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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

기계로서의 인체 — 하비의 혈액순환과 이슬람 의학의 유산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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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도바에서 길러진 혁명가 — 윌리엄 하비

베살리우스가 갈레노스의 해부학적 오류를 수정했지만, 가장 근본적인 오류 하나는 그의 손에서도 바로잡히지 않았다 — 혈액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의 문제였다. 갈레노스의 이론에 따르면, 혈액은 간에서 만들어져 정맥을 통해 신체 각 기관으로 흘러나가며 영양분으로 소비되고, 동맥은 폐에서 받은 '생기(vital spirit)'를 전신에 전달하는 전혀 별개의 통로였다. 동맥과 정맥 사이에는 연결이 없었다.

 

이 1,400년 묵은 이론을 무너뜨린 것이 영국 의사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였다. 하비는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후 1597년 파도바 대학으로 유학해 히에로니무스 파브리키우스(Fabricius)에게 사사했다. 파브리키우스는 정맥 내 판막(venous valve)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그 기능을 간에서 흘러나오는 혈액의 속도를 늦추는 장치로 오해했다 — 갈레노스적 세계관의 틀 안에서 발견을 해석한 것이다.

 

하비는 스승이 발견한 판막에서 전혀 다른 결론을 이끌어냈다. 판막이 단방향 통로라는 것은, 혈액이 심장을 향해서만 흐를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비는 매 심박동마다 심장이 약 2온스의 혈액을 내보내며, 분당 72회 박동으로 계산하면 한 시간에 540파운드(약 245킬로그램)의 혈액이 방출된다는 것을 계산했다. 이 혈액이 모두 소비된다면 간은 그것을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혈액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어야 했다.

 

하비는 팔뚝 근육이 발달한 농장 일꾼들을 대상으로 지혈대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정맥의 혈액이 항상 심장을 향해 흐른다는 것을 직접 증명했다. 심장은 신비로운 영적 기관이 아니라 혈액을 강제로 밀어내는 근육 펌프였다.


2. 『심장의 운동에 관하여』 — 인체를 기계로 보는 시선

1628년 하비는 이 연구 결과를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Exercitatio Anatomica de Motu Cordis et Sanguinis in Animalibus)』로 출판했다. 86쪽의 이 소책자는 의학사의 가장 중요한 저작 가운데 하나다. 그 핵심 주장은 명료했다 — 심장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펌프이고, 혈액은 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나갔다가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돌아오는 하나의 폐쇄 순환 회로를 이룬다.

왕립 의사협회 검열실

 

이 이론이 함축하는 철학적 전환은 심오했다. 인체는 이제 신비로운 체액의 복잡한 균형이 아니라, 측정 가능하고 분석 가능한 기계로 파악될 수 있었다. 하비 자신은 신을 경외하는 보수적 인간이었고, 결코 갈레노스를 전복하려는 혁명가가 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 그는 코페르니쿠스가 그러했듯, 단지 자신이 관찰한 것을 기술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의학과 철학 모두에서 혁명적이었다.

 

하비의 발견이 완전히 입증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미세한 혈관 — 모세혈관 — 의 존재였다. 이것은 하비가 예측했지만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고, 현미경을 통해 마르첼로 말피기(Marcello Malpighi)가 1661년에 최초로 관찰했다.


3. 이슬람 의학 — 유럽이 잊은 동안 세상이 보존한 것

유럽이 갈레노스의 권위 아래 정체되어 있던 중세 시기, 의학 지식의 실질적 발전은 이슬람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슬람의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와 인도의 방대한 의학 문헌을 수집해 아랍어로 번역하고, 그 위에 독자적 연구를 축적했다. 이 번역 운동을 통해 보존된 그리스 의학 텍스트들이 12~13세기 이후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유럽 르네상스 의학의 토대가 되었다.

 

11세기 이슬람 세계 의학의 정점에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 유럽에서는 아비센나(Avicenna)로 알려진 페르시아 의학자가 있었다. 그는 한센병 같은 질병이 접촉을 통해 전파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격리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의 저서 『의학정전(Canon of Medicine)』은 17세기까지 유럽 의과대학에서 표준 교재로 사용되었다.

 

근대적 의미의 전문 의료 시설 — 훈련받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 — 이 처음 탄생한 것도 이슬람 세계였다. 이슬람 병원은 병동을 질환별로 구분하고, 감염 환자를 다른 환자로부터 격리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이에 비해 같은 시기 기독교 유럽의 병원은 안정을 취하게 하는 것이 치료의 전부인 비위생적 시설에 불과했다.

 

지식의 역사는 직선이 아니다. 그리스의 의학이 아랍의 손에서 살아남아 유럽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고, 베살리우스와 하비의 혁명은 그 오랜 지식의 사슬 위에서 비로소 가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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