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변화는 이미 현장 안에 들어와 있다
ABAQUS 화면을 들여다보며 비선형 해석이 수렴하기를 기다리던 그 시간들, 요소망을 다시 잡고 경계 조건을 바꿔가며 밤을 새웠던 기억이 있다면, 지금 이 글이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구조해석 분야에 AI가 들어오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AI가 ABAQUS나 ANSYS Mechanical을 쓰레기통에 버리러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AI는 FEA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한요소법의 엄밀함은 그대로 두되, 그것의 속도와 범위를 수십 배로 늘리는 방식이다.
2025년 하반기, Ansys는 2025 R2 버전을 출시하며 Ansys Engineering Copilot을 전면에 내세웠다. Ansys Mechanical, Fluent, Discovery를 포함한 주요 제품군에 AI 어시스턴트가 내장되어, 설정 오류를 잡아주고 워크플로를 안내하고 시뮬레이션 결과를 해석해준다. Microsoft Azure AI와 통합된 AnsysGPT가 그 안에 들어가 있다. Dassault Systèmes의 Abaqus 역시 공식 페이지에서 "AI 기반 자동화와 고급 최적화로 계속 혁신 중"임을 명시하고 있다.
산업 전반에서 구조해석과 AI의 결합은 이제 연구 논문 속 이야기가 아니다. 현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1. 서로게이트 모델 — "한 번 배워서 수천 번 써먹기"
구조해석 엔지니어가 가장 먼저 체감하게 될 변화는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서로게이트 모델(Surrogate Model)이란, FEA 해석 결과를 학습 데이터로 삼아 훈련된 머신러닝 모델이다. ABAQUS로 비슷한 형상과 하중 조건을 수천 가지 조합으로 돌려서 결과를 모은 뒤, 그 데이터로 신경망을 학습시킨다. 이후에는 신경망이 ABAQUS 없이도 "이 형상에 이 하중이면 최대 응력은 대략 이 정도"라고 밀리초(ms) 단위로 대답한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설계 최적화나 파라메트릭 스터디를 해본 엔지니어라면 알겠지만, 설계 변수가 10개만 되어도 FEA를 수백 번 돌려야 한다. 이 과정에 서로게이트 모델이 들어오면 탐색 속도가 극적으로 빨라진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복합재 구조의 경우 기존 FEA가 수 시간에서 수 일이 걸리는 계산을 신경망이 수 초 안에 15% 이내 오차로 예측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핵심 기술로는 그래프 신경망(GNN)이 떠오르고 있다. 요소망 자체를 그래프 구조로 표현하여 형상이 바뀌어도 잘 작동하는 범용 서로게이트 모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2026년 초에 발표된 메쉬 기반 기하학적 딥러닝 프레임워크는 대형·복합 기계 구조의 응답을 빠르게 예측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 PINN — "물리 법칙을 신경망 안에 새기다"
서로게이트 모델의 약점은 학습 데이터다. 데이터가 없거나 부족한 상황, 또는 학습하지 않은 조건으로 외삽(extrapolation)해야 할 때 일반 신경망은 엉뚱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PINN(Physics-Informed Neural Network)이다. 발상은 간단하지만 강력하다. 신경망을 학습시킬 때 데이터 오차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지배 방정식(Governing Equation)—예를 들어 탄성 방정식, 평형 방정식—의 잔류 오차도 함께 최소화한다. 물리 법칙을 Loss 함수에 직접 넣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PINN은 데이터가 적어도 물리적으로 일관된 결과를 낸다. 특히 역문제(Inverse Problem)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구조물에 붙은 센서의 변위 데이터만으로 "어떤 하중이 작용했는가" 또는 "재료 물성치가 얼마인가"를 역으로 추정하는 일이 가능하다. 터널 공사 모니터링이나 실제 운용 중인 구조물의 손상 진단에 이 접근법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다.
