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기술은 누가 만드는가
기술 강국은 뛰어난 엔지니어 한 명이 홀로 만들지 않는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술 강국이 부상하거나 추락할 때마다 언제나 세 층위의 행위자가 함께 작동했다. 첫째는 혁신의 토양을 만드는 정치와 정책, 둘째는 무엇을 만들지 방향을 결정하는 경영자, 셋째는 어떻게 만들지를 몸으로 구현하는 엔지니어와 장인이다. 이 세 층위가 같은 방향을 향할 때 기술 강국이 탄생하고, 하나라도 어긋나기 시작하면 추락이 시작된다.
일본의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는 이 삼각 동맹의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보여주는 가장 풍부한 사례다. 모노즈쿠리는 단순한 제조를 넘어 일본 제조 문화의 기술적 역량, 노하우, 정신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자부심·숙련·헌신의 태도와 혁신·완벽 추구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 위대한 철학도 경영자의 오판과 정치의 보수화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증명했다.
오늘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기술 강국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리고 한국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2. 모노즈쿠리 — 일본 장인 정신의 역사적 형성
2.1 에도 시대 : 장인 정신의 뿌리
일본 모노즈쿠리의 정신적 토대는 에도 시대(1603~1868)에 형성됐다. 약 260년간 이어진 쇄국 정책은 역설적으로 일본을 자급자족의 기술 문명으로 단련시켰다. 외부에서 수입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도검·도자기·직물·칠기 등 각 지역의 특산 공예가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에 선불교의 영향으로 일상적 노동을 수행(修行)으로 보는 시각이 장인 문화와 결합됐다. 한 가지 기술을 평생 갈고닦는다는 가치관, 스승에게서 제자로 수십 년에 걸쳐 기술이 전수되는 도제 문화가 이때 정착했다. 일본에 100년 이상 된 기업이 3만 8천 개, 1,000년을 자랑하는 기업도 7개에 달하는 배경에 이 장인 정신이 있다.
2.2 메이지 유신 이후 : 서양 기술과 장인 정신의 결합
1868년 개항 이후 일본은 엄청난 속도로 서양 기술을 흡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독특한 현상이 발생했다. 서양의 기술은 받아들이되, 에도 시대의 장인 정신은 버리지 않았다. "와콘요사이(和魂洋才)"—일본 정신에 서양 기술을 결합한다는 슬로건이 이를 상징한다. 독일·영국·프랑스 엔지니어를 초청해 기술을 이전받은 후, 그 기술을 일본식 꼼꼼함으로 재해석하고 개량하는 방식이었다.
2.3 전후 복구기 : 위기가 만든 품질 집착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은 모든 것을 잃었다. 자원도, 자본도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자산은 사람의 기술과 지혜였다. 이 절박함이 역설적으로 모노즈쿠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미국의 품질관리 전문가 W. Edwards Deming이 일본에 초청되어 통계적 품질관리 이론을 전수했고, 일본은 이를 적극 수용하여 "불량률 제로"에 대한 집착을 산업 전반에 뿌리내렸다.
미국이 전후 대량생산에 집중할 때, 일본은 품질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수십 년 후 세계 제조업 패권을 바꾸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3. 도요타 생산방식 — 장인 정신의 산업화
3.1 오노 다이이치의 혁명
TPS(도요타 생산방식)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요타 자동차가 낮은 생산성과 대량으로 쌓인 재고로 인해 도산할 뻔한 위기에서, 오노 다이이치를 중심으로 체계를 구축한 생산방식이다.
오노 다이이치가 한 일의 본질은 단순했다. 에도 시대 장인이 작업대 앞에서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고 기술을 연마했듯이, 그는 공장 전체에서 불필요한 것—재고, 동작, 대기, 운반—을 찾아 제거했다. 그의 유명한 "왜를 다섯 번 물어라"는 문제의 표면이 아니라 근본 원인에 닿을 때까지 파고드는 장인의 자세를 조직적으로 구현한 것이었다.
3.2 TPS의 두 기둥
도요타 생산방식의 기본 사상은 낭비를 철저히 제거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부가가치를 통한 이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저스트인타임과 사람 인(人)변의 자동화라는 두 기둥이다.
저스트인타임은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만든다는 원리다. 에도 시대 장인이 주문받은 것만 만들던 방식과 본질적으로 같다. 지도카(自働化)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사람의 판단이 내재된 자동화다. 이상이 감지되면 기계 스스로 멈추는 안돈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칼 장인이 미세한 결함을 손으로 느끼고 즉시 작업을 멈추는 것과 같은 발상이다.
