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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문화

같은 이름, 다른 맥주 — 버드와이저 상표권 분쟁 120년의 역사

by 도서관경비원 2026.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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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한 캔을 들고 "버드와이저"라고 말할 때, 그 이름에는 120년 넘게 이어진 두 나라의 자존심 싸움이 담겨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이름 중 하나인 "버드와이저(Budweiser)"는 전혀 다른 두 회사가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맥주 역사상 가장 길고 복잡한 상표권 분쟁의 주인공이다.


🏰 이야기의 시작 — 체코의 작은 도시 부드바이스(Budweis)

모든 이야기는 13세기 체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스케부데요비체(České Budějovice)의 맥주 양조 역사는 12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보헤미아의 왕 오타카르 2세(Ottokar II)가 이 도시에 양조권을 부여한 것이 시초이다. 이 도시의 독일어 이름이 바로 부드바이스(Budweis)이며, "버드와이저"라는 단어는 원래 "부드바이스에서 온(of Budweis)"이라는 뜻의 독일어 형용사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마치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방의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부드바이스 지역에서 만들어진 맥주를 가리키는 지역 명칭이었다. 수백 년 동안 이 지역 맥주는 유럽 전역에서 품질로 명성을 쌓아왔고, 그 이름은 곧 프리미엄 맥주의 대명사가 되었다.


체코 버드와이저 — Budějovický Budvar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

설립: 1895년 | 소유: 체코 국영 기업 | 브랜드명: 유럽 Budvar / 북미 Czechvar

버드와이저 부드바르 본사 및 양조장

탄생 배경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는 체코의 도시 체스케부데요비체에 위치한 양조장으로, 현재 체코에서 네 번째로 큰 맥주 생산자이자 두 번째로 큰 맥주 수출업체이다. 1895년 체코어를 쓰는 부드바이스 시민들이 설립한 이 양조장은 오늘날까지 체코 국영 기업으로 운영되며, 버드와이저 맥주는 이 양조장의 "대표 제품"이자 "국민적 자부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양조 철학 — 시간이 만드는 맛

체코 버드바르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타협 없는 전통 양조 방식이다.

  • 원료: 사츠(Saaz) 홉 콘, 모라비아산 맥아, 자체 개발된 라거 효모, 그리고 양조장 지하 300미터 아래 빙하기 대수층에서 끌어올린 순수한 연수(軟水) — 단 네 가지 원료만 사용한다.
  • 양조 과정: 부드바르 양조 과정의 핵심은 '더블 디콕션(double decoction)' 방식이다. 37°C에서 시작해 50°C로 가열한 후 전체 용량의 3분의 1을 별도의 솥으로 옮겨 65~75°C로 가열하는 과정을 두 번 반복한다. 4시간이 걸리는 이 과정이 부드바르만의 맛을 만들어내며, 양조사들은 "이 방식을 앞으로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 숙성: 최소 90일간 저온 숙성하는데, 이는 대량생산 맥주의 72시간 숙성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세계에서 가장 긴 저온 숙성 기간 중 하나로, 영하에 가까운 온도를 유지하는 지하 저장고의 수평형 탱크에서 진행된다.
  • 맛의 특징: 완성된 맥주는 풍부한 맥아와 바닐라 향, 섬세한 꽃향기의 홉 캐릭터를 보여주며, 마무리에는 과즙 같은 맥아, 톡 쏘는 홉 수지, 그리고 은은한 사과 과일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보헤미안 필스너 스타일의 특징인 깊고 황금빛 색상을 유지한다.
  • 독일 맥주 순수령 준수: 부드바르는 맥아 보리, 홉, 효모, 물만 사용할 수 있다는 독일의 라인하이츠게보트(Reinheitsgebot), 즉 맥주 순수령을 준수한다.
  • EU 지리적 표시 보호: 2004년 유럽연합은 버드와이저 부드바르에 보호 지리적 표시(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 지위를 부여했다. 이는 샴페인이나 페타 치즈처럼 특정 지역에서만 그 이름을 쓸 수 있다는 공식 인정이다.

미국 버드와이저 — Anheuser-Busch Budweiser

설립: 1876년 | 소유: AB InBev (세계 최대 맥주 기업) | 별명: "The King of Beers"

세인트루이스의 양조장

탄생 배경

1870년대, 독일계 이민자 아돌퍼스 부시(Adolphus Busch)는 유럽을 여행하며 당시 유행하던 양조 기법, 특히 부드바이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필스너 맥주에 주목했다. 1876년, 그는 이미 유명했던 "버드와이저"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자신의 새 맥주에 붙였다 — 비록 그의 맥주는 부드바이스 도시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부시는 냉장 화차와 저온살균법을 맥주 산업에 도입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으며, 이를 통해 버드와이저를 미국 최초의 전국 판매 맥주 브랜드로 만들었다.

거대 기업으로의 성장

1957년에는 버드와이저를 앞세워 미국 최고 판매 맥주 기업이 되었고, 이후 세계로 뻗어나갔다. 2008년 7월, 앤하이저부시는 벨기에 기업 InBev에 약 520억 달러에 인수되며 현재의 AB InBev가 탄생했다. 오늘날 AB InBev는 전 세계 맥주 시장의 4분의 1 이상을 장악한 세계 최대 맥주 기업이며, 버드와이저는 AB InBev의 대표 브랜드로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브랜드 가치를 지닌 맥주이다. 2024년 기준 브랜드 가치는 138억 달러에 달한다.