항공 분야에서는 더 구체적인 사례가 나왔다. 에어버스 A320 계열 항공기의 앞바퀴 착륙 장치(Nose Landing Gear) 드래그 스트럿을 대상으로 PINN을 학습시켜, 실제 운용 하중 조건에서 수 초 내로 응력을 예측하는 디지털 트윈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FEM 대비 오차는 5~7% 수준이었다.
ABAQUS의 완전 적분 요소 개념을 PINN과 결합한 FE-PINN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기존 FEA 프레임워크의 장점을 살리면서 신경망의 속도를 더하는 하이브리드 접근이다. 최근에는 MLP 백본을 KAN(Kolmogorov-Arnold Network)으로 교체한 PIKAN이 등장하면서, 수렴 속도와 정확도가 전통적 PINN을 능가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3. AI 위상최적화 — "최적 형상을 AI가 직접 그린다"
위상최적화(Topology Optimization)는 구조해석 엔지니어에게 익숙한 도구다. 주어진 하중과 경계 조건 아래 재료를 최적으로 배치하는 방법론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FEA를 수백~수천 번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계산 비용이 막대하다.
AI는 이 병목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Autodesk의 2022년 특허를 보면, 저해상도 구조해석 결과로 학습된 ML 모델이 고해상도 최적 위상을 직접 생성하는 방식으로 계산 비용을 극적으로 줄인다. Siemens의 2024년 특허는 수백만 개의 요소로 구성된 설계 공간에서 해석에 필요한 활성 영역만 선택적으로 작동시키는 방법으로 대형 구조물에도 위상최적화를 적용 가능하게 했다.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항공 드론 분야에서 나왔다. 생성형 AI와 위상최적화를 결합한 연구에서, 설계 컴플라이언스를 83% 낮추면서 체적을 70% 감소시키는 결과를 얻었다. 안전율 2.0을 유지한 채로 말이다.
더 나아가 Dassault SIMULIA의 2024년 특허는 적층제조(AM) 과정의 잔류 응력을 위상최적화 목적 함수 안에 직접 통합했다. 기존의 위상최적화가 "이상적인 형상"을 제시했다면, 이제는 "실제로 프린팅했을 때의 형상"까지 고려한다는 뜻이다. 설계와 제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4. AI 디지털 트윈과 구조 건전성 모니터링 — "구조물이 스스로 말하게 하다"
완성된 구조물, 즉 이미 세상에 나가 있는 교량, 해양 플랫폼, 항공기 동체에 AI가 연결되는 영역이다.
센서를 통해 수집된 실시간 데이터를 FEA 모델과 연결하면, 구조물의 현재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여기에 AI가 들어오면 단순한 데이터 수집을 넘어 예측으로 나아간다. "현재 상태라면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이 손상 패턴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같은 질문에 답을 내놓기 시작한다.
기술적으로는 CNN이 센서 신호의 공간적 특징을 추출하고, LSTM이 시계열 응답을 모델링하며, GNN이 노드와 부재 사이의 위상학적 연결 관계(하중 전달 경로, 손상 전파 메커니즘)를 학습한다. 이 세 가지를 조합하는 앙상블 구조가 현재 가장 강력한 접근으로 평가받는다.
디지털 트윈 시장 자체의 규모도 주목할 만하다. 2025년 약 245억 달러에서 2032년에는 약 2,593억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있다. 스마트 시티, 항공우주, 의료, 제조업이 주요 성장 동력이다. 구조해석 엔지니어에게는 전혀 새로운 업무 영역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5. ML 재료 구성 모델 — "UMAT을 신경망으로"
ABAQUS 사용자라면 UMAT(사용자 재료 서브루틴)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안다. 복잡한 비선형 재료 거동—소성, 크리프, 손상, 점탄성—을 Fortran 코드로 직접 구현해야 한다. 수식의 안정성, 야코비안 행렬 수치 미분, 수렴 문제까지 챙겨야 하니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었다.
