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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여행

철의 장막 너머, 모스크바에서 — 2010년 겨울의 기록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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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설렘 사이, 처음 만난 모스크바

2010년 말, 회사 업무로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 시간만 9시간.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두꺼운 장막으로 가로막혀 있던 세계로의 첫 발걸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중국은 '죽의 장막', 소련은 '철의 장막'이라 배웠다. 그 말들은 단순한 지리적 구분이 아니었다. 이념과 공포, 냉전의 서늘한 언어였다. 오랜 주입식 교육이 만들어낸 막연한 두려움은 차창 너머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내내 가슴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 당시는 DSLR 카메라 붐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어렵사리 장만한 캐논 50D를 들고, 렌즈를 통해 이 낯선 도시를 기록하기로 했다. 두려움도, 설렘도, 모두 그 안에 담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와 '스탈린의 일곱 자매'

숙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차창 너머로 압도적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찾아보니 모스크바 국립대학교(МГУ, 엠게우) 였다. 이 웅장한 첨탑 건물은 단순한 학교 건물이 아니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1940~50년대 모스크바 곳곳에 세운 이른바 '스탈린의 일곱 자매(Stalin's Seven Sisters)' 중 하나로, 스탈린 제국 양식(Stalinist Architecture)의 정수를 보여준다. 교통성, 외무성, 호텔 우크라이나 등과 함께 모스크바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이 건물들은, 역설적이게도 독재자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아름다운 랜드마크가 되어버렸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생각보다 역동적인 공업 도시, 모스크바

모스크바는 흔히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인식되지만, 사실 러시아 최대의 공업 도시이기도 하다. 기계 제조가 공업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자동차, 전기기기, 공작기계, 제강, 볼 베어링 등의 대형 공장과 화력발전소가 즐비하다. 직물, 식료품과 같은 경공업 역시 고루 발달해 있다.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로 쌓인 부는 도시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GUM 백화점(굼 백화점)에는 세계 유수의 명품 브랜드들이 들어차 있었고, 자원 부국의 위용을 실감케 했다.

 

붉은 광장 - '붉은'이 아닌 '아름다운' 광장

모스크바에 왔다면 반드시 가야 할 곳, 붉은 광장(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크라스나야 플로샤디). 처음에는 이름 그대로 온통 붉은 공산주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붉은'을 뜻하는 러시아어 '크라스나야(красная)'는 고대 러시아어에서 '아름다운'을 뜻하기도 했다. 사실 광장의 이름은 공산주의의 붉은 색과도, 크렘린의 붉은 벽돌과도 관련이 없으며, 옛 러시아어로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냉전 시대에 서방 세계가 공산주의의 색깔과 연결지어 '붉은 광장'이라 부르게 된 것이 굳어진 셈이다.

 

길이 700m, 폭 130m에 달하는 이 광장은 작은 노점시장에서 시작되어, 시간이 흐르면서 군사 출정 행진장과 정치범의 처형장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다. 지금도 메이데이 행사나 군사 퍼레이드가 열리며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저마다 역사적 무게를 지닌다.

 

주립 역사 박물관(State Historical Museum): 네오 러시안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 상설 전시는 고대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러시아 역사를 아우르며, 황제들의 가계도가 그려진 퍼레이드 전시실 천장은 특히 인상적이다.

 

GUM 백화점(굼): 12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스크바 대표 쇼핑 공간으로, 크렘린 성벽을 마주한 자리에 위치해 있다.

 

크렘린(Kremlin): 러시아어로 '성채' 또는 '성벽'을 뜻하는 이 궁전은 5개의 문, 29개의 탑, 삼각형 모양의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러시아 역사의 심장부로 기능해왔다.