3.3 TPS가 증명한 것
TPS는 70년 넘게 이어지며 계속 보완·발전되고 있으며, 중소기업에서 재고를 줄이고 공정 효율화로 원가를 줄이는 방식으로 일본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유지되고 있다.
1984년 GM과 도요타가 캘리포니아에 공동 설립한 NUMMI 공장은 TPS의 힘을 세계에 증명했다. TPS는 겉으로는 명확한 규칙과 절차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도요타 생산방식은 겉으로 드러나는 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깊었다. 같은 공장, 같은 미국인 작업자에게 TPS를 적용하자 불량률이 극적으로 감소했다. 시스템이 사람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시스템이 결과를 바꾼 것이었다.
4. 경영자의 오판 — 기술을 죽인 결정들
4.1 소니 : 기술은 있었지만 결정이 틀렸다
소니는 디지털 혁명의 기술을 모두 갖고 있었다. MP3 기술도, 디지털 음악 유통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음반 사업부를 가진 경영진이 내부 사업 보호를 위해 디지털 전환을 가로막았다. 소니가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며, 경영적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 기업들은 전문 경영인들이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신흥국 진출 실기로 이어졌다.

장인이 평생 갈고닦은 기술을 경영자가 단기 이익과 조직 보호를 위해 묻어버린 것이다. 소니의 MD 플레이어 실패 사례는 혁신에 뒤처진 일본 기업의 표상이 됐다. 전문가들은 일본 대표 기업들의 실패가 아날로그 시장에 안주하거나 몸집 불리기에 급급해 혁신적 제품을 내놓는 데 실패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4.2 갈라파고스 증후군 : 내수 안주의 함정
일본 전자업계 몰락의 까닭은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이뤄진 잘못된 투자와 경영진의 늦은 판단, 혁신의 부재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1억 명이 넘는 자국의 막대한 내수 시장에 지나치게 안주한 갈라파고스 증후군도 실패의 단초가 됐다.
파나소닉과 샤프의 내수 비중이 각각 48%, 53%에 달했던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내수 비중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싸우는 훈련을 포기한 경영 판단이 결국 기술 우위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4.3 반도체 : 기술 집착이 경영 실패로
일본 반도체 몰락의 원인은 D램 가격 하락을 예측하지 못하고 과잉 기술로 과잉 품질의 비싼 D램 제조에만 매달린 것이었다. 수익률 개선 대신 기술에 대한 집착 때문에 호황기에 충분히 이익을 내지 못하고 불황 때는 대규모 적자를 냈다.
이는 장인 정신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의 방향을 시장과 연결하는 경영 판단의 실패다. 모노즈쿠리의 "어떻게 만드는가"는 탁월했지만, 경영자의 "무엇을 만드는가"와 "얼마에 파는가"가 실패했다. 잘 만든 것을 판 일본과 달리, 한국은 팔릴 제품을 만드는 전략을 택했고, 1992년 삼성은 반도체 세계 1위를 일본 NEC에서 빼앗아 왔다.
5. 정치·정책의 역할 — 혁신의 토양을 만드는 자
5.1 정책이 산업을 살린다
기술 강국의 역사를 보면 정치와 정책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은 뛰어난 엔지니어만의 공이 아니었다. 정부의 전략적 지원, 인재 육성 시스템, 대규모 투자 환경이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세계 1위로 도약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미국, 중국, EU, 일본 등 주요국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집중 육성할 전략 기술을 선정하고, 법률 제정 및 조직 신설 등 기술 육성 추진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기술 경쟁은 더 이상 기업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산업 정책의 전쟁이 됐다.
5.2 일본의 뒤늦은 각성
일본은 2021년 반도체·디지털 산업 전략을 수립한 후 2023년 단계별 실행 계획을 구체화하고, 미국·네덜란드·대만 등과 연계해 차세대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 중이다. 1990년대부터 30년간 이어진 정책적 공백을 이제야 메우려는 시도다.
라피더스가 목표로 한 2나노급 초미세 공정 칩 양산이 현실화하면 일본은 최첨단 반도체 경쟁에서 존재감을 입증할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650억 달러라는 막대한 재정 투입조차 수십 년간의 쇠퇴를 만회하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있다.
