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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일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는 제조업: 장비, 유지보수, 그리고 반복되는 사고

by 도서관경비원 2026.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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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제조업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 제조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K-방산, 전기차, 반도체, 배터리까지 한국산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 제조업 강국으로서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이 화려한 성과의 이면에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제조업의 근간은 무엇인가. 흔히 기술력이나 인재를 꼽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소재·부품·장비, 이른바 '소부장'이 제조업의 실질적 뿌리다.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는 이 사실을 뼈아프게 일깨워 줬다. 그중에서도 장비는 소재를 부품으로, 부품을 완제품으로 변환시키는 핵심 수단이다. 아무리 훌륭한 소재가 있어도 그것을 가공할 장비가 없으면 제품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제조 현장에서 이 장비가 병들고 있다.


장비의 숙명 — 감가상각과 유지보수

장비는 사는 순간부터 비용이 발생하는 자산이다. 회계적으로는 감가상각을 통해 장비 구입비를 매년 분할 비용으로 인식한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조 원이 드는 시대에, 대기업의 감가상각비는 연간 수조 원에 달한다. 중소기업에도 장비는 원가 구조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이다.

 

그런데 감가상각이 끝난 장비에 대해 많은 기업이 착각을 한다. 장부가치가 0이 되면 마치 '공짜 자산'이 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노후 장비일수록 에너지 효율은 떨어지고, 불량률은 올라가며, 고장은 잦아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안전사고의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유지보수는 장비의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다. 예방 정비(PM), 사후 정비(BM), 그리고 AI·센서 기반의 예지 정비(PdM)가 있다. 업계의 경험 법칙에 따르면, 계획된 예방 정비 비용의 3~5배가 사후 긴급 수리에 든다. 라인 중단 손실과 2차 피해까지 포함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제조 현장에서 유지보수는 가장 먼저 삭감되는 예산 항목이다.


매년 반복되는 원가 절감의 함정

문제의 핵심은 예산 편성 구조에 있다. 매년 "작년 대비 몇 퍼센트 절감"이라는 목표 앞에서 담당자는 어딘가를 깎아야 한다. 이때 수선비유지보수비는 가장 만만한 표적이 된다. 마케팅비를 깎으면 매출이 줄고, 인건비를 깎으면 저항이 생기며, 원자재비를 깎으면 품질이 즉각 드러난다. 그러나 유지보수비를 깎아도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당장은 괜찮은' 상태가 2년, 3년 축적되면 현장은 조용히 무너져간다. 정기 점검 주기는 늘어나고, 부품 교체 시기는 계속 미뤄지며, 장비 상태는 서서히 악화된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대형 고장이 터진다. 이때 드는 긴급 수리비는 수년간 절감한 유지보수비의 수배에 달하고, 라인 중단 손실까지 더하면 총비용(TCO)은 아낀 것의 몇 배를 훌쩍 넘는다.

 

더 심각한 왜곡은 성과 지표에서 온다. 유지보수비를 줄이면 올해 담당자의 KPI는 좋아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로 발생하는 사고는 몇 년 뒤, 이미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때 터진다. 단기 성과주의가 장기적 안전을 갉아먹는 전형적인 구조다.

 

회계 처리 방식도 이 문제를 가중시킨다. 수선비는 당기 비용으로 즉시 손익에 반영되지만, 장비 교체는 자산으로 분류되어 감가상각으로 분산된다. 경영진 입장에서 수선비 삭감은 올해 이익을 즉각 개선하는 수단이 된다. 이 구조 속에서 "수선비를 줄이자"는 결론은 거의 필연적으로 반복된다.


노후 장비,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후 장비를 계속 쓰는 것은 흔히 중소기업의 문제로 여겨진다. 자금 여력이 없고, 교체 비용이 부담되며, "아직 돌아가는데"라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기업은 장비가 수천~수만 대에 달한다. 이를 한꺼번에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장비는 계속 노후화된다. 여기에 "돌아가고 있으면 건드리지 마라"는 조직 문화가 더해진다. 장비 교체를 제안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 책임이 된다.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는 구조 속에서 노후 장비는 조용히 방치된다.