머신러닝 기반 구성 모델은 이 구조를 바꾸려 하고 있다. 실험 데이터나 고정밀 FEA 결과로 신경망을 훈련시켜 재료 응답을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특히 PINN 기반의 **EPNN(Elasto-Plastic Neural Network)**은 탄소성 재료의 응력-변형률 관계를 학습하되, 탄성 변형과 소성 변형의 분리, 비선형 증분 탄성 같은 물리적 제약을 네트워크 구조 자체에 내장한다. 덕분에 학습하지 않은 하중 경로에서도 물리적으로 타당한 예측을 내놓는다.
모래 지반의 소성 거동 같이 실험적으로 특성화하기 어려운 재료에서도 가능성이 입증되고 있다. 미래에는 ABAQUS의 UMAT 자리를 "훈련된 신경망 서브루틴"이 대신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6. AI 자동화 — 전처리에서 후처리까지, 반복 업무가 사라진다
지금 당장 가장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아마도 이 영역일 것이다.
요소망 품질 검사, 경계 조건 설정 검토, 재료 물성 입력 검증 같은 전처리 단계의 반복 작업들이 AI에게 넘어가고 있다. Ansys 2025 R2에서 Mechanical에 새롭게 적용된 AI 요소망 플로우는 복잡하게 적층된 전자 시스템의 요소망을 자동으로 개선한다.
후처리 단계도 마찬가지다. 응력 집중 부위를 자동으로 식별하고, 비정상적인 결과 패턴을 이상 징후로 표시하고, 해석 결과를 요약한 보고서를 자동 생성하는 기능들이 빠르게 현장에 들어오고 있다. LLM 기반 시뮬레이션 어시스턴트는 "이 결과에서 파손 위험이 가장 높은 부위는 어디인가"라는 자연어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있다.
Coreform의 경우 CAD 형상에서 바로 해석을 돌릴 수 있는 등기하해석(IGA) 기술을 ABAQUS와 통합하는 파트너십을 2026년 5월에 체결했다. 형상 단순화와 수동 요소망 작업에 쏟아붓던 시간이 크게 줄어들 것을 예고한다.


구조해석 엔지니어에게 닥친 현실 — 그래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솔직하게 말하자. AI가 구조해석 엔지니어의 일자리를 위협하는가? 단순 반복 작업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FEA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엔지니어의 역할은 오히려 커진다. AI가 내놓은 결과가 물리적으로 타당한지, 모델의 가정이 현실과 맞는지 검증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는 틀린 답을 자신있게 내놓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답을 걸러낼 수 있는 깊은 FEA 이해가 더욱 중요해진다.
동시에, 새로운 스킬셋이 필요해지고 있다.
파이썬은 이제 선택이 아니다. ABAQUS Python scripting, ANSYS PyMAPDL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기본이 되어가고 있다. 배치 해석 자동화, 결과 데이터 추출, 서로게이트 모델 학습 파이프라인 구축 모두 파이썬 없이는 어렵다.
머신러닝의 기초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신경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오버피팅이 무엇인지, 학습 데이터가 왜 중요한지 정도는 알아야 AI 도구를 제대로 쓸 수 있고, 잘못된 결과를 잡아낼 수 있다.
데이터 감각을 키워야 한다. FEA 결과를 "해석 데이터"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어떤 조건에서 해석을 돌렸고, 그 데이터가 충분히 다양한지, 학습 데이터로서 편향이 없는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30년까지 핵심 직업 스킬의 39%가 변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AI와 빅데이터 역량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킬로 꼽혔다. 구조해석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맺으며 — FEA는 죽지 않는다, 진화한다
수십 년간 쌓아온 유한요소법의 이론적 엄밀함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AI 학습의 기반이 된다. ABAQUS로 돌린 고정밀 해석이 서로게이트 모델의 훈련 데이터가 되고, 탄성 방정식이 PINN의 Loss 함수에 새겨지고, 위상최적화의 반복 해석이 생성형 AI의 설계 탐색으로 가속된다.
구조해석 엔지니어의 역할은 "해석을 돌리는 사람"에서 "해석과 AI를 함께 다루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것이 위협이 아니라 기회임을 먼저 이해하는 엔지니어가, 다음 10년을 이끌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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