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학의 역사

⛰️ 산을 뚫는다는 광기: 알프스 산악 터널의 역사

by 도서관경비원 2026. 6. 13.
반응형

1. 운하가 먼저 뚫었다 — 터널 굴착의 시작

철도가 산을 뚫기 전, 운하가 먼저 시작했다.

 

17세기 프랑스는 랑그도크 운하 노선에 단단한 암반을 뚫은 500피트 터널을 건설하며 선구자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운하 터널은 18세기 후반~19세기 초에 건설되었고, 그중 다수가 영국에 위치해 총 길이가 40마일을 넘었다.

 

손 드릴과 폭약, 개선된 측량 기술의 조합은 이 시기 시공업체들에게 고대 로마인보다 결정적인 우위를 안겨주었다. 약 1800년경 프랑스의 한 터널에서는 느슨한 암반과 토사를 목재로 지지하는 체계적인 받침 공법이 처음 개발되었다.

 

미국에도 흔적이 남아있다. 1828년 펜실베이니아주 레바논 인근 유니언 운하에 완공된 터널은 지금도 지역 기념물로 보존되어 있다.


2. 두 개의 실험실 — 후사크와 몽세니스

19세기 철도 터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곳은 미국의 후사크 터널알프스의 몽세니스 터널이다.

By K.Weise - Own work,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221889

 

항목 후사크 터널 (미국) 몽세니스 터널 (프랑스-이탈리아)
착공 1854년 1857년
완공 1876년 (22년) 1871년 (14년)
길이 몽세니스의 약 절반 약 8마일
수직 통로 2개 없음(중간 수직 통로 없이)

 

흥미로운 점은, 3년 늦게 시작한 몽세니스가 5년 먼저 완공되었다는 사실이다. 후사크는 비교적 낮은 산을 관통해 2개의 수직 갱도를 뚫을 수 있었지만, 몽세니스는 산이 너무 높아 그것이 불가능했다.

 

두 터널은 모두 굴착 기술의 실험실이었다. 후사크에서는 손 드릴 → 증기 드릴 → 압축공기 드릴로 발전했고, 폭약도 흑색 화약에서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바뀌었다. 후사크는 아마도 전기로 폭파를 일으킨 최초의 터널이었다.


3. "어리석고 무서운 일" — 몽세니스 계획에 대한 공포

1850년대 후반, 중간 통풍구 없이 8마일짜리 알프스 터널을 뚫는다는 계획은 많은 식견 있는 사람들에게 "어리석고 무서운 일"로 여겨졌다. 당시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 환기: 수평으로 8마일을 뚫었을 때 노동자들이 질식하지 않을 충분한 공기가 들어올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함
  • 온도: 지하 1마일 깊이의 암반 온도가 어느 정도일지 지질학자들도 추측만 가능
  • 붕괴: 수개월간의 폭파 후 상부 암반층이 약화되어 경고 없이 무너질 가능성
  • 수몰: 몽세니스 고개 위쪽의 "바닥 없는" 작은 호수가 터널로 쏟아져 내릴 수 있다는 공포

이 모든 불확실성을 안고, 세 명의 젊고 열정적인 이탈리아 공학자 제르맹 소메이예, 그란디스, 그라토니가 1850년대부터 사전 조사를 시작했다.

 

1857년 8월 15일, 이탈리아 의회가 굴착 승인 법안을 통과시켰고, 단 2주 후 빅토르 에마누엘 왕이 이탈리아 쪽에서 첫 폭파를 직접 일으켰다.


4. 측량의 승리 — 산 위로 그은 가상의 선

몽세니스 터널 건설의 진짜 영웅은 폭약이 아니라 측량이었다.

 

1858년 여름, 측량팀은 터널 부지 위쪽 몽 프레쥐스 일대에 측지 삼각망을 펼쳤다. 인근 고지에 21개의 측지 관측점을 설치하고, 고성능 경위의로 86개의 각도를 각각 최소 10회, 일부는 60회까지 측정해 정확도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양쪽 끝에서 굴착이 진행되어도 정확히 만날 수 있도록 축선을 설정했다. 험준한 지형과 빈번한 폭풍 속에서 몽 프레쥐스 정상을 넘는 수준 측량까지 완료했다.

