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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투자

눈덩이를 굴리는 사람 - DCA 또는 정액 적립식 투자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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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걸까.

투자를 처음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었다. 대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다. 적어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그냥 — 오래, 꾸준히, 재미있게 하고 싶었다.

 

그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눈덩이를 굴린다는 것

워런 버핏의 공식 자서전 제목은 《스노볼(The Snowball)》이다. 책 제목이 된 이 단어는 버핏이 자신의 투자 철학을 설명할 때 즐겨 쓰던 비유에서 왔다.

 

*"인생은 눈덩이와 같다. 촉촉한 눈과 긴 언덕만 있으면 된다."*

 

촉촉한 눈은 좋은 투자처다. 긴 언덕은 시간이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눈덩이는 스스로 커진다. 처음엔 너무 작아서 티도 안 난다. 굴려도 굴려도 별로 커지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어느 시점을 넘으면 갑자기 가속이 붙는다. 내가 굴리는 속도보다 스스로 커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순간이 온다.

그게 복리다.

 

나는 이 비유가 너무 좋아서, 내 투자 방식에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눈덩이 굴리기. 영어로는 DCA(Dollar-Cost Averaging), 한국어로는 분할 매수 혹은 정액 적립식 투자라고 한다. 번역이 영 감성이 없어서 그냥 눈덩이 굴리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신경 쓰지 않고, 매주 정해진 금액을 꾸준히 사 모으는 방식이다.

 

눈덩이 굴리기의 핵심은 타이밍이 아니다. 시간이다. "지금 사도 될까?" 고민하는 대신, 그냥 매주 산다. 오르면 적게 사지는 대신 보유한 것이 오르고, 내리면 더 많이 살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눈덩이는 조금씩 커진다. DCA는 시장의 단기 변동성을 예측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대신, 시간의 힘을 이용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나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붙이고 싶다. 가장 오래 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소수점이라는 작은 입장권

문제는 내가 담고 싶은 주식들이 너무 비싸다는 거였다. 엔비디아, 애플, 삼성전자 — 시총 상위 종목들은 한 주에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훌쩍 넘는다. 매주 조금씩 굴려보려는 사람에게 한 주 가격은 너무 높은 벽이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소수점 주식이다. 국내 주식은 KB증권, 미국 주식은 한국투자증권 미니스탁을 이용하고 있다. 덕분에 엔비디아가 한 주에 수백만 원이어도 매주 1만 원씩 0.01주를 살 수 있다.

 

처음엔 0.01주라는 숫자가 우습게 느껴졌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눈덩이 굴리기의 눈으로 보면 다르다. 눈덩이도 처음엔 눈 한 줌이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언덕 위에 올려두는 것이다. 올려두기만 하면 굴러간다.

 

소수점 주식을 처음 접하면 수수료가 걱정되기 마련이다. 1만 원을 사는데 25원의 수수료라니, 한 주를 통째로 사는 것보다 손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계산해보면 기우다. 수수료율은 금액에 비례하기 때문에, 1만 원을 매주 사든 52만 원을 한 번에 사든 1년치 총 수수료는 정확히 같다. 나눠 산다고 더 내는 게 아니다. 눈덩이를 조금씩 굴린다고 언덕 사용료가 더 비싸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증권사 입장에서 소수점 서비스를 내놓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소액으로 투자를 시작한 사람이 결국 그 증권사의 오랜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락인(Lock-in) 전략이다. 나도 그렇게 발을 들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쁘지 않다. 덕분에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으니까.


나만의 눈덩이를 설계하다

국내와 미국 각각 10개씩, 총 20개 종목을 담고 있다. 기준은 단순하다. 시총 20위 안에 드는 기업만 고른다.

 

ETF를 사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ETF는 분산 투자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내가 원하는 종목을 내 마음대로 담을 수 없다. 특정 기업을 더 믿고 싶어도 비중을 마음껏 조절할 수 없다. 눈덩이를 굴리는 재미는, 내 손으로 눈을 빚는 데 있다. 그래서 직접 고르기로 했다.

 

비중은 시총 순위를 기본으로 하되, 내 판단을 조금 섞는다. 더 믿음이 가는 기업에 조금 더, 그렇지 않은 곳은 조금 덜. 어떻게 보면 내가 직접 설계한 나만의 ETF인 셈이다. 시총 상위 기업들은 단순히 인기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의 인프라가 된 곳들이다. 10년을 믿고 맡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ETF는 별도의 방법으로 따로 운용하고 있다. 소수점 개별 종목은 그것과는 역할이 다르다. 안정적인 큰 그림은 ETF가 담당하고, 내 판단과 취향이 담긴 눈덩이는 따로 굴린다.


재미가 있어야 오래 굴린다

사실 이 방식을 택한 데는 가장 솔직한 이유가 있다. 재미다.

 

주식 거래를 하면서 시장에 참여하는 느낌, 내가 고른 종목이 오를 때의 작은 기쁨, 내려도 "어차피 더 싸게 사는 거잖아"라고 편안하게 넘길 수 있는 여유. 이런 것들이 투자를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아무리 합리적인 전략이어도 재미없으면 오래 못 한다. 눈덩이 굴리기도 마찬가지다. 굴리는 사람이 중간에 손을 놓으면 눈덩이는 멈춘다. 멈춘 눈덩이는 녹는다. 버핏이 말한 가장 위험한 투자자의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지루해서 괜히 건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지루하지 않게 만들면, 건드리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안전망 안에서 즐기는 방식을 택했다. 시총 상위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 판단을 조금 섞어가며, 매주 조금씩 굴리는 것. 큰 돈은 못 벌어도 괜찮다. 큰 손해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 재미있다.


언덕은 길수록 좋다

버핏은 복리로 인한 재산 증가를 강조하며, 오늘의 작은 돈이 먼 미래에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늘 생각했다. 그가 평생 강조한 것도 결국 하나였다. 오래, 멈추지 않고.

 

복리는 초반엔 티가 안 난다. 눈덩이가 작을 때는 아무리 굴려도 별로 커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중간에 손을 놓는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그런데 그게 가장 큰 실수다. 눈덩이는 굴리는 시간이 길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가속이 붙는 시점은 반드시 온다.

 

나는 지금 그 시점을 향해 매주 눈덩이를 굴리고 있다. 노후라는 아주 긴 언덕 위에서, 서두르지 않고, 멈추지 않고.

언덕은 길수록 좋다. 나는 이제 막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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