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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여행

낯선 땅의 기억 — 벵갈루루와 마이소르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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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나는 처음으로 인도 땅을 밟았다. 출장이었다. 상대 회사의 주선으로 마련된 여정이었고, 목적지는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Karnataka) 주의 주도, 벵갈루루(Bengaluru)였다. 당시 세계는 이 도시를 여전히 익숙한 영어식 이름인 방갈로르(Bangalore)로 불렀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라는 수식어가 막 정착되어 가던 시절이었고, Infosys와 Wipro 같은 IT 대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던 때였다. 그러나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그 화려한 수식어와는 사뭇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포시스


도착, 그리고 충격

거리는 더웠고, 쓰레기가 많았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그 낙차는 상당했다. 노란 차체의 오토릭샤(Auto-rickshaw)가 좁은 골목을 누비고, 전봇대마다 "PAN CARD PASSPORT"라 적힌 광고지가 여러 장 겹쳐 붙어 있었다. 도시는 분주했고, 무질서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작동하고 있었다. 해발 약 900미터의 데칸 고원 위에 자리한 벵갈루루는 인도의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기후가 온화하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3월의 햇살은 충분히 강렬했다.

 

상대 회사가 잡아준 호텔은 밤에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이른 새벽이면 인근 모스크에서 아잔(Azan)이 울려 퍼졌다. 인도 전체 인구의 약 14퍼센트에 달하는 2억 명의 무슬림이 사는 나라에서 그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소리였지만, 처음 듣는 귀에는 낯설고 강렬했다. 매일 아침 호텔 조식으로는 어김없이 달걀 요리만 나왔다. 채식주의자 비율이 높은 인도에서 달걀은 가장 무난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은 피로를 낳는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점심 피자를 먹고 에비앙을 마셨음에도 물갈이를 했다. 생수를 마셨어도 조리 과정에서 스며드는 현지 물을 피하기란 쉽지 않았다. 인도 여행의 고전적인 통과의례였다.


카베리 강의 아침 — 랑가나티투

출장 일정 중 마이소르(Mysore)로 향하는 날이 있었다. 벵갈루루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킬로미터, 차로 두 시간 남짓 달리면 닿는 거리다. 그 길목에 랑가나티투(Ranganathittu) 조류 보호구역이 있었다.

 

1940년 인도의 저명한 조류학자 살림 알리(Salim Ali) 박사의 건의로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카베리(Kaveri) 강 위에 형성된 여섯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들은 17세기 마이소르 왕국의 군주가 카베리 강에 제방을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역사가 생태를 낳은 셈이었다.

 

보트에 올랐다. 뱃사공은 말없이 노를 저었고, 배는 천천히 강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물빛은 탁하고 초록빛이었다. 그리고 곧,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는 검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무 전체가 까맣고 묵직한 무언가로 뒤덮여 있었다. 과일박쥐(Indian Flying Fox, Pteropus giganteus)의 거대한 군집이었다. 수천 마리의 박쥐가 거꾸로 매달린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가지가 휠 만큼 무거운 그 광경은, 어딘가 초현실적이었다. 낮이었음에도 그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태양 아래 거꾸로 매달린 채 세상을 관조하는 존재들.

강가의 바위 위에는 머그거 악어(Marsh Crocodile)들이 일광욕을 하며 늘어져 있었고, 보트는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교복을 맞춰 입은 인도 아이들이 단체로 방문해 있었다. 그들의 눈도, 나의 눈도, 같은 나무를 향하고 있었다.


마이소르 — 닫힌 문 앞에서

랑가나티투를 지나 마이소르에 도착했다. 카르나타카의 문화 수도라 불리는 마이소르는 역사의 찬란함과 살아있는 전통이 공존하는 도시다. 그 중심에는 마이소르 궁전(Mysore Palace)이 있었다.

힌두, 고딕, 이슬람 건축 양식이 혼합된 이 궁전은 인도에서 타지마할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방문되는 역사 유적지다. 그러나 그날은 휴일이었다. 궁전의 문은 닫혀 있었다. 황금빛과 크림빛이 어우러진 웅장한 외벽과 아치형 문, 그리고 그 앞을 오가는 오토릭샤들. 나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만 바라보았다. 일요일 저녁이면 약 10만 개의 전구로 궁전 전체가 점등되어 장관을 이룬다고 하지만, 그것도 볼 수 없었다. 낮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안고 마이소르 동물원(Sri Chamarajendra Zoological Gardens)으로 향했다. 1892년에 설립된 이 동물원은 인도에서 손꼽히는 시설을 자랑한다고 했다. 코끼리 두 마리가 철사슬에 묶인 채 그늘 아래 서 있었다. 사슴 두 마리는 뿔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연못에는 흑조 한 마리가 홀로 유영했다. 악어도 있었다. 공원 안쪽의 잘 정돈된 산책로에는 초록빛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도시의 밤, 킹피셔와 탄두리 치킨

벵갈루루로 돌아온 밤, Ginger Greens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초록빛 네온사인이 입구를 감싸고 있었고, 바깥에는 음료와 아이스크림 메뉴가 빼곡히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인도 현지 음식을 주문했다. 탄두리 치킨과 킹피셔(Kingfisher) 맥주였다.

 

킹피셔는 벵갈루루가 낳은 맥주다. 이 도시는 인도에서 맥주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으로 꼽힌다. 온화한 기후, 젊은 IT 인력, 그리고 비교적 자유로운 도시 분위기가 그 토양이 되었다. 탄두리 오븐에서 구워낸 닭고기는 바깥이 붉게 그을려 있었고, 향신료의 향이 강했다. 맥주 한 모금에 치킨 한 점. 물갈이를 한 몸으로 먹는 인도 음식치고는, 놀랍도록 맛있었다.

 

어느 날은 한식당에도 들어갔다. 벵갈루루에는 삼성, LG, 현대 등 한국 기업의 인도 법인이 다수 있어, 주재원 가족들이 적지 않게 거주하고 있었다.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낸 주재원 가족들이 한식당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국의 식당 안에서 한국어가 들리는 그 묘한 안도감이란.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온기만큼은 남아 있다.


13년 후의 회상

여행은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물갈이, 잠 못 드는 밤, 닫힌 궁전, 매일의 달걀 조식. 처음 밟은 인도 땅은 기대보다 훨씬 거칠었다. 이후 다시 인도를 찾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13년이 흐른 지금, 사진 한 장 한 장을 다시 들여다보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기억이 살아난다. 카베리 강 위에서 바라본 박쥐 가득한 나무의 기묘한 장관. 노를 묵묵히 젓던 뱃사공의 옆모습. 궁전 앞을 지나던 오토릭샤. 뿔을 맞댄 사슴들. 초록빛 네온 아래 탄두리 치킨과 킹피셔.

 

고통스러운 여행만이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낯선 것과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 그것이 아무리 불편하고 당혹스럽더라도, 그 인상은 깊이 새겨진다. 벵갈루루와 마이소르는 내게 그런 여행이었다. 안락하지 않았기에, 잊히지 않는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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