였던 한스 슬론(Hans Sloane)은 3개월의 대서양 항해를 거쳐 처음으로 자메이카 섬을 목격했다. 총독 알베마르 공의 주치의로 부임했지만, 슬로언의 관심은 현지에 펼쳐진 대자연에 있었다. 그는 후년에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서인도 제도에 왔을 때, 거기서 목격한 것은 마치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슬로언은 자메이카 섬에 부임함으로써 그 자연에 대한 갈망이 충분히 채워지게 된다.

 

첼시 올드 처치

 

첼시 올드 처치에 있는 슬론의 기념비

 

   그러나 자연 관찰은 단순히 개인적 취미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계, 특히 식물의 세계에는 국가의 부가 잠들어 있었다. 유럽의 나라들은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그곳이 풍부한 자연의 보물창고라는 걸 알게 되었다. 후추, 고추, 토마토, 감자 등의 식물들은 유럽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자메이카 섬 주민들의 생활은 사탕수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착취였다. 그리고 거기에 영국인이 개입하자, 섬은 해적의 아지트에서 대영제국의 아지트로 변모해 갔다.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수많은 노예들이 끌려와 대규모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자메이카의 설탕 생산량은 정점 시기에는 연간 7만 7천 톤에 달했다. 설탕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면화와 담배가, 아시아에서는 차와 향신료가 유럽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 물자를 이송하는 배도 식물로 만들어졌다. 선체와 갑판에는 참나무, 돛에는 면, 밧줄에는 삼이 사용되었고, 선체에는 물을 튕겨내는 송진이 발라졌다.
 
   무역의 주체는 식물이었다. 그래서 각지에서 식물 조사가 진행되었다. 학문과 실리가 결합되어 슬로언의 의욕을 더욱 자극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메스티아이(동물 우화집)』의 식물판에 해당하는 『허벌(초목지)』이라 불리는 서적이 있었다. 로마 시대 그리스인이 쓴 것이 계승된 점은 같지만, 이 책에는 생활에 유용한 식물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식용, 향신료, 약용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예를 들어 무(라디시)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바람이 잘 통하는 따뜻한 곳에서 재배하기에 적합하며, 속 쓰림에 효과 있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질병을 치료하는 수단으로, 또는 생활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하려고 식물을 이용해 왔다. 그래서 『허벌』은 약초 도감으로도 귀중히 여겨졌다. 의사였던 슬론은 약효가 있는 식물을 찾아 식물 채집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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