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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여행

꿈꾸던 섬, 몽셍미셸을 걷다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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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어릴 때 나는 TV 앞에 앉아 대한항공 광고를 보았다.

 

비행기가 구름을 가르고, 음악이 흐르고, 그리고 그 섬이 나왔다. 바다 한가운데 홀로 솟아오른 바위섬, 그 위에 수도원. 물이 빠지면 길이 생기는 곳은 세상에 여럿 있겠지만, 그 바위 위에 수도원을 올린 곳은 거기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저기에는 꼭 가야겠다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다.


바다 위의 계시 — 1,300년의 역사

몽셍미셸의 이름은 '성 미카엘의 산'을 뜻한다. 그 이름이 생겨난 것은 7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브랑슈의 주교 성 오베르의 꿈에 대천사 미카엘이 세 번 나타나 "바다 위에 성을 쌓아라"는 명령을 내렸다. 처음에는 황당한 계시로 여겼지만, 세 번째 발현에서 오베르 주교는 결국 공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바위섬 몽 통브 위에 수도원이 세워져 대천사 미카엘에게 봉헌된 것이 몽셍미셸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수도원은 수백 년에 걸쳐 층층이 쌓여 올라갔다. 10세기 이전에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 완성되었고, 11세기에는 암벽 정점에 이르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 교회와 함께 첫 번째 수도원 건물이 들어섰다. 12세기에 건물이 서쪽과 남쪽으로 증축되었으며, 13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왕 필립 오귀스트의 기부로 고딕 양식의 메르베이유가 회랑과 식당이 위치한 두 개의 3층 건물 형태로 건설되었다.

 

섬의 구조적 배치는 이것을 건설한 봉건사회를 그대로 보여준다. 가장 꼭대기에 신이 있고, 그 아래 수도원, 그리고 큰 홀, 그 아래 상점과 주택, 성벽 바깥 가장 아랫부분에는 농부와 어부들의 거처가 배치되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우주였다. 신을 향해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해안에서 6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독특한 위치는 간조기에 육지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수도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고, 한편으로는 만조기에 적들이 좌초하거나 물에 빠지게 되어 쉽게 방어가 가능했다. 이런 천연적 지세 덕분에 섬은 백년전쟁의 대부분 기간 동안 난공불락의 요새로 남아 있었으며, 적은 수의 경비대가 1433년 잉글랜드군의 총공격도 성공적으로 방어해냈다.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874년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어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1969년부터 수도사들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기도와 묵상에 열중하고 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몽셍미셸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1,300년. 그 세월이 저 바위 위에 쌓여 있었다.


파리에서 노르망디까지 — 직각 의자와 이방인의 감각

파리에서 몽셍미셸로 가는 버스는 직각에 가까운 의자를 가지고 있었다. 네 시간짜리 여정을 그 딱딱한 등받이와 함께 버텨야 했다. 차창 밖으로는 노르망디의 겨울 들판이 단조롭게 흘러갔다. 회색빛 하늘 아래 앙상한 나무들, 습한 공기.

 

버스 안에서는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국어는 없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혼자 씁쓸하게 웃었다. 이게 국력인가. 세계 곳곳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있는데도, 이 버스는 아직 우리의 언어를 담을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 이방인의 감각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그래도 버스는 달렸고, 나는 기다렸다.


드디어, 왔구나

섬이 처음 보인 것은 버스 창문 너머였다.

 

수평선 위로 뾰족한 첨탑이 솟아올랐다. 낮고 납작한 노르망디 들판 한가운데, 갑자기. 말을 잃었다. 환호성을 지르거나 눈물이 흐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조용히 생각했다.

 

드디어 왔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라 메르 풀라르의 오믈렛

섬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배를 채웠다. 라 메르 풀라르(La Mère Poulard). 몽셍미셸에 왔다면 누구나 안다는 그 이름, 그 오믈렛. 폭신하고 크림처럼 부드러운 달걀 요리가 하얀 접시 위에 놓였다. 직각 의자에서 네 시간을 버티고 온 몸이 처음으로 긴장을 풀었다. 맛있었다. 당연히 맛있었다.

 

가게 벽에는 오래된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무쇠 팬을 들고 오믈렛을 만들던 창업자 메르 풀라르의 모습. 그녀가 처음 이 오믈렛을 만든 것은 19세기 말, 조수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순례자들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금 내가 먹는 이 음식에도 그 오랜 시간이 스며 있었다.


돌계단을 오르며 — 수도원 안으로

성문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좁고 가파른 길이 위로 이어졌다. 돌로 쌓은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관광객들이 흘러다녔다. 12월의 몽셍미셸은 성탄 장식을 달고 있었다. 별 모양의 전구, 빛을 잃은 겨울 하늘. 중세와 현재가 섞여 있는 이 골목이 진짜인지 꿈인지 잠깐 알 수 없었다.

 

수도원 안으로 올라갔다. 높은 고딕 천장 아래 빛이 스며들었다. 첨두 아치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그 사이로 흐린 겨울 빛이 조용히 떨어졌다. 메르베이유의 회랑을 걸었다. 가느다란 기둥들이 일정한 리듬으로 늘어서 있고, 안쪽 정원의 초록빛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던 긴 홀은 텅 비어 있었다. 양쪽으로 긴 나무 벤치들이 늘어서 있고, 끝에는 십자가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아무도 없는 그 공간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누군가 신에게 닿고자 바다 한가운데 바위 위에 이것을 지었다는 사실이,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다.

 

감옥으로 쓰이던 시절의 흔적도 있었다. 죄수들이 돌리던 거대한 나무 바퀴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신성한 공간이 형벌의 공간이 되었다가, 다시 기도의 공간으로 돌아온 자리. 어떤 인간의 시간도 이 돌 위에서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다리 위에서 — 꿈의 완성

돌아오는 길, 나는 다리 위에 잠깐 멈춰 섰다.

 

물이 빠진 갯벌 위로 바람이 불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최대 14m에 이르는 이 만은, 썰물 때마다 드넓은 모래밭을 드러내며 섬으로 가는 길을 열어놓는다. 수백 년 전 순례자들도 바로 이 길을 걸어 섬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우산을 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서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이 구름 사이로 조금씩 열렸다.

 

그리고 나는 정면으로 그 섬을 보았다.

 

긴 다리 너머로, 회색 하늘 아래, 뾰족한 첨탑이 솟아 있는 그 섬.

 

어릴 때 TV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지도,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버킷리스트라는 것은, 이루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꿈이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 꿈이 처음 생겨난 날의 나를, 나는 그 다리 위에서 잠깐 만났다.

 

드디어 왔구나.

 

그 말이 다시, 천천히 마음속을 지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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