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LA에 내려앉던 순간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다. 출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발이 낯선 땅을 밟는 순간 그 경계는 흐릿해진다. 잠깐의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는 자연스럽게 롱비치로 향했다.
롱비치의 바다는 조용했다. 태평양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 크고, 납작하고, 말이 없었다. 파도는 낮고 길었고, 하늘은 미세하게 뿌옇게 걸려 있었다. 전형적인 캘리포니아의 오후였다. 바다를 바라보며 잠깐 멍하니 서 있었을 것이다. 출장자의 몸이지만 여행자의 눈이 잠깐 깨어났던 순간...

LA에서 투싼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이 바뀐다. 창밖으로 초록이 사라지고, 회색 도시가 사라지고 — 어느 순간 붉고 황량한 대지가 펼쳐진다. 선인장이 점점이 박힌 사막 위로 비행기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착륙하는 순간 문이 열리면, 사막의 공기가 먼저 들어온다. 뜨겁고 건조하지만 — 어딘지 솔직한 냄새다.
출장 일정 사이 어느 저녁, 걷다가 마주쳤을 것이다. 콩그레스 스트리트를 걷는데 — 불쑥, 저게 보였다.
FOX. 붉은 글자로 수직으로 솟아오른 간판. 사막 도시의 평평한 스카이라인 사이에서 그것은 혼자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1930년에 세워진 그 파사드는 90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온 얼굴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 앞에서 설레며 줄을 섰고, 울다가 나왔고, 웃으며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 문 앞에서 잠깐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장소의 영혼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저녁은 설리번스 스테이크하우스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방 벽에 복서들이 걸려 있다. 19세기 헤비급 챔피언 존 L. 설리번, 잭 뎀프시 — 흑백 사진 속 주먹을 쥔 사내들이 테이블을 내려다본다. 묘한 공간이었다. 사막 도시의 저녁, 전설적인 복서들의 시선을 받으며 썰어내는 스테이크...

고단한 출장의 하루를 그렇게 마무리했다. 고기는 맛있었고, 분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근사했다.
돌아오는 길, 다시 LA를 경유했다. 그리고 코리아타운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아가씨 곱창... 성지인지는 몰랐다. 그냥 곱창이 먹고 싶었거나, 누군가 추천해줬거나 — 어쨌든 들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BTS 멤버 진이 인터뷰에서 "LA 넘버원 레스토랑"이라 소개하며 전 세계 팬들의 성지가 된 곳이었다. 공항에서 캐리어를 끌고 바로 달려오는 팬들도 있다는 곳. 그걸 모르고 들어가 연기 자욱한 화로 앞에 앉아 곱창을 구웠다.
모르고 밟은 성지가 오히려 더 재밌는 기억으로 남는다. 알고 갔다면 그냥 관광이었을 텐데.
기름이 튀고, 연기가 올라오고, 소주잔이 부딪히는 소리. 사막의 건조한 공기도, Fox 간판의 붉은 빛도, 복서들의 눈빛도 — 그 모든 것이 곱창 연기 속으로 스며들며 여행의 마지막 장을 조용히 닫았다.
'공학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과거는 미래의 서곡이다: 1955년의 예언과 2026년의 현실 (0) | 2026.06.14 |
|---|---|
| 발명은 유럽, 보급은 미국 — 미국 공학의 본질과 70년의 진화 (1) | 2026.06.14 |
| ⚡동력과 자동 제어의 역사 - 그리고 미래의 동력 (0) | 2026.06.13 |
| 🌊 강 밑을 뚫다: 수중 터널의 탄생, 템스강에서 허드슨강까지 (1) | 2026.06.13 |
| ⛰️ 산을 뚫는다는 광기: 알프스 산악 터널의 역사 (0) | 2026.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