"이전까지 어떤 터널 시공업자도 사전 측량의 정확성에 대해 이 정도로 확신을 갖고 작업을 시작한 적이 없었다."

 

이 측량은 1858년 가을까지 모두 완료되었다. 본격적인 굴착이 시작되기도 전에, 산속에서 만날 두 갱도의 경로가 이미 종이 위에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5. 페일의 임시 철도 — 30년이 걸릴 거라던 예측

1860년 말까지 굴착은 북쪽(프랑스)에서 약 1/3마일, 남쪽(이탈리아)에서 약 1/2마일 진행되었다. 모두 손 드릴 작업이었다. 이 속도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 터널은 30년 안에는 완성될 수 없다" 고 예측했다.

 

작업이 지연되는 동안, 1863년 영국인 존 배러클러프 펠에게 몽세니스 도로를 따라 임시 철도(약 48마일)를 건설하도록 허가했다. 이 펠 철도는 흥미로운 특징을 가졌다.

  • 궤간: 1.10미터
  • 최대 경사: 8%
  • 최소 곡선 반경: 132피트
  • 동력: 랙·피니언이 아닌, 수평으로 회전하는 두 개의 매끄러운 바퀴로 중앙 레일을 양쪽에서 압착해 견인력 확보

1866년 착공, 2년 만에 200만 달러 이상을 들여 완공했지만, 터널 완공으로 단 3년만 운영되고 무용지물이 되었다(이후 브라질에 매각되어 재설치). 모두가 이 도로가 "터널이 완공되면 즉시 가치를 잃을 것"임을 알면서도 건설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6.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다 — 굴착 속도의 혁명

손 드릴의 한계는 명확했다. 1858년 한 해 동안 손 드릴로 진행한 거리는 1,506피트였다.

 

1861년 이탈리아 쪽, 2년 후 프랑스 쪽에 소메이예식 압축공기 드릴이 도입되었다. 그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1870년, 기계 드릴로 진행한 거리는 5,364피트. 기계 드릴은 손 드릴보다 3.5배 빨랐다.

 

드릴 머신은 바퀴 달린 무거운 캐리지에 보통 7~9개의 천공기를 장착했으며, 각 천공기는 분당 200회의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천공 패턴은 한 번의 폭파로 최대한 다루기 쉬운 크기의 암석을 떼어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압축공기는 양쪽 입구 근처의 수압식 압축기에서 공급되었다. 이탈리아 쪽 바르도네키아에서는 2마일 길이의 운하를 건설해 85피트 낙차의 수력으로 압축기를 가동했다.


7. 두려움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처음 우려했던 위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환기: 드릴 배기 공기가 도움이 되었고, 약하게 아치형으로 만든 임시 칸막이(브래티스)로 공기 순환을 유도해 해결
  • 온도: 암반 온도는 75°F를 거의 넘지 않았으며, 냉각수 침투가 도움이 됨
  • 붕괴: 약화된 암반층은 발견 즉시 적절히 처리되었고, 천장 아치는 압력에 따라 형태와 두께를 다르게 설계
  • 수몰: 그 "바닥 없는" 호수는 터널에서 14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음

모든 우려는 현장에서 즉각 대응 가능한 수준이었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1847년 이미 니트로글리세린이 존재했고 1866년 후사크 터널에서 이미 사용되었으며, 1867년에는 노벨이 다이너마이트까지 발명했음에도, 몽세니스에서는 끝까지 흑색 화약만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8. 크리스마스의 만남 — 1870년 12월 25일

1857년 빅토르 에마누엘 왕이 쏘아 올린 첫 폭파는, 14년에 걸친 약 300만 번의 폭파 중 첫 번째였다. 이 기간 약 100만 입방야드의 암석이 굴착되었고, 부서진 암석의 평균 운반 거리는 약 2마일이었다.

 

그리고 187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 양쪽 갱도가 만났다.

