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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여행

2012년, 모스크바 — 웅장함 뒤에 숨은 도시의 얼굴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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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강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그 너머로 현대식 마천루가 하늘을 찌른다. 처음 마주한 모스크바는 예상보다 훨씬 거대하고,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소련의 무게와 현대 러시아의 욕망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도시. 어딘가 모를 거리에서 셔터를 눌렀을 때, 그 복잡함이 그대로 사진 속에 담겼다.


참새의 언덕 위에서 —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모스크바 국립대학교(МГУ)의 웅장한 스탈린 양식 건물은 참새의 언덕 위에 서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본다. 높이 240미터, 36층 규모의 이 첨탑 건물은 스탈린이 1940~50년대에 모스크바 곳곳에 세운 이른바 '스탈린 세븐(Seven Sisters)'의 하나로, 소련 사회주의의 자신감과 야심을 건축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같은 언덕에서 바라보면 루즈니키 경기장과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펼쳐진다. 높이가 주는 위압감 속에서도 그 아래를 뛰어다니는 모스크바의 아이들은 해맑다. 도시의 무게 따위는 아랑곳없이.


인민을 위한 궁전 — 모스크바 지하철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대리석 기둥, 샹들리에,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된 각 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1935년 처음 문을 연 모스크바 지하철은, 스탈린이 "인민을 위한 지하 궁전"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설계한 공간이다. 당시 국민 대다수가 초라한 공동 주택에서 살던 시절, 이 화려한 지하 공간은 평등한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위엄을 잃지 않은 채, 매일 수백만 명이 이 궁전을 지나쳐 출근하고, 하교하고, 귀가한다.


인류의 꿈을 전시하다 — 우주박물관

모스크바 북쪽, 거대한 티타늄 로켓 조형물 아래에 우주박물관이 있다. 이 조형물은 '우주의 정복자 기념비'로, 1961년 유리 가가린의 역사적인 우주비행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소련의 우주 개발 역사가 압도적인 밀도로 쏟아진다.

 

"우주의 개척자들" — 그 이름처럼, 이곳은 가가린이 탑승한 보스토크 1호 귀환 캡슐, 달 탐사차 실물 등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를 담은 방대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1960년, 가가린은 다른 19명의 후보자와 함께 세르게이 코롤료프의 요구 조건에 의한 선발 프로그램을 거쳐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 되었다. 유리 가가린의 온화한 미소가 담긴 사진 앞에 서면,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구를 바라봤을 그 청년의 심정이 희미하게나마 전해지는 것 같다.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세르게이 코롤료프의 손때 묻은 노트였다. 코롤료프는 보안상의 이유로 죽을 때까지 그의 이름이 서방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종종 "수석 개발자"로만 불렸는데, 이는 그의 이름과 소련 우주 계획에서의 역할이 국가 기밀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계산과 메모가 빼곡히 적힌 그 노트는, 우주선이 결국 인간의 집념과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전시관 한편에는 달 착륙선과 월면 차량의 실물 모형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투박하고 기계적인 외형 속에 얼마나 많은 꿈이 담겨 있는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묘하게 무거워진다.


낭만과 저항이 공존하는 골목 — 아르바트 거리

모스크바에서 가장 낭만적인 거리를 꼽으라면 단연 아르바트다. 보행자 전용 골목 양쪽으로 카페, 기념품 가게, 거리 예술가들이 늘어서 있고,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섞여 천천히 걷는다.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시킨이 1831년 신혼 시절을 보낸 집은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방문객을 맞이한다.

푸시킨 하우스

 

그런데 이 거리에는 낭만만 있는 게 아니다. 한 벽면에는 빅토르 초이(Viktor Tsoi)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62년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그는 록 음악 밴드 키노(Kino)의 공동 창설자로, 혁신적인 가사와 음악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소련판 베트남전이라 불리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을 향해가던 시절, 그의 노래 '혈액형'은 전쟁터에서 그저 귀향하고 싶을 뿐인 병사의 목소리를 담아 수백만 명의 가슴을 울렸다.