 

레닌의 묘 - 혁명의 시신이 잠든 곳

이번 출장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곳은 레닌의 묘였다. 붉은 광장 남쪽에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미라가 보존되어 있는 레닌 묘가 있다. 러시아는 레닌 사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시신을 특수 처리해 보존하고 있다.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카메라를 내려야 했다. 가이드도, 말도 필요 없었다. 혁명의 지도자가 조명 아래 누워 있는 그 침묵의 공간은,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성 바실리 대성당 - 테트리스 속 그 성당

테트리스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성 바실리 대성당(Храм Василия Блаженного)을 알 것이다. 게임 배경 화면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양파 모양의 화려한 돔들. 당시 광장 일부가 공사 중이어서 전경을 온전히 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실물의 압도감은 사진과 차원이 달랐다.

 

이 성당은 이반 4세가 러시아에서 카잔 칸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며 봉헌한 것으로, 1555년 건축을 시작해 1561년 완공됐다. 원래 8개의 교회들이 중앙의 교회 건물 하나를 감싸는 형태로 지어졌으며, '삼위일체 교회'로 불렸다. 1588년 성 바실리의 무덤 위에 10번째 성당이 추가되어 현재의 모습이 완성됐다.

 

전설 중에는 이반 4세가 이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해, 다시는 이와 같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려고 건축가들의 눈을 멀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름다움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점에서, 이 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축을 넘어 이반 대제라는 인물의 광기와 욕망을 함께 간직한 공간이기도 하다.

 

루즈니키 스타디움 - 올림픽과 월드컵을 품은 경기장

루즈니키 스타디움(Luzhniki Stadium)은 1980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러시아 최대의 스타디움이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당시 미국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불참을 선언하고, 여러 서방 국가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반쪽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체육의 장이 정치의 도구가 되었던, 냉전 시대의 쓸쓸한 유산이다.

 

모스크바 지하철 - 지하의 예술관

모스크바에서 가장 예상 밖의 경험은 지하철이었다.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꾸며진 이 호화로운 지하 공간은 단순한 대중교통 수단에 머물지 않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대의 인상적인 예술 작품들로 가득 찬 특별한 장소다.

 

1935년 5월 15일에 개통된 모스크바 지하철은 소비에트 연방의 첫 번째 지하철로, 현재 총 447km의 길이에 15개 노선 265개 역을 보유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전에는 소련 정부가 체제 선전을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따로 지하철 관광을 시켜줬을 정도다.

 

콤소몰스카야 역은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의 역으로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 우아한 샹들리에, 승강장 꼭대기의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어 마치 소련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전력 공급 방식이었다. 우리나라 지하철이 열차 위쪽의 가선에서 전기를 공급받는 데 비해, 모스크바 지하철은 아래 철로에 전력이 흐르는 방식이다. 떨어지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우주박물관 - 인류의 꿈을 전시하다

모스크바에는 우주 개발의 역사를 집대성한 우주박물관(Museum of Cosmonautics)이 있다. 1964년 '우주의 정복자에게'라는 기념비와 함께 시작해, 1981년 4월 10일 최초 유인 우주 비행 20주년을 기념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박물관은 소련의 우주 개발 여정, 즉 최초의 인공위성(스푸트니크)에서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 우주 유영, 달 탐사 프로그램까지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시한다. 냉전이라는 경쟁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인류가 별을 향해 내달렸던 꿈의 기록이기도 하다. 전시물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정도 규모의 우주 역사를 자국의 성취로 전시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2010년의 스타벅스

당시 모스크바에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차가운 모스크바의 겨울 공기를 뚫고 들어선 그 익숙한 초록 로고가 묘하게 반가웠다. 이념도, 냉전도 결국 자본주의 문화 앞에서는 무력해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 스타벅스는 지금쯤 아마 없을 것이다. 세상이 다시 갈라졌으니.

 

2010년 겨울의 모스크바는 두려움으로 시작해 경이로움으로 끝난 여행이었다. 철의 장막 너머에는 또 하나의 두텁고 복잡한 역사가 있었다. 카메라 렌즈 안에 담긴 그 도시는,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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