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의 분열, 그에 이어 원자폭탄의 제조와 핵 발전의 개발 과정에서 펼쳐진 이야기에는 초기 기대를 배반한 사례가 많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원자폭탄이 평화로운 세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해진 적도 있었다. 핵 발전은 매우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전기 사용량을 신경 쓰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달콤한 꿈은 당연히 현재에는 단 하나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반면 전자 세계의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발전을 이뤘다.
1945년의 미국으로 시간 여행을 해보자. 마침내 긴 전쟁이 끝나고, 세상은 낙관주의와 물질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대중 소비 사회의 도래였다. 크룩스관의 기술을 계승한 진공관이 곳곳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40년대, 오락의 주역은 라디오였지만, 당시의 라디오는 말 그대로 진공관이 가득 찬 흉한 상자였다. 전화도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양쪽의 통화를 연결하는 교환대 기계 안에는 진공관이 가득 차 있었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 '콜로세우스'는 나치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기'가 생성한 암호를 해독하는 데 성공해 연합군 측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 '콜로세우스' 안에는 1,000개의 진공관이 들어 있었다. 진공관의 주요 역할은 전자 제어였다. 전류를 흐르게 하거나 차단하거나, 또는 전류의 증폭에 사용되었다. 진공관에는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고가이고 깨지기 쉬우며, 또한 대량의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에 내부 온도가 매우 높아진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전자 방출을 위해 진공 상태에서 금속을 가열하는 트랜지스터의 설계를 완성했다.이것이 오늘날 사용되는 트랜지스터의 원형이 되었다.
트랜지스터는 현재 사용되는 거의 모든 전자 기기에서 신호의 켜기·끄기나 증폭에 사용되고 있다. 트랜지스터의 개발은 양자역학 없이는 상상할 수 없었다. 쇼클리의 트랜지스터와 그것이 탄생시킨 디지털 프로세서 없이는 컴퓨터도 휴대폰도 현대 사회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5년,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 인텔의 창립자 중 한 명인 고든 무어는 칩에 탑재된 트랜지스터의 수가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다.
인텔에 따르면 매년 1천경(1 뒤에 0이 19개 이어지는 수)을 훨씬 초과하는 수의 트랜지스터가 출하되고 있다. 이는 지구상의 전체 인구 1인당 10억 개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윌리엄 쇼클리는 1956년 노벨상을 수상한 직후, 벨 연구소를 불편함과 원망의 마음을 남기고 샌프란시스코의 오렌지 농장으로 떠났다. 그처럼 재능 있는 연구자의 밑에는 우수한 인재가 끊이지 않았지만, 대부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쇼클리와의 인간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많은 인재가 떠났다. 그러나 쇼클리는 샌프란시스코에 남아 노력했다. 그 결과, 오렌지 농장이었던 그 땅은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 크룩스관: 『전기·전자』 관 속의 기체 압력이 수은주 압력 0.1mm 정도 이하인 방전관. 진공 방전의 시험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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