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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일상

강철의 꿈 — 보스턴 다이나믹스, 로봇이 걷기까지 30년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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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집착

1977년 여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한 지하 연구실에서 Marc Raibert는 자신의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주제는 단순했다. 로봇이 균형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지만 그 단순한 질문은 그의 인생 전부를 집어삼킬 것이었다.

 

당시 로봇 공학계의 상식은 확고했다. 로봇은 바퀴로 굴러야 한다. 다리는 너무 복잡하고, 너무 느리고, 너무 불안정하다. 카네기멜론 교수 시절 Raibert는 외다리 로봇이 제자리 뛰기를 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동료들은 신기해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보였다.

 

1986년, 그는 MIT로 자리를 옮기며 'Leg Laboratory'를 열었다. 두 발, 네 발, 심지어 한 발로 달리는 로봇들이 그 연구실에서 탄생했다. 군더더기 없는 기계들이었다. 아름답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Raibert는 매일 밤 연구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 다리 달린 기계는 학문적 관심이 아니었다. 거의 종교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1992년, 그는 MIT의 울타리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대학 연구실의 속도로는 부족했다. 그는 회사를 세웠다. 이름은 보스턴 다이나믹스.


DARPA의 돈과 세상의 무관심

창업 초기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존재감이 없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인터넷 스타트업들이 하룻밤 새 벼락부자를 만들어내던 시절이었다. 다리 달린 로봇 따위에 투자자들은 시선을 주지 않았다.

 

생존의 동아줄은 미국 국방부 산하 DARPA였다. 전쟁터는 계단이 있고, 진흙탕이 있고, 잔해가 쌓인 건물이 있다. 바퀴 달린 로봇은 그 어느 곳도 통과하지 못한다. DARPA는 Raibert의 집착이 군사적으로 쓸모 있을 것이라 보았다. 연구비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2005년,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BigDog'를 공개했다. 네 발로 걷고, 달리고, 눈밭과 얼음 위에서도 균형을 잡는 기계였다. 누군가 발로 차도 비틀거리다 다시 서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인터넷은 술렁였다. 어떤 이들은 경이로워했고, 어떤 이들은 섬뜩해했다. Raibert는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로봇이 넘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빅독, 왼쪽 측면에서 본 모습, 2017년

 

이어 치타처럼 달리는 'Cheetah', 모래벼룩처럼 뛰어오르는 'SandFlea', 그리고 2013년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에 가까운 로봇이 등장했다. 이름은 Atlas.


구글이 노크하다

2013년 가을, 구글의 공동창업자 Larry Page는 로봇 공학에 베팅하기로 했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에 이어, 물리 세계를 움직이는 기계가 다음 전장이 될 것이라 직감했다. 구글 X 팀은 조용히 여러 로봇 기업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도 그 목록에 올랐다.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Raibert는 팔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구글의 자원이라면 자신이 꿈꾸던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회사는 이제 Alphabet의 한 부서가 되었다.

 

그러나 구글과의 결혼은 처음부터 어색했다. 구글의 문화는 빠른 프로토타입, 빠른 상용화, 빠른 수익이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문화는 달랐다. 10년을 내다보는 기초 연구, 수백 번의 실패를 감수하는 하드웨어 개발, 그리고 아직 돈이 되지 않는 꿈. 두 조직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정적 순간은 2016년이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공개한 Atlas 영상에서 로봇은 눈밭을 걷고, 문을 열고,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났다. 전 세계가 열광했다. 그러나 구글 내부에서는 다른 반응이 나왔다. 이게 언제 제품이 되나? 언제 돈이 되나? 인내심이 바닥난 구글은 매각을 결정했다.


소프트뱅크, 그리고 외로운 전환점

2017년,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품었다. 인수 금액은 약 1억 6,500만 달러로 알려졌다. 손정의는 AI와 로봇이 인류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 믿는 사람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좋은 짝이었다.

 

소프트뱅크 시절,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처음으로 상업화의 압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Raibert는 2019년 CEO 자리를 Robert Playter에게 넘겼다. 창업자는 한 발 물러섰다. 이제는 꿈만 꾸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파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였다.

