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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투자

SMR, 희망인가 신기루인가 — 소형 모듈 원자로의 불편한 진실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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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면 된다"는 말이 50년째 반복되고 있다

원자력 업계에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핵융합 발전은 항상 20년 후에 완성된다." 이제 소형 모듈 원자로(SMR)도 비슷한 처지에 놓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1,000MW급)의 3분의 1 이하 규모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생산해 비용을 낮추겠다는 아이디어다. 탄소 배출 없이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구원투수로 주목받아왔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파워포인트 원자로'라는 오명

2023년, 미국 SMR 업계의 선두주자였던 뉴스케일(NuScale)은 아이다호주에서 추진하던 3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전격 취소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비용이 처음 예상의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SMR의 핵심 약속 — '저렴한 원전' — 이 첫 번째 실전에서 무너진 것이다.

 

비판론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를 예견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SMR을 "광택 있는 슬라이드에만 존재하는 파워포인트 원자로"라고 불러왔다. 규모의 경제를 포기한 소형화가 오히려 단위 전력당 비용을 높이고, "공장 대량생산"이라는 비용 절감 논리는 아직 한 기도 찍어낸 적 없는 공허한 약속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켰다, 그런데

물론 SMR이 완전히 허상은 아니다. 러시아는 2019년 부유식 원전 '아카데믹 로모노소프'를 극지방에서 상용화했고, 중국은 고온가스로(HTR-PM)를 이미 운영 중이다. 중국의 '링롱 1호'는 2026년 상반기 상업 운전 개시를 앞두고 있다 — 세계 최초의 육상 상업용 SMR이다.

러시아 최초의 해상 핵발전소가 무르만스크에서 운송되고 있다.

 

※ 아카데믹 로모노소프가 SMR인지는 학계와 업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넓은 의미로는 SMR로 분류(IAEA 카탈로그에도 포함됨)하고, 좁은 의미로는 "진정한 SMR"이 아닌 소형 원자로(Small Reactor) 정도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 성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국가가 직접 주도한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천문학적 초기 비용과 불확실한 수익성을 민간 자본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방증한다. 미국식 민간 주도 모델이 유독 고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클로의 도박

현재 가장 주목받는 미국 SMR 기업은 오클로(Oklo)다. 오픈AI CEO 샘 올트먼이 공동 창업한 회사로,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에 2025년 9월 착공했다. 메타, 스위치 같은 빅테크들과 수십 기가와트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현금도 약 2조 원가량 확보했다.

 

그런데 매출은 0원이다. 운영 중인 원자로가 없으니 당연하다. 회사는 매 분기 수백억 원을 태우면서 2027~2028년 첫 가동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기술적 도전도 만만치 않다. 오클로가 선택한 소듐 냉각 고속로는 소듐이 물과 격렬하게 반응하는 특성 때문에 냉각재 누출 시 화재 위험이 있다. 불투명한 소듐 탓에 내부 점검도 극도로 어렵다. 프랑스의 수퍼피닉스, 일본의 몬주 등 과거 소듐 냉각로들이 줄줄이 조기 폐쇄된 전례가 있다. 게다가 오클로가 "핵폐기물 재활용 연료"를 쓴다고 홍보하지만, 그 연료를 처리할 재처리 인프라가 미국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타이밍이라는 근본 문제

SMR이 직면한 가장 냉혹한 현실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지금 이 순간 폭발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어제부터 시급했다. 그런데 SMR 상용화는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도 2028~2035년이다. 태양광과 풍력, 배터리 저장 기술의 비용은 매년 가파르게 내려가는 반면, 원전 비용은 수십 년째 오르는 추세를 뒤집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호기가 성공하면 대량생산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는 옳다. 그러나 첫 번째가 너무 비싸서 두 번째 발주가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뉴스케일의 실패가 그 전형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그렇다고 SMR을 완전히 외면하기도 어렵다. 재생에너지는 간헐적이다. 태양이 없고 바람이 없는 밤에도 데이터센터는 돌아가야 한다. 대형 원전은 너무 크고, 건설 기간이 너무 길다. 그 틈새를 채울 현실적인 대안이 마땅히 없다는 점에서, SMR에 대한 기대는 기술적 낙관론이라기보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절박함에 가깝다.

 

빅테크들이 오클로에 베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희망이 필요해서다.


2030년이 심판한다

SMR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중국은 이미 앞서 나갔고, 미국 민간 기업들은 여전히 첫 번째 삽을 제대로 뜨는 단계다. 기술적 난제는 해결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지만, "제때, 예산 내에" 해결된 원전 프로젝트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드물었는지를 우리는 너무 잘 안다.

 

낙관론자들은 2030년에 "봐라, 됐잖아"라고 말할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그때 가서 또 "10년만 더"가 반복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 우리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알게 된다. 오클로의 아이다호 원자로가 실제로 켜지는 날이 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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