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우리나라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88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가 불러온 자신감, 그리고 올림픽을 계기로 급증한 해외 수요가 정부를 움직인 것이다. 경제 성장과 생활 수준의 향상, 그리고 1987년 민주화의 물결이 그 토대였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비행기 표를 끊고 짐을 싸는 이 자유로움 — 사실 그것조차 민주화 운동이 없었다면 얻지 못했을 권리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잊지 않아야 할 사실이다.

그런 시절, 일본 사람들이 신혼여행으로 즐겨 찾던 국내 명소가 있었다. 한국의 제주도처럼, 일본에서는 미야자키가 그 역할을 했다. 미야자키시 주변은 니치난 해안공원에 속하는 아오시마 등의 경승지와 남국의 풍광으로 1960년대 일본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맑은 하늘, 야자수, 푸른 바다 — 왠지 분위기도 제주도와 닮아 있다. 그러나 미야자키의 이미지는 '남국 정서'에 기반한 것이었으나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후 그러한 남국의 이미지는 오키나와로 옮겨갔고, 1990년대부터는 저렴해진 해외 관광지와의 경쟁까지 시작되어 관광 산업은 침체에 빠지고 말았다. 전성기를 지나 조금 쓸쓸해진 도시. 나는 2010년 3월, 학회 참석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지금은 골프 여행지로 더 많이 알려진 도시지만, 미야자키에는 그것 말고도 찾아볼 것들이 있다.

아오시마 섬 — 도깨비가 빨래하던 바다
미야자키를 대표하는 명소를 꼽으라면 단연 아오시마 섬이다. 둘레 1.5km 정도의 작은 섬으로, '귀신 빨래판'이라 불리는 기묘한 바위가 섬 전체를 에워싸고 있다. 단단한 사암과 부드러운 이암이 밀푀유처럼 겹쳐지고, 긴 세월에 걸쳐 부드러운 이암만 깎여져 생긴 바위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진 계단 모양의 암석이 섬 주변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모습은, 자연이 수천 년에 걸쳐 완성한 조각 작품이다. 이 섬은 미세 기후 지역이라 이 섬과 인접한 규슈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토착 동식물이 500여 종이나 된다.

섬 한가운데에는 아오시마 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섬 전체가 아오시마 신사의 신성한 영역으로 여겨지며, 수백만 년에 걸친 지질 형성과 두 개의 해류의 영향을 받아 조개껍데기와 퇴적물이 쌓이며 '기적의 섬'으로 불리게 되었다. 과거 신성한 장소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메이지 시대 이후에야 개방되었다. 약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신사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야마사치히코와 도요타마히메의 로맨스 무대로, 현재는 인연을 맺어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다리 기슭에는 두 신이 연애 편지를 교환했다는 신화를 기념해 2014년에 설치된 '행복의 노란 우체통'이 서 있다. 붉은 신전과 열대 식물이 어우러진 풍경은 일본 본토의 여느 신사와는 사뭇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JR 아오시마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이며, 육지와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쉽게 건너갈 수 있다.
우도 신궁 — 절벽 동굴 속 신사에서 소원 던지기
니치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우도 신궁이 나온다. 크고 붉은 도리이를 지나면 오른쪽으로는 넓은 바다, 왼쪽에는 푸른 산. 그 앞을 지나가면 뻥 뚫린 동굴 속에 본전이 나타난다. 우도 신궁은 일본에서도 드물게 해안가에 세워진 신사로, 여름에도 서늘한 본전은 신성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신화의 뿌리도 깊다. 민화 '우라시마 타로'의 토대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신화 '산해진미(海幸山幸)'의 등장인물인 야마사치히코와 도요타마히메가 이 땅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하여, 이 동굴은 '산전지(産殿址)'로 불린다. 동굴 안에는 '쓰다듬는 토끼'와 도요타마히메가 육아 때문에 유방을 바위에 붙였다는 '젖가슴 바위'도 있는데, 특히 젖가슴 바위는 안산과 육아에 효험이 있다고 여겨 여성에게 인기가 높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이 동굴이 실제로 일본 초대 천황 진무 천황이 태어난 장소라고도 전한다. 신사라기보다는 신화 그 자체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이곳의 명물은 '운타마 던지기'다. 운타마는 5개에 200엔이며, 남성은 왼손, 여성은 오른손으로 던져 거북바위의 움푹한 곳에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진다.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은 덕에 오히려 더 열심히 던지게 된다. 파도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작은 구슬에 소원 하나 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선멧세 니치난 — 태평양 앞에 선 모아이들
니치난 해안 언덕에는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 상을 복각한 7구의 석상이 태평양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 있는 테마파크 '선멧세 니치난'이다. 이 석상들이 여기 서게 된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1960년 칠레 대지진으로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이 피해를 입었는데, 1988년 일본의 한 방송사가 이를 방영하자 한 크레인 업체가 나서 1990년부터 3년간 쓰러진 모아이 석상을 세우는 것을 도왔다. 이에 이스터 섬 장로회가 감사의 뜻으로 모형 모아이 석상 제작을 승인하였고, 그렇게 7구의 모아이가 선멧세 니치난에 세워지게 되었다.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이스터 섬 측의 정식 허가를 받은, 세계 유일의 공인 복각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다른 문화의 유산을 가져다 놓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지만, 그 경위만큼은 뜻밖에도 진지하다. 그래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늘어선 거대한 석상들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한 잔의 여운 — 미야자키 고구마 소주
볼거리가 다소 아쉬운 미야자키에서 색다른 위안을 찾는다면 전통 소주 양조장을 방문해보자. 미야자키는 고구마 소주의 본고장이다. 미야자키의 청정한 물과 지역 농가에서 수확한 고구마, 그리고 '흰 누룩'을 사용해 빚어낸 고구마 소주는 특유의 묵직함 대신 은은한 단맛과 청량한 목 넘김이 특징으로, 현지인들이 식사와 함께 매일 즐기는 '반주' 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니치난 해안 인근 숲 속 양조장 '구라모토 아야 슈센 노 모리'에서는 그 제조 과정을 직접 둘러볼 수 있다. 깊은 산속에서 천천히 발효되는 술의 향기처럼, 미야자키도 그런 여행지다. 화려하진 않지만, 천천히 음미할수록 제맛이 나는 곳.


미야자키는 솔직히 말해 세계적인 절경이 넘쳐나는 여행지는 아니다. 비슷한 풍광은 동남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오래된 신화의 향기, 파도가 깎아낸 바위, 동굴 안 신사의 서늘한 공기, 그리고 작은 구슬 하나에 소원을 담아 던지는 사람들의 진지한 얼굴 — 이것들은 다른 곳에서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미야자키만의 결이다. 미야자키현은 제1대 천황의 탄생지라고 전해지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에 기록된 신들의 이야기와 관련된 많은 명소가 곳곳에 있는, 그야말로 '신화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한국인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시작하던 그 시절, 많은 일본인이 이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꿈꿨다. 그 이유가 뭔지, 이곳에 서보면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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