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학자의 서재

「하얀 전쟁」 서평 #3, '한국군 용병에 대한 역사적 평가'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3.
반응형

한국군 용병론에 대한 역사적 평가

칼 센버거

Los Angeles Times, 10 September, 1989, Book Review p.2

 

베트콩이나 월남인을 의미하던 ‘국(gook)’이라는 단어는 밥을 먹고 사는 왜소한 사람들과 싸워서 우리들이 패배했던 비정한 전쟁의 인종 차별적인 배경과 더불어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잊고 싶어하는 미국 언어의 오래된 아픈 상처이다.

 

하지만 이 단어의 근원이 월남이 아니라 한국이었다는 사실은 전쟁에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 이외에는 누구라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일이다. 혹시 토론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가능성이 많은 이 사실은 아시아의 두 민족을 모두 뒤흔들어 놓았던 전쟁에서 공포의 하얀 훈장을 받은 어느 한국인 작가의 뛰어난 소절을 통해 밝혀진다.

 

안정효 작가는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국’이라고 줄여서 한국 사람을 불렀던 소년 시절의 역경을 회상하며 그 어원을 설명한다. 작가는 또한 대화를 통해서 그의 한국군 전우들이 월남의 정글에서 ‘국’들을 죽이며 그 단어가 새로운 의미를 사용하고 있다는 예를 제시하기도 한다.

 

한국의 소설 《하얀 전쟁》은 문화의 위기, 전쟁에 대한 죄의식과 자아에 대한 혐오감을 다룬 소설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한기주 병장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미국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미국의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베트남에서 싸웠던 거의 5만 명에 달하는 한국 주둔군 병력의 일부인 보병 사단 ‘백마부대’의 참전 용사였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 용병들은 사이공의 협조 요청에 따라 우방 여러 나라가 호응하기로 했기 때문에 미국도 역시 참전하게 되었다는 구실을 뒷받침하는데에 공헌한 셈이다. 한국군은 다수의 사상자를 내면서 그들의 봉급을 벌었는데, 서울의 군사 독재 정권은 이 사실을 국민에게 숨겼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전쟁을 추진하던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용병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의회에 비밀로 숨겼다.

 

소설에서는 이 사람들이 숨쉬고, 살아 있는 생생한 인간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베트남에서 '따이한' 병사들이 아시아인으로서 어떤 독특한 경험을 겪었으며, 그러면서도 '양키' 병사들을 괴롭혔던 공포와 무의미한 희생의 악몽을 함께 겪었던 과정을 묘사한다.

 

장거리 수색 정찰 중에 한 병장의 소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적 베트콩에게 한 사람씩 희생되는 동안 그의 전우 한 사람은 그들이 겪는 역경들을 왜 고향에서는 정부가 국민에게 비밀로 숨기는지 알고 싶다면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사람들은 이 전쟁이 우리들의 젊음과, 마음과 영혼, 그리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 그 병사가 불평한다. '그들은 우리들을 이 정글 속에다 생매장해놓고는 완전히 망각해 버린거야.'

 

사려깊은 지성인 한 병장은 민간인 생활로 돌아온 다음에 전형적인 베트남 전후 징후군에 시달린다. 죄의식과 소외감이라는 부담은 그의 결혼 생활을 황폐하게 만들고, 그가 잡학사전의 편집을 담당하는 출판사에서의 직장 생활을 방해한다.

 

전투와 회상 장면과 권태감이나 월남전 이후의 절망감에 대한 살벌한 서술이 전개되는 동안, 줄거리는 한국전쟁 때 어린아이였던 자신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교활한 월남 소년, 그리고 두려움을 못 이겨 정신이상이 된 전우, 이렇게 두 가지 망령을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노력을 추적한다.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영어로 번역한 안정효 작가는 조셉 콘래드나 저지 코진스키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의 생동감이 넘치는 산문은 뛰어난 것이다. 독자는 자동소총이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고, 헐벗은 고엽작전 지대의 풍경이 눈에 선하고, 사병들이 주고받는 농담이 현실감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작가가 모래밭에서부터 뼈와 붕대에 이르기까지 '하얀'이라는 형용사를 남용하는 것을 용서해 줘야 할 듯 싶은데, 그것은 그의 부대를 상징하는 백마와 아시아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빛깔이다.

 

이 소설은 1983년 작가의 모국어로 출판되었을 때 큰 관심을 끌었는데, 가장 분명한 이유는 이 작품이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던 몇 가지 정치적인 금기를 넘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쿠데타가 민주화를 향한 길을 갸날프고 약하게 만들기 4년 전이었던 그 당시에는 아직도 검열이 심했으며, 베트남에서 벌어진 군부의 용병 역할에 대해서는 솔직한 평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작가는 한국어판에서는 미군이 한국군 사병보다 23배의 월급을 받던 월남으로 박정희 전대통령이 군대를 파견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하며 한 병장이 깊은 생각에 잠기는 장면에서 '용병의 민족'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했다.

 

이런 신중함이 선웃음을 치는 등장인물 변진수 일병처럼 소심하거나 비겁한 짓이라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한국이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월남에서 군대 경력을 쌓은 장군 출신이며 전두환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재자의 통치를 받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두환의 후임자로서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은 장군 출신 노태우도 역시 파월 한국군에서 복무했다.

 

반골은 아직도 여러 곳에서 존재하고, 어느 정도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는 (그가 적인 베트콩의 입을 통해 완곡하게 전하는) 월남 민간인에 대해 한국 병사들이 자행했던 행위에 관한 얘기들 같은, 몇 가지 미묘한 역사의 문제들은 그냥 넘어가고 있다.

 

그 대신에 작가는 아시아에서, 특히 미군을 위해 텔레비전이 방영되는 한국에서 미국의 대중문화가 끼치는 엄청난 영향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진다. 주인공은 데이비드 레터맨 쇼를 얘기하고, 잡지 판매대에서 『펜트하우스』를 보고, 씨 레이션을 먹는다. 한국과 월남에서 자행되는 미국의 새로운 식민주의를 거부하는 민족주의적인 면모도 찾아볼 수 있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전쟁의 광증과 타락상이다.

 

'인간이란 나이를 먹어 가며 경험과 지혜를 쌓아 간다고 하지만, 26년이라는 세월과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순결과 정의의 인식과 나의 인간성과 존엄성을 상실했을 뿐이다.' 한 병장이 술회한다. '내 존재의 텅 빈 껍질 속에서는 집요한 분노가 타오른다.' <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