빅토르 토이 (1962-1990)
예전 그래피티 (출처: 위키피디아)
빅토르 초이의 벽화 (2012년)

 

초이가 사망한 1990년 8월 15일, 누군가가 이 벽에 '오늘 초이가 죽었다'라고 적어놓았는데, 그 아래 다른 사람이 '초이는 살아있다(Цой жив)!'라는 문장을 적어놓은 것이 '초이 벽(Стена Цоя)'의 시작이었다. 체제에 저항했던 음악이 벽에 새겨져 수십 년째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2,700만의 이름으로 — 전쟁박물관

승전 공원(포베디 파르크) 안에 자리한 전쟁박물관은 러시아인에게 단순한 역사 공간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에서는 "대조국전쟁"이라 부르는 그 전쟁에서 소련은 약 2,700만 명의 목숨을 잃었다. 이는 전쟁 기간 전 세계 총 사망자의 약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박물관 외부에 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불꽃은 그 숫자 하나하나를 기억하겠다는 다짐처럼 보였다.

 

내부 전시는 전쟁의 스펙터클을 넘어, 전몰자 한 명 한 명을 추모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한국전쟁의 흔적이 담긴 전시 앞에서는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 전쟁이 이 땅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낯선 나라의 박물관에서 새삼 가깝게 느껴졌다. 박물관 밖에는 러시아의 개선문이 서 있다. 나폴레옹을 물리친 1812년 전쟁을 기념하는 이 아치는, 러시아가 자신의 역사를 얼마나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의 돌바닥 위에서 — 붉은 광장

붉은 광장에 처음 발을 들이면 잠시 말을 잃게 된다. 광장 자체의 크기도 크기지만, 사방을 둘러싼 것들의 밀도가 압도적이다. 크렘린의 붉은 벽, 레닌 묘, 국립 역사박물관, 그리고 무엇보다 성 바실리 대성당.

 

성 바실리 대성당은 1555~1561년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가 카잔 칸국을 정복한 것을 기념해 지은 건축물이다. 사진으로 수도 없이 봤지만, 실제로 서면 전혀 다른 감각이 온다. 알록달록한 양파 모양 지붕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그 형태는 러시아인들의 미감이 서구와 얼마나 다른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내부로 들어가면 외관의 화려함과는 대조적으로 좁고 미로 같은 공간이 이어지며, 벽면을 가득 채운 성화(이콘)들이 은은한 촛불 아래 빛난다. 마침 그날, 광장 한편에서는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고 있었다. 역사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축제.

 

광장 맞은편 굼(GUM) 백화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유리 아케이드 천장 아래 고급 브랜드들이 늘어선 이 건물은 원래 제정 러시아 시대의 상업 건물로, 소련 시절에는 국영 백화점이었다가 지금은 명품관으로 변신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대리석 바닥 위에 조용히 고여 있다.


황금빛 밤 — 볼쇼이 극장

모스크바의 밤은 볼쇼이 극장에서 완성된다. 그 기원은 17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세 차례의 화재를 겪은 끝에 현재의 웅장한 건물은 1856년에 완성되었다. 볼쇼이(Большо́й)는 러시아어로 '크다'는 뜻으로, 문자 그대로 '큰 극장'이 통칭인 셈이다. 2,150석을 갖춘 이 극장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오페라와 발레의 산실이다.

 

황금빛 샹들리에와 붉은 벨벳 좌석이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를 보았다. 이 오페라는 글린카가 1837~1842년에 작곡한 5막 8장의 대작으로, 푸시킨의 동명 시를 바탕으로 한 러시아의 국민 오페라이다. 의미심장하게도 볼쇼이 극장은 6년간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치고 2011년 10월 28일, 바로 이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상연하며 재개관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울림, 그리고 커튼콜에서 쏟아지는 박수 소리.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겨울 모스크바의 찬 공기가 뜨거웠던 여운을 천천히 식혀주었다.


눈 내린 모스크바 거리를 걸었다. 우크라이나 호텔의 스탈린 양식 첨탑을 올려다보며, 러시아의 건축적 야심이 도시 곳곳에 새겨져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모스크바는 쉽게 읽히는 도시가 아니다. 웅장함 뒤에 상처가 있고, 화려함 뒤에 무게가 있다. 그러나 그 복잡함이야말로 이 도시를 계속 걷게 만드는 이유다. 붉은 광장의 돌바닥을 밟으며, 우주박물관의 로켓 앞에 서며, 아르바트 골목의 초이 벽 앞에 멈추며 — 모스크바는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들려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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