 

더 나아가 대기업의 노후 장비 문제는 하청으로 전이된다. 본사 라인은 그나마 관리되더라도, 단가 압박을 받는 협력사의 장비 상태는 훨씬 심각한 경우가 많다. 사고가 나면 하청의 책임이 되고, 대기업은 뒤로 빠지는 구조는 오래된 관행이다. 정기 안전감사가 있지만 감사 전에 정리하고 감사 후엔 원래대로 돌아가는 현장, 서류상 안전과 실제 현장이 다른 현실은 제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2026년 6월, 같은 날 터진 두 개의 사고

2026년 6월 1일, 하루에 두 개의 대형 사고가 동시에 터졌다.

 

하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공장 폭발이다. 오전 11시경 화약 관련 세척 작업 도중 폭발이 발생해 5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건물은 외벽만 남긴 채 전소됐다. 충격적인 것은 이 공장에서 2018년에 5명이 사망했고, 2019년에도 3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같은 공장에서, 유사한 공정에서, 세 번째 대형 인명 사고가 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실수나 불운이 아니다.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다.

 

다른 하나는 현대모비스 인도 첸나이공장 화재다. 5월 31일 오후 타밀나두주 스리페룸부두르 산업단지 내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4시간 이상 이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전장·섀시 생산동이 전소됐다. 화재는 공장 후면 산업 폐기물 및 고철 저장 구역에서 시작돼 강풍을 타고 생산동으로 번진 것으로 파악됐다. 기본적인 현장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공장은 현대차·기아 인도 생산라인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거점으로, 공급망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하루에 두 개의 대기업 제조 시설에서 동시에 사고가 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 제조업 전반에 걸쳐 누적되어 온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터져 나오는 신호다.


보이지 않는 비용, 총소유비용(TCO)의 함정

장비의 진짜 비용은 구입가가 아니다. 총소유비용(TCO)은 구입비, 설치비, 에너지비, 유지보수비, 불량·손실비, 폐기비를 모두 합산한 개념이다. 노후 장비를 계속 쓰면 구입비는 절약되지만, TCO의 다른 항목들이 올라간다. 에너지 낭비, 불량률 증가로 인한 재작업 비용, 긴급 수리비, 가동률 저하로 인한 생산 손실, 그리고 안전사고 발생 시의 산재 처리, 조업 중단, 법적 책임까지.

 

문제는 이 연결고리가 대부분의 기업 예산 시스템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지보수비를 깎았을 때 늘어나는 불량률 비용, 에너지 낭비, 사고 위험이 같은 계정 코드로 추적되지 않는다. 각 항목이 별도의 예산 부서에서 따로 관리되다 보니, 삭감의 결과가 다른 항목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경영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안전을 비용으로 보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이 악순환은 끊기지 않는다. 유지보수비와 수선비는 보험료와 같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낭비처럼 보이고, 사고가 나면 그때서야 아쉬워하는 것이 보험이다. 보험료를 아끼려다 보험을 해지했다가 큰 사고 한 번에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독일과 일본의 제조업이 수십 년째 강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있다. 안전, 품질, 생산성을 별개로 보지 않고 하나의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문화다. 유지보수를 철저히 하면 장비 수명이 늘어나고, 불량률이 낮아지며, 가동률이 높아진다. 안전이 곧 생산성이라는 등식이 현장 문화로 자리잡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됐지만 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법인 처벌로 경영진이 면피하는 구조, 사고 원인이 "개인 부주의"로 기록되는 관행, 감사는 있지만 실질 개선은 없는 형식주의. 제도가 있어도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사고는 반복된다.


맺으며 — 뿌리가 썩으면 줄기도 무너진다

한국 제조업이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이 시기에, 정작 그 근간을 이루는 장비와 현장 안전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 노후 장비, 삭감된 유지보수 예산, 형식화된 안전 점검, 반복되는 사고. 이것은 어느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제조업 생태계 전체의 구조적 병리다.

 

겉으로 화려한 완제품 뒤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노후 장비와 씨름하고 있다. 매년 원가 절감 압박에 수선비가 깎이고, 장비는 교체 시기를 넘겨 돌아가고, 그 위험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것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공장의 세 번째 폭발과 현대모비스 인도공장의 화재는, 우리가 외면해 온 이 구조적 문제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겠다는 경고다.

 

뿌리가 썩으면 줄기도 무너진다. 한국 제조업의 진짜 경쟁력은 화려한 완제품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현장의 장비와 사람이 얼마나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유지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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