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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일상

「기술 패권의 지형 — 메모리 강국 한국과 미국의 전략적 딜레마」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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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계인급 기술"의 정체 — 암묵지(Tacit Knowledge)라는 진입 장벽

권 교수가 한국 반도체를 "외계인급"이라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 핵심은 문서화 불가능한 암묵지에 있다.

 

반도체 제조, 특히 DRAM 같은 메모리는 설계도가 유출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복제할 수 없다.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한 반도체 제조 공정은 예전처럼 설계도가 유출된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문서로 된 기술 정보 이면에는 오래 축적된 암묵지가 핵심 기술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엔지니어들은 수십 년에 걸쳐 수만 번의 공정 실패와 개선을 반복하면서, 어떤 온도에서 어떤 가스를 얼마나 투입하면 수율이 올라가는지, 장비가 미묘하게 흔들릴 때 어떻게 보정하는지를 몸으로 익혔다. 이런 감각은 매뉴얼에 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 문서의 유출만으로 격차가 좁혀질 기술이었다면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진작 중국에게 따라잡혔을 것이다.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중국이 10년 넘게 추격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실증한다.


2. 미국이 반도체를 못 이기는 구조적 이유 — 글로벌 분업의 역설

미국이 반도체 산업의 창시자임에도 불구하고 메모리 제조 역량을 잃어버린 데는 역사적 논리가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이 왜 조금씩 미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한국과 대만,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에 이르기까지 서진을 거듭해 왔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이는 단순한 임금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이 일단 특정 지역에 집적되면 기술·인재·협력 생태계가 함께 뿌리를 내려 이전이 극히 어려워지는 산업 집적의 법칙 때문이다.

 

미국이 CHIPS Act(2022)로 390억 달러를 투입해 반도체 제조를 본토로 되돌리려 했지만, 권 교수는 이 접근법의 한계를 직시한다. 반도체 산업같이 글로벌 분업 효과가 확실한 산업에서 한 국가 안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는 것은 반드시 비효율적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텔은 이 비용을 온몸으로 겪었고, 결국 파운드리 사업에서 후퇴했다.


3. 협력적 R&D의 붕괴 — 새로운 시대의 도래

권 교수의 논지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단순한 기술 우위론을 넘어 국제 R&D 협력 체제의 구조 변화를 짚는 대목이다.

 

1990년대 이래 반도체 산업은 IMEC(벨기에)나 Sematech(미국) 같은 다국적 공동 연구 플랫폼을 통해 차세대 기술을 함께 개발해 왔다. 개발 비용의 절약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의 축소, 같은 스케줄의 공유, 지식과 기술의 교환을 통한 비즈니스 파트너십 강화 등의 이득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국의 삼성과 SK하이닉스도 이 생태계의 핵심 회원사로서 차세대 기술을 선점해왔다.

 

그런데 이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2020년 이후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를 놓고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각국은 반도체 산업을 경제적 가치가 아닌 안보적 차원에서 더 우선적으로 정책적, 정치적 고려 대상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이는 30년간 상식처럼 통하던 글로벌 분업 체제와 협력적 R&D의 원칙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4. 미국의 진짜 속셈 — NSTC와 미래 기술 표준 장악

권 교수 분석의 정수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두 층위로 분리하는 데 있다. 표면적으로는 제조 리쇼어링처럼 보이지만, 심층에는 훨씬 더 정교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획책하는 것은 현재 기술 기반의 반도체 A~Z 독점에만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다. 미국이 중장기적으로 자국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 지속가능성을 꿈꾼다면 현재의 설계-제조 사이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생태계의 독점이 아닌, 앞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기술과 로드맵에서의 주도권, 그리고 기술 사용권에 더 주안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그 수단이 바로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입니다. 기존의 IMEC나 Sematech가 국적을 불문하고 기업들에게 열려 있었던 것과 달리, NSTC는 기술적, 경제적 자격을 넘어, 외교·안보적 자격으로 확장될 것이다. 미국 혹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에서도 미국과 밀접한 산업·기술적 협력관계를 체결한 일부 국가들의 기업이나 연구기관으로 NSTC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한정될 것이다.

 

다시 말해, 차세대 반도체의 기술 표준을 누가 쥐느냐가 향후 산업의 판도를 결정하며, 미국은 이 표준 결정 권한을 NSTC를 통해 장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5. HBM과 AI 시대 — 한국의 위치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구도는 한국에게 더욱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 삼각 동맹이 AI 반도체 시장의 85%를 지배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HBM(고대역폭 메모리)은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핵심 부품으로 들어가며, HBM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업이자, HBM 업계에서 압도적인 글로벌 1위 생산 업체라는 위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권 교수는 이 구도가 영원하지 않다고 경고한다. 어떠한 기업이든 기술적인 독점 구조가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짚으면서, 이러한 구도에 균열을 만드는 시그널들이 보이고 있다며 최근 엔비디아가 직접 로직 다이(베이스 다이)까지 만들겠다고 밝힌 것을 언급했다. 따라서 한국은 현재의 메모리 강점에 안주하지 말고, 차세대 메모리와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포지션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메시지이다.


6.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 — "파도에 올라타라"

권 교수의 논지는 현황 분석에 그치지 않고 명확한 전략적 처방으로 귀결된다.

 

더 적극적으로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연구개발 기관들과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하고, 더 많은 미국의 연구 중심대학, 국립연구소들과 협력을 이어 나가야 한다.

 

동시에 대미 협상의 프레임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정부와의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 협상은 미국에 대한 한국의 투자가 몇십억 달러인지, 몇 년짜리인지 등에 대한 숫자 싸움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미국이 새로 형성할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다른 참여 국가들과 기업들에 앞서 한국이 차지하는 핵심 역할에 대한 기술적 세부 사항과 비전의 공유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권 교수의 핵심 통찰은 다음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한국의 핵심 엔지니어들과 축적된 암묵지야말로 한국이 미국에서 당당한 지분을 요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 될 수 있으며, 미국이 추구하는 차세대 공정 기술의 주도권을 공유할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권 교수의 논지는 기술 자랑이 아니라 냉정한 지정학적 분석이다. 한국의 반도체 강점은 실재하지만 그것이 영원하지 않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기술 질서 속에서 한국이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능동적 지분 보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https://youtu.be/3oozJssFCxY?si=K7ZT7S26sXuNEp8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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