5.3 기초과학 투자 : 30년의 씨앗
과학기술을 제대로 육성하는 데에는 분야별로 최소 30~50년이 걸린다. 한국 경제·사회·문화의 빛나는 발전이 사상누각이 되지 않으려면 과학기술 발전에 더 많은 고민과 노력, 투자가 필요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 투자는 10년, 20년 뒤에야 열매를 맺는다. 단기 성과를 쫓는 정치 논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일본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29명에 달하는 배경에는 수십 년에 걸친 기초과학 투자가 있다. 정치인의 임기와 기초과학의 성과 주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장기 관점의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기술 강국 정치의 핵심이다.
6. 장인은 실패하지 않았다 — 모노즈쿠리의 생존
6.1 소재·부품·장비에서 살아남은 장인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동안 완성품 시장에서 추락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묵묵히 기술을 지킨 이들이 있었다.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장인들이었다.
탄소섬유 세계 점유율 약 35%를 가진 도레이, 자전거 변속기 세계 시장의 약 80%를 장악한 시마노, 노벨상 수상 연구에 사용되는 광센서를 만드는 하마마츠 포토닉스. 이들의 공통점은 중국과 한국이 가격으로 치고 들어와도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의 깊이를 수십 년에 걸쳐 쌓았다는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저임금 기반 가격 경쟁에 맞서 기술 개발을 통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으로 대응하면서, 일본 제품을 세계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장인 정신을 지킨 중소기업 현장의 사람들이었다.
6.2 모노즈쿠리 vs 경영 실패의 구분
모노즈쿠리 기술은 제조업 노동자에 의해 창출되기에, 모노즈쿠리 기반 기술에 대한 능력과 중요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의 조성이 필요하다.
장인은 오늘도 묵묵히 기술을 갈고닦고 있었다. 경영자가 그 기술을 팔아버리고, 정치인이 혁신의 싹을 잘라버렸을 때도. 일본 모노즈쿠리는 실패하지 않았다. 모노즈쿠리를 활용하는 경영과 정치가 실패했다.
7. 한국의 위치 — 기술 흐름의 역전과 새로운 도전
7.1 역전의 역사
한국과 일본의 기술 관계는 극적인 역전의 역사를 품고 있다. 16~17세기에 조선 도공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아리타 도자기의 시조가 됐다. 임진왜란 당시 납치된 이삼평은 일본 자기의 역사를 열었고 지금도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조선에서 천민 취급받던 도공이 일본에서는 신이 된 역설—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가 조선 장인 정신의 발목을 잡은 구조적 문제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반도체와 조선, 가전, 자동차에서의 역전은 한국의 추격 모델이 만들어낸 성과다. 1983년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선언할 때 일본의 모든 협력 요청을 거절했던 그 일본 기업들을 1992년 삼성이 추월했다. 한국의 빠른 실행력, 압축적 학습 능력, 극한의 수율 집착이 일본의 기술 깊이를 속도로 따라잡은 것이었다.
7.2 현재의 위기 : 중국의 추격
그러나 지금 한국은 거울을 보고 있다. 중국이 한국을 향해 똑같이 추격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격화 속에 한국 전략기술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중국은 이차전지 등 핵심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하며 격차를 벌렸고, 한국이 2022년 유일하게 1위를 차지했던 이차전지 분야는 2년 만에 중국이 역전했다.

중국의 추격이 한국이 일본을 추격하던 방식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은 하드웨어만 따라잡으면 됐지만, 중국은 하드웨어에 더해 소프트웨어·플랫폼·AI·국가 자본을 동시에 들고 온다. 세계 최대 내수 시장을 토대로 한 규모의 경제, 국가 주도의 무제한 투자가 가세한다.
8. 삼각 동맹의 붕괴와 재건 — 한국이 직면한 과제
8.1 장인 정신의 위기 : 이공계 기피
기술 강국의 토대는 결국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의 인재 생태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서울대 공대 입학 정원 850명 중 매년 100명 이상이 1학년 때 자퇴하며, 화학생물공학부는 신입생의 25%가 1년 만에 자퇴한다. 의대를 가기 위해서다. 제조업이 GDP의 28%를 차지하는 국가에서 전문가들은 이를 국가적 위기라고 명명한다.
