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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여행

난징, 계단 위의 혁명과 강물 위의 밤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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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여름 - 중국 근현대사의 심장부를 걷다

중국 여정의 마지막 도시는 난징이었다. 역사책 속의 '남경(南京)'이 아니라, 살아있는 도시로서의 난징 ? 그 이름을 처음 입 밖에 낼 때부터 어딘가 낯설고 또 친숙한 떨림이 있었다. 학회 때문에 찾은 여행이었지만, 베이징도 상하이도 아닌 이 도시는 도착하는 순간부터 달랐다. 공기 자체가 다른 무게를 품고 있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 혁명과 비극과 침묵의 무게.

곤곡(崑曲) - 사라져가는 목소리

환영 만찬 자리에서 공연이 시작됐을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부드럽고 가늘게 흐르는 선율, 느리고 정교한 몸짓, 얼굴 반쪽을 덮은 분장. 나중에야 알았다. 곤곡(崑曲)이었다. 636여 년의 역사를 거쳐 온 중국 전통 희곡 중 가장 오래된 장르. 한때 황실과 문인들이 즐기던 귀족적 예술이었으나, 19세기 청나라 때 경극에 밀려 이제는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처지가 됐다.

 


무대 위의 배우는 무언가를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잊혀지기 전에, 사라지기 전에.

 

공연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인기를 잃은 전통문화를 살리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종사자가 많아야 문화가 유지되는데, 돈이 되지 않으면 아무도 뛰어들지 않는다. 인기 없는 것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건, 어쩌면 역사의 오랜 습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라짐이 아깝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아름다운 것들이 가치를 증명하지 못해 사라진다는 사실이, 그날 밤의 가느다란 선율처럼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부자묘(夫子廟) - 공자의 그늘과 진회하의 밤

난징에 공자의 묘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공자는 산둥성 사람이니, 난징과 무슨 연이 있겠냐고. 그런데 부자묘(夫子廟)는 분명히 거기 있었다. '공부자(孔夫子)'에서 이름을 따온 이 사당은 중국 4대 문묘 중 하나로, 명청 시대 난징의 문교 중심지였으며 동남쪽 각 성을 아우르는 최고의 문화교육 시설이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중국술 '공부가주(孔府家酒)'에서 그 '공부'가 바로 공자를 가리킨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부자묘 앞으로는 진회하(秦淮河)가 조용히 흐른다. 낮에는 고풍스러운 처마 아래 사람들이 느릿느릿 오가고, 밤이 되면 강물 위로 붉고 금빛인 불빛이 내려앉는다. 야경이 화려하고 먹거리가 풍부해 관광객이 끊이지 않지만, 그 번화함 속에서도 이 거리는 어쩐지 단정한 품위를 잃지 않았다. 낮과 밤,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거리였다.

중산릉(中山陵) - 392개의 계단 끝에서

난징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중산릉(中山陵)이었다. 중국 민주 혁명의 선구자 쑨원(孫文, 손문)의 묘와 기념 건축물이 모인 이곳은, 약 80,000㎡의 부지 위에 흰색 화강암과 파란 유리 타일로 빛났다. 392개의 돌계단과 10개의 플랫폼이 하늘로 향하는 이 길은 시작부터 숨이 찼다. 여름의 열기 속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오를수록, 계단이란 것이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라는 걸 온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혁명은 수평으로 번지지 않는다. 언제나 이렇게 - 누군가 먼저 올라가야 한다.

쑨원은 1911년 신해혁명을 성공시키고 이듬해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에 오른 인물이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 모두에게 추앙받는, 드문 존재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불던 시절에도 홍위병조차 그의 묘는 건드리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얼마나 깊은 자리를 중국인의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이야기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그는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창립에 일조한 공로로,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서받았다. 계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난징 시내를 바라보며, 이 도시가 얼마나 많은 역사의 결절점이었는지를 새삼 느꼈다.

 

실용적인 메모 하나. 입장은 무료이지만, 외국인은 입구 안내센터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입장권을 따로 받아야 한다.

 

영곡사(靈谷寺) - 숲 속에 숨은 천 년

중산릉 인근에 자리한 영곡사는 소란스럽지 않았다. 오래된 불교 사원이 그림 같은 산과 숲 사이에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종교와 자연과 역사가 한데 뒤섞인 공간 ? 관광지라기보다 은신처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여름의 짙은 녹음 속을 걸으면서, 가을이면 이 숲길이 단풍으로 물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그 계절에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땀을 닦는 손수건만큼 자연스럽게 들었다.

학회라는 목적으로 찾은 도시였지만, 난징은 예상 밖의 깊이로 나를 붙들었다. 곤곡의 가냘픈 선율, 진회하 위로 내려앉는 야경, 392개의 계단 끝에서 마주한 혁명의 무게, 영곡사의 고요. 이 모든 것들이 학회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았다.

 

난징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봄이라고 한다. 2~3월 매화가 만발하고, 4월 초에는 벚꽃이 피어난다. 여름의 열기 속에 다녔던 그때와는 또 다른 난징을 ? 꽃이 피는 계절의, 조금 더 부드러운 도시를 ? 언젠가 꼭 다시 만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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