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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트 엔진의 한계는 분명했다. 결국 느리고 투박하고 번거로웠다. 부품은 크고 정렬하기가 어려웠으며, 대부분은 손으로 깎고 다듬어야만 맞출 수 있는 거친 주물에 불과했습니다. 단조품은 되도록 원하는 크기에 가깝게 만들어졌으며, 기계로 절단하지 않았다. 기어는 전혀 가공하지 않고 주조로 만들었다. 그 결과 마찰로 생기는 동력 손실이 너무 컸다. 이 엔진은 저압에서 작동했고, 뉴커먼 엔진과 마찬가지로 증기의 팽창력을 활용하지 못했다. 제임스 와트는 고압의 이점을 알고 있었지만, 폭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기압보다 높은 압력에서 증기를 사용하는 엔진을 최초로 설계하고 작동시킨 사람은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1772년경 마차 제작자의 수습생이었던 필라델피아의 올리버 에반스는 동물의 힘 없이 마차를 움직이는 방법을 생각했고, 1812년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이웃 대장장이의 아들이 그에게 ‘증기의 탄성력’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통에 물을 채우고 뭉치로 꽉 조인 다음 통을 불 속에 넣었다. 에반스는 “마치 화약을 장전한 것 같이 균열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우스터 후작은 수년 전에 증기에서 같은 특성을 발견했다.

 

에반스는 1786년 펜실베이니아주 의회에 자신이 개발한 ‘제분소’와 ‘증기 마차’의 독점적 사용을 청원했다. 1787년 3월, 그는 곡물을 연속 처리하고 제분할 수 있는 놀라운 메커니즘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았지만, 입법자는 그의 ‘증기 마차’를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그 주장 때문에 그들은 그를 ‘미쳤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801년, 그는 증기로 마차와 배를 움직이겠다는 야망으로 돌아와 증기의 '탄성력'을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엔진을 개발하는 것으로 목표를 확대했다. 필라델피아의 시장과 9번가에 있는 석판은 그가 ‘지휘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인 3,700달러로 소형 비응축식 고압 증기기관을 제작한 작업장 부지를 표시하고 있다.

 

Oliver Evans - Automated mill.jpg

 

그는 엔진에 6인치 실린더, 18인치 피스톤 스트로크, 지름 7½피트의 나무 플라이휠을 장착했지만, 에반스의 엔진이 중요한 것은 플라이휠이 아니었다. 이 엔진의 특징은 50psi의 압력으로 분당 약 30회 회전하여 증기를 공기 중으로 배출함으로써 응축기를 제거했다는 점이다. 이 압력을 얻으려면 에반스는 구리 보일러를 철제 고리로 묶은 나무로 감싸고, 불의 열기가 물에 더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보일러 중앙을 가로지르는 수평 송풍관을 만들었다. 그는 엔진을 똑바로 세워서 피스톤 막대가 위의 빔으로 직접 구동되도록 했다. 이 빔은 받침점, 즉 지지점이 중앙이 아니라 한쪽 끝에 있었고, 받침점의 지지대가 흔들리는 기둥에 있었기 때문에 와트의 평행봉처럼 복잡한 배열이 필요하지 않았다. 에반스의 작업 빔은 피스톤 로드에 맞춰 정렬되었다. 이 디자인은 메뚜기형이라고 불리며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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