항목 결과
고도 오차 프랑스 쪽이 이탈리아 쪽보다 약 2피트 높음
선형 오차 고도 오차보다 더 작음
길이 오차 계산보다 약 45피트 더 길었음
만난 지점 정중앙이 아닌, 이탈리아 쪽 약 4.75마일 vs 프랑스 쪽 약 3.75마일

 

8마일에 가까운 거리를 양쪽에서 뚫어왔는데, 오차가 단 2피트였다는 사실은 1858년의 측량이 얼마나 정밀했는지를 증명한다. 1871년 여름 터널이 최종 완공되었고, 총 비용 약 1,500만 달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분담했다.


9. 몽세니스 노선의 실제 모습

생 미셀(프랑스, 아르크강 계곡)에서 출발해 14개의 짧은 터널을 지나 모단까지 10마일을 오르고, 헤어핀 커브를 돌아 3마일을 더 올라 터널 입구(푸르노)에 도착합니다(생 미셀에서 1,460피트 상승). 이후 2.1% 경사로 터널에 진입해, 7.5마일 이상 직선으로 뻗은 터널 중간을 지납니다. 최고 지점에서 선로는 해발 4,393피트, 천장 위로는 거의 1마일의 단단한 암반이 쌓여 있습니다.

이탈리아 쪽으로는 8개의 고가교와 26개의 터널을 지나 부솔레노까지 내려갑니다.


10. 몽세니스 이후 — 더 길고 더 대담한 터널들

몽세니스는 이후 더 길고 대담한 알프스 터널들의 길을 열었습니다. 생고타르, 심플론, 뢰치베르크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19세기 말 완공된 12.25마일의 심플론 터널은 이전에 만난 적 없는 새로운 기술적 난제들을 동반했습니다.


11. 산악 터널 발전 연표

연도 사건
17세기 프랑스 랑그도크 운하, 500피트 암반 터널
1828년 펜실베이니아 유니언 운하 터널 완공
1848~1854년 세메링 철도(최초의 알프스 횡단 철도)
1854년 후사크 터널 착공
1857년 몽세니스 터널 착공, 빅토르 에마누엘 왕 첫 폭파
1858년 몽세니스 측지 측량 완료
1861년 압축공기 드릴 도입(이탈리아 쪽)
1866~1868년 펠의 임시 철도 운영
1867년 브렌너 철도 완공
1870년 12월 25일 몽세니스 터널 양쪽 갱도 관통
1871년 몽세니스 터널 최종 완공
1876년 후사크 터널 완공

마치며

몽세니스 터널의 진짜 이야기는 폭약이나 드릴이 아니라, 굴착이 시작되기도 전에 완성된 측량에 있었습니다. 누구도 산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었던 시대에, 21개의 관측점에서 86개의 각도를 60번씩 재며 8마일 너머의 만남을 미리 계산해낸 그 정밀함이야말로, 14년 후 크리스마스에 두 나라의 갱도가 단 2피트의 오차로 만날 수 있었던 진정한 이유였습니다.


📚 참고문헌

  1. Kirby, R. S., et al. Engineering in History. McGraw-Hill, 1956. (본문 원문 자료)
  2. 위키백과. 「터널」. https://ko.wikipedia.org/wiki/터널
  3. 위키백과. 「고트하르트 터널」. https://ko.wikipedia.org/wiki/고트하르트_터널
  4. 위키백과.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 https://ko.wikipedia.org/wiki/고트하르트_베이스_터널
  5. 나무위키.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 https://namu.wiki/w/고트하르트_베이스_터널
  6. 위키백과. 「채널 터널」. https://ko.wikipedia.org/wiki/채널_터널
  7. 위키백과. 「몽스니 터널」. https://en.wikipedia.org/wiki/Fr%C3%A9jus_Rail_Tunnel
  8. 위키백과. 「후삭 터널」. https://en.wikipedia.org/wiki/Hoosac_Tunnel
  9. 위키백과. 「세메링 철도」. https://en.wikipedia.org/wiki/Semmering_railway
  10. American Society of Civil Engineers. 「History of Alpine Tunneling」.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