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 르네상스의 국가 경쟁력, 운하와 항구
당시 이탈리아, 플랑드르, 네덜란드, 프랑스 엔지니어들은 애국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진지하게 운하를 파고 있었다. 그들의 운하 건설 현장은 전략적 요충지였고, 경제적 목적은 국가적 범위였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한때 모든 북유럽의 항구였던 브뤼허를 위해 바다로 가는 길을 계속 열어두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즈윈강에 점토가 가득 찼다. 1622년에는 오스텐트에서, 1640년에는 됭케르크를 거쳐 깊은 수심에 도달하려고 시도했지만, 슬로이스 운하는 쓸모없게 되었다. 하지만 브뤼허의 쇠퇴는 막을 수 없었다. 윌브록 운하로 브뤼셀이 앤트워프를 거쳐 바다에 접근할 수 있게 된 후 에스꼬강에 저지대 항구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1531년에 시작되어 1561년에 완공된 이 운하는 길이 17마일로, 소형 연안 선박이 다..
2024.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