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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문화 외에도 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고대 문화 중 하나는 바로 바빌로니아 문화이다. 여기서 ‘바빌로니아’라는 용어는 시간적 제한 없이 사용되며, 수천 년 전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충적 평원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스인들은 이 지역을 메소포타미아라고 불렀으며, 이 말은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이다. 현재 이 지역 대부분은 이라크의 일부이지만,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은 튀르키예에서 발원한다. 인류는 이 지역―특히 페르시아만 근처의 저지대인 습지대―에서 이집트와 거의 같은 시기에, 약 기원전 3500년경 또는 그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에 문명의 문턱을 넘었다. 이집트를 둘러싼 사막은 침략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보호됐지만,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계곡의 개방된 평원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어려웠다.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역사는 주로 이 땅의 풍요에 이끌려 들어온 끊임없는 침략자들이 쇠퇴한 선조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문화를 흡수한 후, 다음 침략자의 파도에 의해 다시 정복될 때까지 부의 평온한 향유에 빠져 있었던 이야기이다.
 

이라크에서 발견한 점토판

 
기원전 3000년경, 바빌로니아인은 쐐기문자(상형문자와 유사한 종류의 그림 문자)에서 출발해 글자 체계를 개발했다. 하지만 글쓰기 재료로 선택된 재료는 그 자체로 특별한 제한이 생겨서, 그림 문자가 그 문자가 나타내는 대상과 전혀 닮지 않게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펜과 잉크를 사용하여 기록을 남겼지만, 바빌로니아인들은 처음에는 갈대, 나중에는 끝이 삼각형인 막대기를 사용했다. 이 도구를 사용하여 습한 점토에 긁지 않고 자국을 남겼다. 점토는 빨리 마르기 때문에 문서는 비교적 짧게 한 번에 모두 작성해야 했지만, 오븐이나 태양열로 단단하게 구우면 사실상 파괴되지 않았다. (이 방법은 나무껍질이나 대나무와 같은 부패하기 쉬운 재료를 사용했고, 문화의 초기 성취를 영구적으로 기록할 수 없었던 중국의 방법과 대조적이다) 필기구의 날카로운 끝부분으로 수직선을 그었고, 바닥 부분은 더 깊거나 얕은 삼각형 자국을 남겼다, 이 두 효과가 결합하여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이 있는 삼각형 모양, 즉 못과 유사한 형태(𒐕)를 만들었다. 라틴어로 '삼각형'을 의미하는 cuneus에서 유래한 이 필기 방식은 쐐기문자(cuneiform)로 불리게 되었다.
 
쐐기문자는 점토를 기록 매체로 선택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쐐기문자는 곡선을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그림 문자 기호는 다양한 방향으로 배치된 삼각형 모양의 조각으로 구성되어야 했다. 수직, 수평, 그리고 경사, 이 세 가지 유형에 추가로 다른 쐐기가 도입되었다. 이 쐐기는 오른쪽으로 열린 각도 괄호와 유사했으며, 필기구를 점토판에 기울여 잡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네 가지 형태의 쐐기는 모든 그림을 표현하려고 사용되어야 했다. 다른 형태를 그리는 것은 손이 너무 피로하거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상형문자와 달리, 쐐기문자는 이집트 문명의 말기까지 그림 글자로 남아 있었지만, 상형문자 기호는 점차 단순화되어 그림 문자 원형이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태양을 의미하는 옛 원형 문자에 가장 가깝게 표현한 것도 있으며, 이는 나중에 더욱 단순화되어 변형되었다. 마찬가지로, 물고기를 의미하는 기호도 점차 변형되었다. 쐐기문자의 전체적인 효과는 초보자에게는 “젖은 모래에 새겨진 새 발자국”처럼 보인다. 실제로 쐐기문자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이 글쓰기인지 단순한 장식품인지 알아낸 것은 지난 2세기가 지나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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