의대 쏠림 현상으로 향후 5년간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신기술 분야에서 최소 58만 명의 인재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취업한 이공계 인력이 최종 학위 취득 10년 후 받는 평균 연봉은 9,740만 원으로, 국내 의사 평균 연봉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공계 기피의 근본에는 사농공상의 현대판이 있다. 조선 시대에 장인이 천시받았듯, 현대 한국에서 엔지니어는 의사·변호사·공무원보다 낮은 사회적 위상에 놓여 있다. 일본에서 타쿠미(匠)가 존경받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 제조업의 미래는 없다.
8.2 경영자의 과제 : 단기에서 장기로
한국 대기업의 임원 임기는 평균 2~3년이다. 도레이가 탄소섬유 사업에서 흑자 전환까지 20년을 버틴 것, 하마마츠 포토닉스가 단기 성과가 없어도 기초연구에 투자한 것 — 이런 결정은 한국의 경영 구조에서는 내리기 어렵다.
분기 실적 중심의 평가 시스템, 단기 성과 압박, 주주 이익 우선 원칙이 장기 기술 투자를 가로막는다. 경영자가 "무엇을 만들지"를 10년, 20년 관점으로 결정하고, 엔지니어가 단기 성과 압박 없이 기술의 깊이를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 이것이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모노즈쿠리 정신이다.
8.3 정치의 과제 : 혁신을 위한 토양
반도체 분야에서 경영과 인재를 포함한 국제적 협력 하에 금융, 세제, 제도적 지원을 통해 사업 확대와 첨단기술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기술 강국 유지를 위한 핵심 정책 과제다.
정치인의 임기와 기술 발전의 시간 단위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장기 기술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기술 강국 정치의 핵심이다. 기득권을 보호하는 규제가 아니라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는 규제로의 전환, 이공계 처우 개선을 위한 구조적 정책, 기초과학에 대한 30년 단위의 투자 — 이것들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9. 삼각 동맹의 재건 — 한국의 방향
기술 강국을 유지하려면 세 층위가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하면서 동시에 상호 보완해야 한다.

● 정치·정책의 역할은 장기 R&D 투자 환경 조성, 기초과학 지원, 이공계 처우 개선, 혁신 생태계를 가로막는 규제 완화,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국가 기술 전략 수립이다.
● 경영자의 역할은 기술의 방향 설정—무엇을 만들지—에 대한 10년 이상의 관점, 시장 변화를 읽는 감각, 장기 투자에 대한 결단, 그리고 엔지니어가 단기 성과 압박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 엔지니어·장인의 역할은 기술의 깊이—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집념, 카이젠을 통한 끊임없는 개선, 암묵지의 축적과 전수, 그리고 현장 감각의 유지다.
이 세 층위는 수직적 지시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 관계다. 경영자는 장인에게 방향을 제시하되 기술 자율성을 보장하고, 정치는 경영자와 장인이 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되 구체적 기술 결정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10. 결론 — 장인은 오늘도 일하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 강국의 흥망에서 장인·엔지니어가 실패한 경우는 드물다. 소니의 엔지니어들은 디지털 기술을 갖고 있었다. 일본 반도체 장인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디에 쏟을지를 결정하는 경영자가 오판했고, 혁신이 자랄 환경을 만들어야 할 정치가 보수화됐다.
한국도 지금 같은 기로에 서 있다. 중국의 추격, 이공계 기피, 단기 성과 중심의 경영 구조, 기초과학 투자 부족 — 이 모든 문제의 근저에는 삼각 동맹의 균열이 있다.
그러나 희망도 있다. 반도체 수율에 대한 집착, 배터리 기술의 도전, 바이오 위탁생산의 부상 —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오늘도 묵묵히 기술을 갈고닦고 있다. 그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경영자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정치가 혁신의 토양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한국이 기술 강국으로 지속되기 위한 유일한 경로다.
장인은 오늘도 일하고 있다.
문제는 그 장인 옆에 누가 서 있는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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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렬 (2022). 「주요국 전략기술 정책 비교: 기술 선정을 중심으로」. ETRI Insight, 203호.
- 대한상공회의소·KISTEP (2025). 「이공계 인력 부족 실태와 개선 방안」.
- 한국일보 (2026). 「2년새 더 벌어진 한·중 기술 격차 — 유일 1위 이차전지도 중국 역전」.
- 한국경제매거진 (2023). 「역사는 반복된다 — 피 튀기는 50년 반도체 전쟁사」.
- Wikipedia (2024). "Monozukuri". https://en.wikipedia.org/wiki/Monozukuri
- 스마트시티 코리아 (2021). 「미래차 시대의 도요타 생산방식」.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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