 

2019년, 네 발 달린 로봇 'Spot'이 드디어 기업 고객에게 판매되기 시작했다. 가격은 대당 약 7만 5,000달러. 건설 현장, 발전소, 경찰서에서 Spot이 순찰을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싱가포르 공원을 돌아다니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안내했다. 드디어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이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

SPOT

 

그러나 소프트뱅크도 영원한 집이 아니었다. 비전펀드의 투자 실패와 위워크 파동으로 소프트뱅크는 현금이 필요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다시 매물로 나왔다.


현대자동차, 뜻밖의 파트너

2020년 12월, 서울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지분 80%를 약 8억 8,000만 달러에 인수한다는 것이었다. 기업가치 기준 11억 달러.

 

세상은 의아해했다. 자동차 회사가 로봇 회사를? 그러나 현대 회장 정의선의 구상은 달랐다. 그는 현대를 '자동차 회사'가 아닌 '이동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전기차, 수소차, 도심항공모빌리티, 그리고 로봇.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그 퍼즐의 핵심 조각이었다.

 

2021년 6월, 인수가 공식 완료되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이제 한국 기업의 자회사가 되었다. 창립 29년 만에 세 번째 주인을 맞이한 것이다.

 

현대의 품에서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연구소가 아니었다. 공장이 되어야 했다. Atlas는 서커스 공연용 로봇에서 산업 노동자로 탈바꿈해야 했다.


전기의 시대, Atlas의 부활

2024년,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유압식 Atlas의 은퇴를 선언했다. 30년간 기초를 닦아온 플랫폼을 내려놓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유는 명확했다. 유압은 강하지만 복잡하고, 느리고, 유지비가 크다. 공장 바닥에서 하루 종일 일하려면 전기 구동이어야 했다.

 

새 Atlas는 전혀 다른 기계였다. 56개의 자유도. 손목과 목이 360도로 회전한다. 인간의 관절이 닿지 못하는 각도까지 움직인다. 처음 공개된 영상에서 Atlas는 기이하게 팔을 뒤로 꺾어 상자를 집어 올렸다. 어떤 이들은 경탄했고, 어떤 이들은 다시 한번 섬뜩해했다.

 

2025년,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토요타 연구소(TRI)와 손을 잡았다. 목표는 'Large Behavior Model(LBM)', 즉 로봇판 ChatGPT였다. 기존에는 로봇에게 새 동작을 가르치려면 수천 줄의 코드를 짜야 했다. LBM은 그 패러다임을 깼다. Atlas는 이제 코드 한 줄 없이 새로운 작업을 학습했다. 상자를 정리하고, 무게를 측정하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면 스스로 경로를 바꾸었다.

 

그리고 2026년 1월 5일, 라스베이거스 CES. Robert Playter가 무대에 올랐다.

 

"Atlas는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을 혁신할 것입니다."

 

발표장 한쪽에서는 Spot 로봇들이 군무를 추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Atlas가 자동차 부품을 집어 들었다. 관중석은 조용했다. 30년 전 한 남자의 지하 연구실에서 시작된 꿈이 마침내 양산 제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2026년 물량은 이미 전량 예약 완료. 현대자동차 공장과 Google DeepMind가 첫 고객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Marc Raibert는 지금 보스턴 다이나믹스 AI 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76세. 그는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그의 평생 화두는 하나였다. 기계가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집착이 빚어낸 것이 오늘의 보스턴 다이나믹스다. 세 번 팔리고, 세 번 다시 일어난 회사. 구글도, 소프트뱅크도, 심지어 자본 시장의 냉소도 이 회사를 멈추지 못했다.

 

경쟁자들은 빠르게 추격한다. 테슬라는 대량생산을 꿈꾸고, 중국의 Unitree는 $16,000짜리 로봇을 쏟아낸다. 그러나 보스턴 다이나믹스에는 경쟁자들이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30년치의 실패 데이터, 그리고 그 실패들을 견뎌온 사람들이다.

 

로봇이 공장을 걷고, 이어서 도시를 걷고, 언젠가 우리 집 거실을 걷는 날. Raibert는 그날이 올 것이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이 믿지 않았을 뿐이다.


보스턴 다이나믹스, 1992–2026. 꿈은 아직 진행 중이다.

 

https://youtu.be/pKEOAhXvkoQ?si=sFCi4IEDNX9rHr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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