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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일상

충분함을 잊은 문명 — 영국과 미국의 탈산업화가 말해주는 것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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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됐다. 18세기 중반, 증기기관의 굉음과 함께 셰필드의 용광로가 타오르고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인류는 처음으로 자연의 한계를 넘어선 생산력을 손에 쥐었다. 그로부터 약 200년 뒤, 같은 영국에서 그 용광로는 꺼졌다. 공장은 문을 닫았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북부의 산업도시들은 서서히 공동화됐다.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 — 산업을 일으킨 나라가 가장 먼저 산업의 죽음을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그 뒤를 따랐다.


영국이 먼저 걸은 길

영국의 탈산업화는 1970~80년대에 집중적으로 진행됐다. 셰필드의 철강, 사우스 웨일스의 탄광, 맨체스터의 섬유산업이 차례로 무너졌다.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집권하면서 이 과정은 이념적으로 정당화됐다. 규제 완화, 노조 약화, 금융 자유화 — 이른바 대처리즘은 제조업의 몰락을 "비효율의 자연스러운 도태"로 재정의했다. 1981년 경기침체 당시 파운드화 강세와 고금리가 겹치면서 제조업은 단기 충격을 맞았고, 그 충격은 영영 회복되지 못한 장기 붕괴로 이어졌다. 1979년에서 2010년 사이, 영국의 제조업 고용은 680만 명에서 250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빈자리는 금융이 채웠다. 런던 시티(City of London)가 팽창했고, 영국 경제는 실물을 만드는 것보다 돈으로 돈을 버는 구조로 재편됐다. 제조업이 남긴 자리를 금융업이 대체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성장처럼 보였지만, 그 온기는 런던에만 머물렀다. 북부의 산업도시들은 쇠락했고, 그 안에서 살아온 노동계급은 서서히 잊혀졌다.

 

수십 년이 지나 그 잊혀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영국판 러스트벨트라 불리는 잉글랜드 북동부 — 이른바 'Red Wall' 지역 — 가 이탈표를 던지며 역사를 바꿨다. 경제적 소외가 정치적 분노로 전환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0년이었다.

2024년 총선 결과, 노동당은 '레드 월' 지역에서 상당수의 의석을 되찾았다.


미국이 답습한 패턴

미국의 탈산업화는 10~20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경로를 걸었다.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피츠버그의 철강, 오하이오 마호닝 밸리의 중공업이 무너지며 '러스트벨트(Rust Belt)'라는 단어가 지도에 새겨졌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은 대처리즘의 미국판이었다 — 레이거노믹스라는 이름 아래 같은 처방이 반복됐다. 1979년에서 2010년 사이 미국은 약 80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잃었다. 생산량 자체는 늘었지만 고용은 1,900만 명에서 1,200만 명으로 줄었다 — 자동화와 해외 이전이 노동자를 생산 과정에서 밀어낸 것이다.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에 있는 베들레헴 스틸의 녹슨 철골 더미들. 이 회사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철강 제조업체 중 하나였지만, 1982년에 갑자기 대부분의 생산을 중단했고, 2001년에 파산 신청을 한 후 2003년에 해산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은 이 과정에 쐐기를 박았다. '차이나 쇼크'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미국 제조업은 추가 타격을 입었고, 러스트벨트의 공동화는 가속됐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미국에는 또 다른 대체재가 있었다.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IT 산업이다.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 디트로이트의 공장이 문을 닫을 때 캘리포니아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거대 산업이 탄생하고 있었다. 영국의 제조업이 금융으로 대체됐다면, 미국의 제조업은 IT로 대체됐다. 대체의 방식은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 새로운 산업의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됐고,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에게는 닿지 않았다.

 

영국에는 국민보건서비스(NHS) 같은 사회 안전망이 상대적으로 견고했지만, 미국은 제조업의 붕괴가 의료보험과 연금의 상실로 직결됐다. 그 결과가 오피오이드 위기다 — 절망한 노동계급이 진통제에 의존하다 쓰러진, 미국만의 비극.

 

그리고 2016년, 러스트벨트의 표심이 도널드 트럼프를 백악관으로 보냈다. 영국이 브렉시트로 분노를 표출한 바로 그해, 미국은 같은 방식으로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각본이 다를 뿐, 무대는 동일했다.