양조 방식

미국 버드와이저는 맥아 보리, 쌀, 물, 홉, 효모로 만들어지며 보리맥아 외에 최대 30%의 쌀을 보조 원료로 사용한다. 이 쌀의 사용이 특유의 가볍고 드라이한 맛을 만들어낸다. 양조 공정은 제분, 당화, 여과, 끓임, 1차 발효, 너도밤나무 숙성, 마무리의 7단계로 이루어지며, 너도밤나무 칩을 넣은 숙성 탱크에서 숙성된다. 단, 너도밤나무 칩은 실제 목재 풍미를 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발효를 빠르게 완성하기 위한 공정상의 목적으로 사용되며, 이를 통해 숙성 기간을 단축한다.


⚖️ 120년 법정 싸움의 연대기

두 회사의 분쟁은 단순한 상표 다툼을 넘어, 국제 상표법 역사에 길이 남을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분쟁은 1907년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되었다. 주요 흐름을 연대기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876년: 앤하이저부시가 미국에서 버드와이저를 출시하고, 1878년 미국 특허청에 버드와이저를 발명 상표로 등록한다.
  • 1907년: 미국과 보헤미아 양조업자들이 첫 협의를 한다. 앤하이저부시는 북미에서만 버드와이저 이름을 사용하고, 보헤미아 양조업자들은 유럽 시장 권리를 갖기로 한다.
  • 1939년: 두 회사는 앤하이저부시가 버드와이저 이름을 최초로 상표 등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협약을 맺고, 파나마 이북의 모든 영역을 미국 양조사에게 양도한다. 공교롭게 같은 해 나치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면서 체코 맥주 수출은 사실상 중단된다.
  • 2004년: 유럽연합이 체코 부드바르에 보호 지리적 표시 지위 부여.
  • 2010년: 앤하이저부시 인베브가 버드와이저를 EU 전체 상표로 등록하려던 항소에서 패소한다.
  • 2010~2011년: 부드바르가 124건의 분쟁 중 88건에서 승리하며 독일을 포함한 유럽 주요 시장 68개국에서 독점 사용권을 확보한다.
  • 2012년: 부드바르가 AB InBev의 전 세계 분쟁 합의 제안을 거절한다.
  • 2013년: 영국 대법원이 두 양조사 모두 영국에서 버드와이저 이름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고 확정 판결한다.
  • 2017년 이후: AB InBev는 체코 체스케부데요비체에 있는 소규모 양조장 삼손(Samson)을 인수한다. 부드바이스 도시 내에 자체 거점을 확보함으로써 상표 주장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부드바르는 소비자 혼란을 야기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이 사건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 현재: 결과적으로 부드바르는 유럽 대부분에서 버드와이저 이름 사용권을 갖고, AB InBev는 북미에서 이 권리를 보유한다. AB InBev는 유럽 대부분에서 "Bud"로 팔고, 부드바르는 북미에서 "Czechvar"로 판매한다.

🌍 나라별 이름이 다른 이유

같은 맥주가 어느 나라에서 사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지역 체코 Budvar 미국 Budweiser
미국 · 캐나다 Czechvar Budweiser
유럽 대부분 Budvar / Budweiser Bud
영국 Budweiser Budweiser
수출 66개국 국가별 상이 국가별 상이

🍺 두 맥주, 완전히 다른 철학

  체코 Budvar 미국 Budweiser
스타일 보헤미안 라거 아메리칸 라거
원료 보리맥아 + 사츠 홉 (4가지만) 보리맥아 + 쌀(최대 30%) + 홉
숙성 기간 최소 90일 저온 숙성 너도밤나무 칩 활용, 비교적 단기
알코올 약 5% 약 5%
풍부한 홉 향, 바닐라·사과 향, 약간 쌉쌀 가볍고 청량, 드라이, 순함
생산 규모 연 140만 헥토리터, 66개국 수출 연 수억 헥토리터, 80개국 이상 판매
브랜드 가치 체코 국민의 자부심 세계 2위 맥주 브랜드 가치 (138억 달러)

🤔 그래서, 누가 진짜 버드와이저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적 정통성으로 보면 체코이다. 부드바이스 지역의 맥주 양조 역사는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버드와이저"라는 이름 자체가 이 도시에서 비롯되었다.

 

상표 등록 선점으로 보면 미국이다. 1876년 아돌퍼스 부시가 먼저 미국에서 상표를 등록했고, 법원도 이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

 

규모와 영향력으로 보면 단연 미국이다. 미국 버드와이저는 부드바르보다 무려 4,166배 더 많은 맥주를 판매한다.

 

체코 부드바르 CEO 페트르 드보르자크(Petr Dvořák)는 2019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뉴욕 바에서 '체코 라거 뭐 있어요?'라고 물어볼 때, 그것이 우리나라를 위한 큰 승리입니다. 우리는 1,000만 명의 주주를 가진 양조장입니다. 우리는 국가 소유입니다."


🔮 분쟁의 미래

일부 전문가들은 최종적으로는 합의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또 다른 이들은 분쟁이 앞으로도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체코 버드바르가 국가 소유인 한, AB InBev가 이를 인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점이다. 수익을 내고 국가 재정에 기여하며 맛도 뛰어난 이 양조장은 체코에게 절대 팔 이유가 없다.

 

다음에 "버드와이저"를 주문할 때, 그 이름 뒤에 숨겨진 760년 양조 역사와 120년 법정 싸움을 한번쯤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어떤 버드와이저를 마시든, 당신의 선택은 이 긴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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