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학자의 일상/아랍에미리트

사막이 길러 낸 사람들: UAE 정체성의 뿌리, 베두인 유산

by 도서관경비원 2026. 8. 21.
반응형

 

국경 없이 살던 사람들

현대 국가의 국민에게 국경은 익숙한 존재다. 여행할 때면 긴 줄과 여권, 세관이 모든 여정을 더디고 까다롭게 만든다. 자유로이 떠도는 유목 생활이라는 관념이 누구에게나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사막에 살며 낙타를 키우던 유목 부족을 '베두인'이라 부르는데, 이 이름은 '사막에 사는 사람'을 뜻하는 아랍어에서 유래한다.

 

UAE의 베두인은 오랜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베두인 부족은 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 이 땅에 정착해 어업과 진주 채취, 농경으로 삶을 꾸리며 혹독한 사막 기후에 적응했고, 그 과정에서 독자적인 생존 전략과 사회 구조를 발전시켰다. 혹독하고 무자비한 사막과 그들이 맺은 깊은 유대는 그야말로 전설과도 같다. 모험으로 가득한 그들의 삶과 명예롭고 자긍심 넘치며 너그러운 품성은, 더없이 고귀한 영웅들로 가득 찬 아랍 세계 최고의 시를 낳았다.

1849년  카이로  외곽의 베두인 야영지 (출처: By Max Schmidt - Galerie Ary Jan)

물과 풀을 따라 움직인 부족 사회

베두인 사회는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고, 사람들은 가축 떼와 온 가족을 이끌고 오랜 세월에 걸쳐 먼 거리를 떠도는 데 익숙했다. 해안에서 사막으로, 다시 오아시스로 옮겨 다니는 그들의 이동은 물의 공급과 풀밭의 유무에 따라 정해졌다. 각 베두인 부족은 셰이크가 이끌었으며, 부족 구성원은 대개 한 조상을 두고 있었다. 리와와 아부다비의 바니 야스, 내륙의 알 마나시르, 리와 동쪽 언저리의 알 아와미르처럼, 부족마다 저마다의 영역을 두고 살아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 석유의 부가 아직 모래 밑에 묻혀 있던 시절, 내륙의 베두인 가운데 UAE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부족은 바니 야스였다. 이 부족 연맹은 오늘날 아부다비를 다스리는 알 나흐얀 가문과 두바이를 다스리는 알 막툼 가문의 선조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후손이 지금까지도 두 도시를 이끌고 있다.

 

오늘의 에미라티에게 흐르는 피

유목 문화는 풍부한 유산, 그리고 놀라운 생존 기술과 자립심으로 이어진다. 베두인 문화는 UAE 사회를 떠받치는 근간의 하나다.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환대, 굳건한 명예 의식, 가족과 나라를 향한 충심은 오늘날의 에미라티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UAE의 정체성과 전통에서 근본적인 몫을 한다.

 

이 가치들은 관념에 머물지 않고 일상의 의례로 살아 있다. 아랍 커피 '가흐와(gahwa)'와 대추야자로 손님을 맞이하는 의식은 UAE 사막 곳곳에서 매일 저녁 수천 번씩 되풀이되며, '하파와(환대)'와 '카람(너그러움)'이라는 베두인의 핵심 가치를 살아 있는 실천으로 이어 간다. 부족의 공동체 생활이 이뤄지던 전통 사랑방 '마즐리스(majlis)'의 정신 또한 여전하다. 베두인의 유산은 사라지기는커녕 현대 에미라티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의도적으로 보존되고 격상되어, 정부 문장에 새겨진 매부터 오늘날 통치에까지 남아 있는 마즐리스식 협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드러난다.

 

세계가 인정한 유산

UAE는 이 유산을 지키는 데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 왔고, 그 가치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매사냥(2010), 사두 직조(2011), 아이얄라 춤(2014), 아랍 커피(2015), 마즐리스(2015)가 잇달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특히 매사냥은 셰이크 자이드가 평생 사랑한 전통이자 베두인 정신의 상징으로, 오늘날 아부다비의 매 병원 같은 곳에서 사육·훈련과 보전 노력이 어우러지며 명맥을 이어 간다.

 

베두인의 유산은 축제와 예술로도 되살아난다. 대추야자를 기리는 리와 대추야자 축제, 낙타 경주와 매사냥 대회, 시 낭송이 어우러지는 알 다프라 축제가 대를 이어 전해 온 기술과 전통을 무대에 올린다. 우드(oud)로 빚어내는 사막의 선율과 아이얄라·알 라즈파 같은 춤, 그리고 나바티 시와 이야기 전통은 세대에서 세대로 문화적 가치를 전한다. 한때 사막의 생존 수단이던 낙타 경주는 이제 로봇 기수와 첨단 기술을 더한 국민 스포츠로 거듭났고, 마즐리스와 헤나, 전통 의상 같은 요소는 관광을 위해 꾸며 낸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에 뿌리를 둔 살아 있는 전통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UAE는 200여 개 국적이 어우러진 다문화 사회이며, 그럴수록 유산은 나라의 뿌리를 지키는 데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에미라티는 자신을 남과 구별 짓는 전통을 소중히 가꾸며, 유서 깊은 베두인의 유산을 오늘날의 UAE에 녹여 내려 애쓰고 있다. 사막이 길러 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천루가 솟은 지금도 이 나라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흐르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