대체의 논리, 그리고 그 한계

영국은 금융으로, 미국은 IT로 — 두 나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조업의 빈자리를 메웠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됐고, 실리콘밸리는 세계 기술의 중심이 됐다. GDP 수치는 상승했고, 새로운 억만장자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 대체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했다. 금융과 IT 모두 고도로 집중된 산업이다 — 소수의 고학력·고기술 인재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지만, 과거 제조업이 제공했던 대규모 중산층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공장 하나가 사라지면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지만,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코드 몇 줄이거나 알고리즘이다. 런던 시티의 번영은 셰필드의 폐허 위에 세워졌고, 실리콘밸리의 유니콘들은 디트로이트의 녹슨 공장과 공존했다. 대체는 이뤄졌지만, 그 혜택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다.


앵글로색슨 자본주의라는 공통 분모

두 나라의 탈산업화를 관통하는 핵심은 그들이 공유한 경제 이념이다. 주주 수익 극대화, 단기 실적 중심, 금융화 — 이른바 앵글로색슨형 자유시장 자본주의. 이 모델은 1990년대의 호황 속에서 "역사의 승리자"로 추앙받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제조업 기반이 조용히 해체되고 있었다.

 

흥미로운 비교 대상은 독일이다. 독일 역시 자본주의 국가지만, 탈산업화의 길을 걷지 않았다. 미텔슈탄트(Mittelstand)로 불리는 중소 제조업체들은 100~200년의 역사를 이어가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 기업들은 분기 실적보다 장기 고용과 기술 축적을 우선시했고, 노동자들은 경영에 참여했으며, 국가는 산업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같은 자본주의라도 어떤 형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다면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 작동한 특정한 탐욕의 논리가 아닐까.


과욕이라는 오래된 문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플레오넥시아(pleonexia)라 불렀다 — 자신의 몫 이상을 탐하는 욕망. 충분한 것을 가지고도 더 많은 것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성향. 이 욕망이 경제 시스템과 결합할 때, 기업은 더 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옮기고, 주주는 당장의 배당을 위해 미래의 기반을 파괴하며, 도시들은 하나씩 쓰러진다.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흥미로운 예언을 했다. 그는 생산성 향상의 속도로 보아 2030년쯤이면 인류가 주 15시간만 일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 생산성은 실제로 그만큼 올랐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생산하며, 더 많이 소비한다. 충분함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F. 슈마허는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에서 경제의 목표가 최대화가 아니라 "충분함"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느리고 더디게 성장하더라도, 공동체를 유지하고 사람을 지키는 경제. 그것이 더 인간적인 방향 아닐까 — 라는 질문을 그는 1970년대에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답을 얻지 못했다.


경쟁 시스템의 함정

그러나 "천천히 가면 안 되냐"는 물음에는 냉정한 현실이 따라붙는다. 경쟁 시스템 안에서 혼자만 느리면 도태된다. 영국이 제조업에 신중하게 투자할 때 미국이 더 빠르게 치고 나오면 영국은 뒤처진다. 독일이 장기적으로 갈 때 중국이 국가 자본으로 물량 공세를 하면 압박을 받는다. 개별 기업이 "우리는 천천히 가겠다"고 선언하면 주주들이 경영진을 교체한다. 탐욕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이기 전에, 시스템이 강제하는 생존 논리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더욱 까다롭다. 나쁜 사람들이 나쁜 선택을 해서 벌어진 일이라면 간단하다 — 좋은 사람들로 교체하면 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시스템의 논리에 따라 합리적인 선택을 반복한 결과가 이 거대한 파괴라면, 해법은 개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규칙 자체를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명확한 답 없이 남는 질문

영국과 미국의 탈산업화는 단순한 경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한 문명이 선택한 방향의 결과물이다 —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그 선택이 낳은 것은 런던 시티의 번영과 실리콘밸리의 유니콘들, 그리고 동시에 러스트벨트의 폐허와 브렉시트와 트럼프였다.

 

영국은 금융으로, 미국은 IT로 제조업의 빈자리를 메웠다. 두 나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았고, 그것은 분명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 성공은 모두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은 결국 투표장에서 답했다.

 

독일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하나의 대안임은 분명하다. 느리더라도 지속가능하게, 효율보다 공동체를 앞에 두는 방식. 그것이 완전한 해답인지는 모르겠다. 세상은 독일 홀로 돌아가지 않고, 경쟁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인류는 이미 "충분한" 생산력을 오래전에 달성했다. 그 이후로 우리가 계속 달려온 것은 필요 때문이 아니라 욕망 때문이다. 영국의 금융화와 미국의 IT화는 그 욕망이 만들어낸 두 가지 버전의 같은 이야기다 —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달려가되, 그 과정에서 사람을 잃는.

 

충분함을 알지 못하는 문명은, 결국 자신이 만든 것에 의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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