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rzRGXVZ6s?si=tXze9lAYl2d_QFSY
KBS 다큐 인사이트 〈인재전쟁2〉 2부 '코리아 딜레마'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시대에 한국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정면으로 다룬다. 1부 '차이나 스피드'가 중국의 놀라운 도약을 담았다면, 2부는 그 거울 앞에 선 한국의 민낯을 보여준다. 1부를 두고 '충격과 공포'라는 반응이 많았다면, 2부는 '슬프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이유가 너무나 자명하다는 데서 오는 무력감이었다.
의대 블랙홀: 최상위 인재들이 향하는 곳
2025학년도 일반고 유일의 수능 만점자 서장협 씨는 자신의 꿈을 좇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 진학했다. 주변의 반응은 하나같이 '의외'였다. 성적이 아깝다며 의대 진학을 권유하는 이들이 많았을 정도다. 실제로 그해 수능 만점자 11명 중 7명은 의대를 선택했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것은 단순한 진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중학교 입학 전 고등 수학까지 선행시켜 준다는 '초등 의대반'이 전국구로 성행하고, 대치동 학부모 사이에서는 아이에게 '의대 머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지능 검사가 필수 관문으로 통하고 있다. 의대는 이제 단순한 학과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보험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인재가 의대로 몰리는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안정의 논리 속에서 '미래가 보장된 자격증'만을 좇는 사회 분위기다. 과학기술을 육성하겠다는 국가의 비전은 여전하지만, 단기 성과 중심의 평가 체계와 낮은 처우는 이공계 이탈 현상을 가속화해 기술 생태계를 점차 약화시키고 있다.
공대 열풍이 있던 시대: 과학기술이 키운 나라
한국이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에는 물리학과·전자공학과·기계공학과가, 1990년대에는 컴퓨터공학과·전자공학과가 인기 학과의 정상을 차지했다. 당시 공대 졸업장은 취업의 보증수표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1980년 최초 국산 PC 생산, 1986년 국산 자동차 최초 미국 수출,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 1996년 세계 최초 CDMA 이동통신 시스템 상용화. 이공계 인재들의 활약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추격자였던 한국은 어느새 '업계 최초'가 당연해진 선두 주자에 올라섰다. 그 절정이 1995년이었다. 바로 세계 최초로 무인 자동차의 도심 자율주행에 성공한 한민홍 교수의 성과였다. 자율주행 기술의 선구자가 한국에서 나왔던 것이다.
IMF가 심어놓은 불안의 유전자
그 성장 서사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앞에서 무너졌다. 기업들이 속속 무너지며 줄도산이 이어졌고, 가장 먼저 실직한 이들은 연구자와 개발직이었다. '오늘'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들은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고, 과학기술 인력의 직업적 안정성은 뿌리째 흔들렸다. 이는 전 국민의 심리 기저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 '탈공대 현상', '이공계 기피 현상'을 초래했다.
IMF가 심어놓은 불안의 유전자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사회 전체에 흐른다. "자격증으로 보호되는 직업군에 인재들이 몰리면 그 사회가 쇠락하는 증거"라는 한 과학자의 자조 섞인 말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의대 쏠림은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실패를 두려워하며 가장 안전한 경로만을 선택하는 '불안 사회'의 징후다.
인재 적자: 나가는 사람, 들어오지 않는 사람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공대 합격자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삼수를 마다치 않고, 직장인들마저 회사를 그만두고 의대 입시에 뛰어들고 있다. 반면 소신 있게 이공계를 택한 인재들마저 기회의 땅을 찾아 모국을 떠나고 있다.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온 한 원로 교수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소식은 정년 무렵 한국에서 들려온 R&D 예산 삭감 소식이었다. 과학계가 오랫동안 홀대받아온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 예산만큼은 지켜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보루마저 깎여 나가는 것을 보며 그는 깊은 좌절을 느꼈다. 결국 그는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한 중국행을 택했다. 1995년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했던 과거와, 원로 과학자가 연구 예산 삭감에 절망하며 중국행을 택하는 현실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인재 전쟁터의 현주소: 한국의 승산은 있는가
글로벌 과학기술 패권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의 인재들은 대부분 전력에서 이탈하고 있다. 이공계를 기피하는 최상위 인재, 해외로 떠나는 연구자, 삭감되는 R&D 예산 —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는 나라에서 기술 경쟁력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술은 국가의 사활적 열쇠가 됐다. 기술이 있는 국가는 생존하고 기술이 없는 국가는 생존할 수 없다.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야 한다"고 말한다.
다큐는 그러나 절망만을 전하지 않는다. 동료들의 이탈과 생업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도 과학기술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을 딛고 스스로 성장의 주춧돌을 놓아가며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이들, 이 인재들의 숨은 저력에 주목해야 할 때다. 결국 '코리아 딜레마'는 시스템의 실패이지, 인재의 실패가 아니라는 것이다. 구조를 바꾸면 방향도 바꿀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희망이 다큐의 마지막 메시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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