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3. 14:58ㆍ기타/시간여행
2003년, 요코하마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도시였다. 그것은 요코하마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나의 첫 해외여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이 별로 없다. 이 시기에는 디지털카메라가 존재하긴 했지만 꽤 비쌌기 때문에 난 가지질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휴대폰 카메라는 별로 성능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이 별로 없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데 지금은 너무 후회스럽다. 필름 카메라라도 살걸... 필름 카메라도 없었고 단지 기억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기억도 일부일 뿐이지만...
사실 지금은 요코하마까지 무엇을 어떻게 타고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공항에 요코하마까지 가는 버스를 탔던 것 같다. 첫 해외여행이라서 그저 도착하는 게 지상 최대의 목적일 뿐이었다. 요코하마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랜드마크 타워는 그 높이가 나를 압도했다. 서울도 자주 가지 않는 탓에 고층 빌딩을 본다는 건 꽤 새로운 일이었다. 랜드마크 타워는 73층이니까 63 빌딩보다도 10층이나 더 많다.
요코하마 출장에서 별로 업무는 없었다. 사실 업무도 아니다. 학회 참석이 목적이었는데 학회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전기공학에 관한 학회였다. 이제는 쉴 시간이다. 도심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나는 산케이엔 정원(三溪園)으로 향했다. 이곳은 고요한 자연 속에서 마음속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일본 전통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나는 잠시나마 일상의 번잡함을 잊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바로 이곳에서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정원을 소개하는 포토북을 구매했다. 상당히 비쌌기 때문에 엄청 망설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후 모든 여행지에서 포토북을 구매하는 습관이 생겼다. 여행에서는 여행에만 집중하고 사진 찍는 데에 별로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돈을 주고 포토북을 산다. 이후 포토북을 사는 것도 일이 되어 버렸다. 이후 몇몇 여행지는 포토북을 구매하지 못했다. 없어서... 몇몇 여행지는 너무 비싸서 구매하지 못했다.
또, 하나는 정원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후 한중일 모두 정원을 다녀봤지만 정말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하물며 유럽은 또 다르다. 너무 생각하지 않고 쉽게 표현해 보면 한국은 자연 그 자체, 중국은 자연과 인공의 중간, 일본은 완전 인위적인 질서를 정원에서 보여준다. 이 느낌은 각자의 느낌일 뿐이다.
뭐니 뭐니 해도 요코하마의 핵심은 미나토 미라이 21 지역이다. 이곳은 요코하마의 과거와 현대를 모두 보여준다. 초고층 빌딩과 대관람차, 그리고 오래된 건물이 어우러진 곳이다. 특히, 밤이 되면 조명이 켜지고 시간을 보여주는 대관람차는 여기가 요코하마라고 알려준다. 이곳에서 바라본 요코하마의 야경은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사실 당시 일본 만화에서는 이 시계를 보여주는 대관람차가 심심치 않게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화려한 등불과 다양한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전 세계에 차이나타운이 있는 곳은 많지만 현지의 문화와 섞이면서 이게 중국적인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각 나라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르기도 하다. 한국의 중식이 중국의 중식과 다르듯 일본의 중식도 중국의 중식과 다르다. 나가사끼 짬뽕처럼 말이다.
모토마치 공원은 관광 책자에 잘 나오지 않는다. 야마테 234번관과 경계가 모호하다. 모토마치 공원은 벚꽃이 아름답게 피는 공원으로 유명하다.
야마테 234번관은 사카 기치조의 설계로, 1927년경에 건축된 외국인 취향의 아파트먼트 하우스로, 그 수가 몇 안 되는 요코하마시에 있는 근대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1980년경까지 아파트먼트로 사용되었다.
신요코하마 라면 박물관에는 1958년의 옛 도쿄 거리를 재현하였고, 전국에서 엄선한 라면가게가 늘어서 있다. 라면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곳과 좋아하는 스프, 면, 육수, 기름, 건더기를 자유롭게 넣어서 자기만의 오리지널 라면을 만들 수 있는 「마이 라면 키친」이 특히 인기 있다. 박물관에서는 전국 각지의 라면과 관광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야마시타 공원은 베이브리지와 항구를 오가는 선박이 보이는 공원이다. 빨간 구두를 신은 여자 아이의 동상과 인도 탑, 미국 샌디에이고가 기증한 물의 수호신 등, 해외와 교류를 기념하는 비가 많다.
야마시타 공원에서 보이는 마린타워는 요코하마 개항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1961년에 건설된 요코하마의 심벌이다. 높이는 106m이고, 2층까지 천장이 트인 홀에는 야마시타 키요시 화백의 벽화와 마린 타워가 등대였던 시절에 사용된 등불기구가 전시되어 있으며, 레스토랑과 바도 있다.
세계 각국의 사람을 맞이하는 요코하마 항구의 현관으로, 대형외국여객선이 기항하는 터미널이다. 무엇보다도 옥상광장은 천연잔디와 선박의 갑판을 이미지화한 우드덱을 설치해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미나토미라이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요코하마에서 난 학회 행사의 하나로 배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탁 트인 바다와 항구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요코하마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토목공학과 출신으로 장대 교량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베이 브리지 아래를 지나가는 느낌은 남달랐다. 배 안에서 만난 NEC 엔지니어랑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말이다. 서로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NEC는 일본 전기 회사의 줄임말인데 당시에는 그저 일본의 잘 나가는 회사들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그 위상이 엄청 달라졌지만 말이다.
산케이엔 정원 → 요코하마 미나토 미라이 21 →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 모토마치 공원 → 야마테 234번관 → 신요코하마 라면 박물관 → 야마시타 공원 → 오산바시 요코하마 국제 여객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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