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파리의 겨울밤은 일찍 찾아온다. 12월의 파리는 오후 다섯 시만 되어도 하늘이 까맣게 내려앉는다. 관광 안내서가 말하는 '빛의 도시'는 사실 이 어둠을 전제로 한다. 빛이 빛나려면 먼저 어둠이 짙어야 하니까. 우리가 센강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파리의 12월은 이미 완전한 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바람이 코트 깃을 파고들었고, 입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셋이서 나란히 서서 잠시 강을 내려다보았다. 출장의 첫 날 밤이었다.

직장 동료 셋이서 파리 디너 크루즈를 타기로 한 건, 사실 반쯤은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보고서와 미팅, 빡빡한 일정 사이에서 우리는 단 한 번쯤은 그냥 파리 사람처럼—아무 목적 없이—센강 위를 떠다니고 싶었다. 업무 이야기는 오늘 밤만큼은 하지 말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약속했다.


배에 오르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바깥의 칼바람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따뜻하고 조용하고, 유리창 너머로 흐르는 강물이 보이고, 하얀 리넨이 덮인 테이블 위에는 이미 와인 잔이 놓여 있었다. 우리 셋은 자리에 앉아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실없이 웃었다. 출장 내내 편의점 샌드위치와 미팅룸 커피로 버텼던 우리가, 겨울 센강 위의 레스토랑에 앉아 있다니.
메뉴판을 펼쳤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프랑스 3대 요리를 하나씩 나눠 시키기로 했다. 푸아그라, 트뤼프, 에스카르고. "이거 안 먹고 파리 왔다고 하면 안 된다"며 한 동료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고, 우리는 또 웃었다.

푸아그라가 먼저 왔다. 작은 접시 위에 단정하게 올려진, 버터처럼 부드러운 덩어리.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농후함은 설명하기 어렵다. 기름지다는 표현은 너무 단순하다. 혀 위에서 천천히 녹아드는 그 감각은 뭔가 사치스러운 것을 허락받은 느낌이랄까. 12월의 추위를 뚫고 온 몸이, 그 한 입에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에스카르고는 달팽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요리다. 뜨거운 버터와 마늘, 파슬리 향이 먼저 코를 치고, 작은 전용 집게로 껍데기를 잡아 속살을 꺼내는 순간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이거 그냥 마늘 버터 먹는 거 아니야?" 누군가 말했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마늘 버터가 겨울 센강 위에서 먹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특별했다.
트뤼프는 조금 달랐다. 강렬한 흙 냄새 같기도 하고, 서리 내린 숲속 깊은 곳 같기도 한 그 향은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두 번째 입에서 뭔가 달라졌다. 이 향이 코끝에 오래 머문다는 것, 그리고 그게 불쾌하지 않다는 것. 오히려 점점 끌린다는 것. 세상에는 처음엔 이해하기 어렵지만 결국 매혹되고 마는 것들이 있다. 12월의 파리가 그랬고, 트뤼프가 딱 그랬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배는 천천히 파리의 겨울을 가로질렀다.


에펠탑이 창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식탁 위의 대화가 잠시 멈췄다. 매 시간 정각마다 탑 전체에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우리는 마침 그 시간 위에 있었다. 수천 개의 전구가 일제히 켜지며 12월의 강물 위로 금빛 반짝임이 쏟아졌다. 겨울의 차고 맑은 공기 덕분인지 빛이 더 선명하게 강물에 부서졌다. 누군가 탄성을 질렀는지, 아니면 그냥 모두 침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출장이든 업무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만 기억한다.


노트르담 대성당 옆을 지날 때는 또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그때는 2014년이었다. 아직 화재가 나기 전의 노트르담이었다. 첨탑이 온전히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겨울 조명을 받아 강물에 반사된 채로 800년의 무게를 고요히 품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내가 바라본 그 모습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2019년 봄, 첨탑이 불길 속에 무너지는 장면을 뉴스로 보았을 때, 나는 2014년 12월의 그 야경을 떠올렸다. 유리창에 이마를 살짝 기대고 어둠 속의 성당을 바라보던 그 순간을.

디저트가 나올 무렵 배는 되돌아가고 있었다. 파리의 겨울 야경은 이제 완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리마다 조명이 켜지고, 강변의 카페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고, 유리창 밖으로 코트를 여민 파리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는 와인 잔을 조금 더 채우고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내일 비행기 시간, 각자의 지친 발바닥,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먹고 싶은 것. 하지만 그런 사소한 대화들이, 그날 밤 겨울 센강 위에서는 왠지 다정하게 들렸다.

배가 다시 선착장에 닿았을 때, 우리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내리면 다시 파리의 12월 한기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리면 다시 짐을 싸고, 공항으로 가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게 싫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이 배 위의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해서였는지.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선착장에 내려 강바람을 다시 맞았을 때, 우리는 잠시 말없이 센강을 바라보았다. 강은 우리가 배를 타기 전에도 흘렀고, 타는 동안에도 흘렀고, 내린 후에도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파리의 겨울도, 센강도, 에펠탑의 빛도—그것들은 우리가 오기 전부터 거기 있었고, 우리가 떠난 후에도 거기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이 됐다. 이 도시는 변함없이 여기 있을 것이고, 그러니 나도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고.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그날을 생각한다.

12월의 차가운 공기, 유리창에 맺힌 물기, 접시 위의 푸아그라, 그리고 에펠탑이 반짝이던 순간 식탁 위에 흐르던 짧은 침묵. 직장 동료로 만났지만 그날 밤만큼은 그냥 파리의 겨울을 함께 떠다닌 세 사람이었던 우리. 센강은 그날도 말이 없었다. 그저 우리를 싣고, 파리의 밤을 천천히 흘러갔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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