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튀빙겐 성의 주방 실험실 — 화농 붕대와 의문의 물질
19세기 중반, 세균설이 점차 수용되면서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의 시선은 다시 현미경 너머 세포 수준으로 향했다. 세포 안에서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 하지만 무엇인가?
1868년, 막 의사 자격을 취득한 25세의 스위스 생화학자 프리드리히 미셰르(Friedrich Miescher, 1844~1895)는 독일 튀빙겐 대학의 호페-자일러 교수 연구실로 왔다. 그의 목표는 세포의 구성 물질, 특히 핵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연구 재료의 선택에서 이미 그의 실용적 천재성이 드러났다. 당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인근 병원에는 화농된 상처를 감은 붕대가 넘쳐났다. 고름에는 병원체와 싸우는 백혈구가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미셰르는 이 화농 붕대를 수거해 소금물로 씻어 백혈구를 모았다. 여기에 돼지 위에서 추출한 소화 효소 펩신을 처리해 세포막을 파괴하고, 핵의 성분을 분리해냈다.
핵 내부를 분석한 미셰르는 당혹스러운 물질을 발견했다. 탄소·수소·질소·산소는 단백질의 성분과 같았지만 — 인(燐, phosphorus)이 다량 포함되어 있었다. 단백질은 인을 포함하지 않는다. 핵 속에 알려진 어떤 물질과도 다른 새로운 분자가 있었다.
미셰르는 이 물질을 '핵(nucleus)' 안에서 발견했다는 데서 '뉴클레인(nuclein)'이라 명명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DNA(데옥시리보핵산)라고 부르는 물질의 최초 발견이었다.
2. 60년의 침묵 — 발견이 무시된 이유
미셰르는 1869년 가을에 연구를 완성하고 논문을 썼다. 그러나 지도교수 호페-자일러가 회의적인 태도로 직접 실험을 반복 검증하겠다고 했고, 그 결과 논문 발표가 2년 늦어진 1871년에야 이루어졌다.
이후 미셰르는 연어의 정자를 대량으로 활용해 연구를 계속했고, 다양한 생물의 세포에서 뉴클레인이 보편적으로 존재함을 확인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분자 안에 생물의 유전적 다양성이 화학적 배열의 형태로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최초로 제안했다 —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기 80여 년 전이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거의 60년 동안 과학계에서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미셰르 자신이 자기 발견의 의미를 충분히 확신하지 못해 소극적으로 주장했고, 당시 과학계는 유전 물질이 단백질일 것이라는 강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1889년 리하르트 알트만이 같은 물질에 '핵산(nucleic acid)'이라는 다른 이름을 붙이면서, 미셰르의 뉴클레인과 알트만의 핵산이 동일한 것인지 혼란이 생겨 미셰르의 공로가 더욱 희석되었다.

1971년 생화학자 에르빈 샤르가프는 "1961년의 한 19세기 과학사 개론서에서 다윈은 31회, 허슬리는 14회 언급되었지만, 미셰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세포의 생명 코드를 담은 분자를 처음 발견한 과학자가 역사에서 지워지는 데에는, 국가적 경쟁 관계, 학문적 이해관계, 그리고 단순히 "이야기가 더 극적인 발견자"가 역사적 기억을 독차지하는 경향이 작용했다.
3. DNA에서 이중나선으로 — 발견의 완성
미셰르의 뉴클레인이 유전 정보의 담체임이 입증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X선 결정학 데이터를 포함한 여러 연구자들의 성과를 종합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했다. 이 구조가 밝혀지면서 DNA가 유전 정보를 복제하고 전달하는 메커니즘이 처음으로 이해되었다.
이 발견으로부터 10년 내에 유전 암호(genetic code) — DNA의 4가지 염기(A, T, G, C)가 3개씩 조합되어 20가지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규칙 — 가 해독되었다. 미셰르가 튀빙겐 성의 주방 실험실에서 화농 붕대를 씻으며 처음 포착한 그 물질이, 90년 후 생명의 정보 저장 원리를 담은 것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과학사 학자들은 미셰르를 "분자유전학의 진정한 출발점이 된 인물"로 재평가하고 있다. 그의 이름이 잊혀진 것은 발견의 중요성과 무관했다 — 그것은 다만, 역사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여 기억하느냐의 문제였다.
세포 내부를 탐구한 인류의 여정은 훅의 코르크 세포(1665)에서 레이우엔훅의 미생물(1676), 로버트 브라운의 핵(1831), 미셰르의 뉴클레인(1869), 그리고 왓슨-크릭의 이중나선(1953)으로 이어지는 300년의 연속된 물음이었다. 그 각각의 발견은 다음 세대의 질문을 가능하게 했고, 과학은 그 방식으로 진보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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