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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원형 아치와 짧은 경간이 많은 돌다리는 보통 로마가 만들었기 때문에 로마의 기술자들이 다른 것을 만들지 않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사실 그들은 ’현장의 특성에 따라 아치를 다양하게 변형하는‘ 기술과 취향을 보여주었다. 테베레(Tiber)강을 가로지르는 7개의 다리는 균일하게 낮은 반원형 아치가 있는 단단한 사각형의 돌로 만들어졌다. 현재 6개는 재건에 가까운 대대적인 수리를 거친 후에도 여전히 서 있다. 그들은 플라미니우스 도로(Via Flaminia)의 나르니(Narni)에 있는 바위 협곡을 가로지르는 600피트 이상의 높은 구름다리를 세웠는데, 4개의 아치 중 가장 긴 아치는 138피트 길이였다. 스페인의 오우렌세(Ourense)에는 이보다 조금 더 긴 아치를 하나 더 만들었고, 스페인 알칸타라(Alcantara)에 있는 타구스(Tagus)강 위에 175피트 높이의 거대한 다리를 세웠는데, 이 다리는 아마도 그들의 기록일 것이다. 6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이 다리의 중앙 경간은 각각 118피트이며, 600피트 길이의 도로를 지탱한다. 서기 98년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건설한 기술자 라세르(Lacer)에 따르면, 이 교량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종종 수리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통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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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칸타라 다리

 

여행이 적은 지역에서는 로마인들이 접근로를 메우는 데 드는 비용을 절약하고 옹벽 건설을 피하려고 새로운 유형의 다리를 건설했다. 스페인의 마르토렐(Martorell) 다리처럼 도로가 아치 자체의 경사를 따랐는데, 무어인 건축업자가 건설했지만, 로마가 재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과 다른 지역처럼 하천의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로마의 엔지니어들은 다리를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큰 정사각형 돌로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다리를 포장하고 양쪽에 말뚝으로 지탱된 수평 보로 구성된 보호 울타리로 이 건널목을 보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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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ente del Diablo (Martorell)

 

로마인이 직면해야 했던 가장 큰 어려움이자 엔지니어들을 괴롭혔던 문제는 모든 변화무쌍한 조류에 견딜 수 있는 다리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그들은 벽돌의 무게로 이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무거운 교각과 짧은 경간의 아치는 사실상 하천을 막아 교각 주변의 유속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트루비우스가 충분히 설명했듯이, 해류가 밑으로 파고들어 가장 무거운 구조물을 훼손할 수 있으므로 느슨한 암석을 버리거나 기초를 덮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로마의 기술자들은 어떤 이유로든 적절한 기초를 마련하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일단 기초를 마련하면 암반까지 내려가서라도 가장 변덕스러운 물줄기 아래로 내려가는 작업을 철저하게 수행했다. 한 가지 방법은 부두가 세워질 지역 주변에 철제 말뚝을 촘촘히 박는 것이었다. 말뚝을 박는 데 사용한 기계는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무거운 무게를 들어 올리는 단순한 기중기로 말뚝을 박았을 것이다. 말뚝 사이의 재료는 단단한 바닥까지 굴착되었다. 그런 다음 화산회 시멘트를 부어서 물속에 부두를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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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탄젤로 다리(Ponte Sant'Angelo)

 

이 방법을 사용할 때 물이 너무 깊은 곳에서 로마인은 화산회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 고리버들로 묶은 말뚝으로 이중벽을 쌓고, 점토로 방수 포장하여 주변을 둘러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다음 물레방아를 이용해 방죽 안의 물을 비우고 암반이나 수면보다 훨씬 아래 바닥에 박은 말뚝을 바탕으로 단단하게 마른 절단석으로 만든 벽돌을 쌓았다. 현재 산탄젤로 다리(Ponte Sant'Angelo)인 폰스 아엘리우스 교각의 기초는 테베레강 아래 16피트 이상 내려가므로 이런 방식으로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홍수로 떠내려간 로마 교량의 수를 보면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드는 공법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기원전 62년에 건설된 폰스 파브리시우스 다리(Pons Fabricius)는 여전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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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스 파브리시우스 다리(Pons Fabricius)

 

기원전 55년 모젤강 하구 근처 또는 더 멀리 본에서 라인강을 가로지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다리(Caesar's Rhine bridges)는 그가 묘사한 어려운 라틴어 때문에 남학생과 여학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마무라(Mamurra)를 비롯한 엔지니어들은 둑에 자재를 조립한 후 열흘 만에 완공했다. 제방의 길이는 54마일로, 25피트 간격으로 박은 말뚝 위에 목재가 받쳐져 있었다. 목재가 어떻게 고정되었는지는 그의 해설서 제4권에는 나와 있지 않다. 카이사르가 매우 서둘렀거나 더 튼튼하게 건설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실제로 그는 18일 만에 다리를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라인강을 가로지르는 로마의 다리도 나무로 지어졌다. 마인츠, 트리어, 쾰른의 유적에서 아치형 돌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무 교각은 납으로 돌을 밀봉한 금속 맞춤 못이나 조임틀로 고정된 돌 블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교각 위에 세워졌으며, 교각은 150~200개의 말뚝을 깊이 박아 놓은 군집 위에 놓여 있었다. 쾰른의 교각은 실제로 강바닥에서 꺼내기 위해 폭파해야 했고, 콘스탄틴의 엔지니어들은 서기 310년경에 이 구조물을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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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다리(Caesar's Rhine bridges)

 

철의 문 근처의 다뉴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로마의 모든 다리 중에서 가장 허세 가득한 다리였다. 로마의 유명한 기둥에 황제로서 자신의 업적을 찬양하는 이 다리의 스케치를 얇은 부조로 새겼기 때문에 적어도 트라야누스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기둥은 비트루비우스와 프론티누스를 제외하고는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술자였던 다마스쿠스의 그리스인 아폴로도루스가 서기 104년에 세웠다. 트라야누스 기둥에 새겨진 그의 모습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우리가 아는 그의 다리는 기둥과 현대 역사가들의 빈약한 언급, 그리고 썰물 때 볼 수 있는 교각 기초에 대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The oldest bridge across the Danube, constructed by Apollodorus of Damascus between 103 and 105 CE, directed by Trajan, modern Serbia and Romania.

트라야누스 다리

 

다리의 길이는 약 3,720피트, 폭은 40~50피트였다. 교각의 중앙에서 중앙까지 평균 120피트, 즉 177개의 경간으로 이루어진 21개의 교각이 있었다. 아폴로도루스는 자재 운반을 쉽게 하도록 중간에 커다란 인공 섬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임시 물막이 댐에 고정된 느슨한 암석으로 기초를 쌓고 교각을 약 60피트 정도 쌓아 올렸다. 우리는 그것들이 절단된 돌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강에서 그러한 벽돌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교각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든 트라야누스 기둥에 보이는 형태와 같이 나무 아치로 연결된 것은 분명하다. 아폴로도루스는 불과 두세 계절 만에 이 작업을 완수했는데, 이는 전 군대를 지휘하에 두고도 놀라운 성과였다. 아폴로도루스의 다뉴브강 다리가 어떻게 또는 왜 파괴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트라야누스의 후계자 하드리아누스가 야만족이 제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다리를 파괴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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