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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학사

지구의 나이 — 성경에서 지질학으로

by 도서관경비원 2026.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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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본 몽블랑

몽블랑과 지질학의 탄생

1760년, 스위스 귀족이자 등반가였던 오라스-베네딕트 드 소쉬르는 샤모니에 머물며 당시 미답봉이었던 몽블랑(4,881m) 을 처음 등반하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많은 등반가들이 도전했지만 당시 장비로는 정상 정복이  너무 어려웠고, 26년간 현상금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침내 1786년 여름, 현지 사냥꾼과 의사 두 사람이 초등에 성공했고, 이듬해에는 소쉬르 본인도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등산 애호가가 아니었다. 지구를 새로운 방법으로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연구하려 한 선구자였으며, 이 학문에 "지질학" 이라는 이름을 붙인 장본인이었다. 지질학의 대상은 지구의 구조, 성분, 생성 과정 등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품어온 의문들이었다.


지구는 물에서 태어났는가 — 수성론

당시 독일의 학자 아브라함 베르너는 지구상의 모든 암석이 태고의 바다에서 일어난 대홍수의 결과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이를 수성론(水成論) 이라 하며, 소쉬르 역시 열렬한 지지자였다. 지구의 기원을 물과 연결 짓는 이 이론은 성경의 홍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어 당시 지식인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지구의 생일을 계산한 사람들

그보다 약 100년 전, 아일랜드의 주교 제임스 어셔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나이와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며 천지창조의 시점을 계산한 것이다. 그가 도출한 답은 놀랍도록 구체적이었다.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 전날 밤이었다.
 
이와 비슷한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아이작 뉴턴은 기원전 4000년, 요하네스 케플러는 기원전 3993년이라는 유사한 수치를 산출했다. 어셔의 계산은 성직자가 도출한 결과였기 때문인지 흠정역 성경에도 오랫동안 실렸고, 많은 신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모든 독실한 신자가 이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많은 지식인층, 특히 유럽 대륙의 지식인들은 성경을 은유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셔의 숫자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젊은 지구설" 운동이 일어났을 때뿐이었다.


인류의 기억보다 훨씬 오래된 지구

18세기 이후, 대부분의 지식인들, 특히 유럽 대륙의 지식인들은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지구의 탄생은 인류가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전의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간 것이다.
 
생물이 왜 멸종했든 간에, 그 멸종과 오늘날 사이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이 가로놓여 있었다. 이제 막 "지질학"이라는 이름을 얻은 학문에 관심을 가졌던 소쉬르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지구는 도대체 몇 살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이후 지질학과 생물학, 나아가 인류의 세계관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탐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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