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신라를 잇는 길
아라비아반도 동쪽 끝, 오만만과 아라비아해가 만나는 자리에 무스카트가 있다. 기원후 1세기부터 동서양을 잇는 무역항으로 기록된 이 도시는,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문명이 교차하는 살아있는 교차로였다. 페르시아 사산 제국, 포르투갈 제국, 오스만 제국, 그리고 영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력이 이 항구를 탐냈던 이유는 분명하다. 무스카트는 인도양 무역의 열쇠였다.
흥미롭게도, 이 머나먼 아라비아의 항구와 한반도의 인연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랍 문헌에는 신라와 아랍 사이의 교섭 기록이 남아 있으며, 중동학계의 원로인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이미 당나라 시대에 아랍과 신라 간의 교역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주오만 한국대사를 10년 이상 지낸 모하메드 살림 하드 알 하르시 전 대사 역시 과거 오만 상인들이 한반도까지 와서 무역을 했으리라 본다.

그 물적 증거는 경주에서 확인된다. 통일신라 시기 석실분에서 '서역인상 토용(土俑)'이 발견되고, 괘릉과 흥덕왕릉 주변 석인상에서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서역인의 면모가 뚜렷이 드러난다(민병훈 1999). 그리고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리잔은 이 교류의 정점을 보여준다. 높이 7.4cm, 구연부 지름 7.8cm의 청색 투명 유리잔은 기포 없이 균질하며 일부에서 은화(銀化) 현상이 관찰되는 높은 수준의 제작물이다. 당시 신라에는 유리 제조 기술이 없었다. 이 잔은 아라비아나 서아시아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천년의 시간을 건너 경주에 잠든 유리잔 한 점이, 무스카트와 신라를 연결하는 침묵의 증인인 셈이다.

중동의 스위스, 오만
오만을 '중동의 스위스'라고 부른다. 이 별칭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는 지형이다. 아라비아반도는 대체로 평탄한 사막이지만, 오만에는 해발 3,000미터에 달하는 알하자르 산맥이 그랜드캐니언에 비견될 절묘한 풍광을 펼친다. 2,500미터급 산맥과 코발트빛 바다가 공존하는 이 나라의 경관은 여타 걸프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둘째는 외교다. 오만은 이슬람의 소수 종파인 이바디파가 주류인 나라다. 이바디파는 수니파도 시아파도 아닌 독자적 노선을 걷는다. 종교적 중립이 곧 정치적 중립으로 이어진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카타르와 단교할 때도 오만은 중립을 지켰다. 2015년 이란 핵협상에서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비공개 중재자 역할을 했으며, 예멘 내전에서도 후티 반군과 사우디 사이의 협상 장소를 제공했다. 오만은 스스로를 "모든 나라의 친구이자 적이 없다(Friend of every one, enemy to none)"고 자부한다. 이 고요한 중립 외교가 무스카트를 중동의 제네바로 만든다.
올드 무스카트와 무트라 — 역사가 쌓인 골목
무스카트 관광의 핵심은 올드 무스카트다. 오늘날 무스카트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고대 성곽 도시인 올드 무스카트, 항구를 끼고 있는 무트라(Muttrah), 그리고 현대적 상업 중심지인 루위(Ruwi)다.

올드 무스카트로 가는 길목에 무트라가 있다. 무트라는 바다를 끼고 있어 해상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크루즈선이 정박하는 활기찬 항구다. 무트라 바위산 위에는 16세기 포르투갈이 세운 무트라 요새가 자리하며, 항구의 파노라마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손꼽힌다. 요새 아래로는 무트라 수크(Muttrah Souq)가 미로처럼 펼쳐진다. 인도, 중국, 유럽, 중동 각지에서 들어온 물품이 거래되던 유서 깊은 이 시장에서는 지금도 반짝이는 황금 장신구, 자수 놓인 전통 로브, 유향과 향신료, 신선한 농산물이 가득하다.

올드 무스카트의 중심에는 술탄의 공식 집무 궁전인 알 알람 궁전(Al Alam Palace)이 서 있다. 1972년에 완공된 이 궁전은 파란색과 금색 기둥이 어우러진 아라비안 전통 미학의 정수다. 술탄은 평소 고향인 살랄라에 거주하므로, 이 궁전은 주로 외국 귀빈을 맞이하는 용도로 쓰인다. 내부 관람은 불가하지만, 야간 조명이 비추는 궁전의 외관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궁전 맞은편에는 오만 국립박물관이 자리한다.

오만 국립박물관 — 해양 실크로드의 집대성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국립박물관이다. 해양 실크로드의 거점답게, 박물관은 수천 년에 걸친 무역과 항해의 흔적을 풍성하게 전시하고 있다. 도시 남쪽에서 발견된 하라파 양식의 도자기 파편은 이미 인더스 문명과의 교역을 증언하며, 인도, 동아프리카, 페르시아, 나아가 한반도에 이르는 광대한 교역망의 실체를 확인시켜 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선박 전시다. 오만이 보유한 현대 선박 중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배의 미니어쳐가 전시되어 있었다. 중동의 작은 나라 오만의 국립박물관 한켠에서 대한민국의 조선 기술을 마주치는 순간, 해양 실크로드의 인연이 과거의 역사에서 현재의 산업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 사막 위의 문화
무스카트에는 중동에서 보기 드문 격조 높은 공연 예술의 전당이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무스카트(Royal Opera House Muscat)다. 이 건물은 오만의 선왕(先王)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가 즉위 30주년을 기념해 국민에게 헌정한 선물로, 이슬람 전통 건축과 현대 공연 인프라가 조화를 이룬다. 방문 당시 뮤지컬 '라이온킹'이 공연 중이었다. 내부에는 쇼핑몰과 함께 음악 도서관, 악기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어 오만의 음악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 신앙과 예술의 결정
무스카트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은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다. 1995년 착공해 2001년 완공된 이 모스크는 전통 이슬람 건축과 현대 건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오만 최대 규모의 예배당이다. 내부에는 600명의 여성이 4년에 걸쳐 완성한 70m×90m 크기의 대형 페르시아 카펫이 깔려 있으며, 천장에는 1,122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로 장식된 샹들리에가 황홀한 빛을 발한다. 비이슬람교도 관광객이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오만 유일의 모스크로, 금요일을 제외한 오전 시간에 개방된다.








한식당 '감사합니다'와 오만 속의 한국
박물관을 나와 저녁 식사를 위해 주변을 살피다가 '감사합니다'라는 이름의 한식당을 발견했다. 김치볶음밥과 닭갈비를 시켰지만 맛은 조금 낯설었다. 이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만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약 50명 수준에 불과하다. 현지 사정상 한국인 주방장이 아닌 필리핀 분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이 식당이 '감사합니다'라는 이름으로 한국 음식 문화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정통성의 아쉬움과, 낯선 땅에서 한국이라는 이름이 살아있다는 반가움이 교차한다.
아직 발전 중인 나라, 오만
여행자의 시선으로 오만을 솔직하게 평가하자면, 매력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나라다.
화폐 — 세계 3위의 고가 통화 오만의 화폐 '리알(Rial)'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치 높은 통화다. 오만은 1986년부터 1리알=2.6008달러의 고정 환율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중동 지역의 잦은 분쟁과 정치적 불안으로부터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안정 정책의 결과다. 석유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와 정치적 안정이 이 통화 가치를 뒷받침한다. 자연히 물가는 전반적으로 높게 느껴지며, 예산을 충분히 계획하고 방문해야 한다.
통신 인프라 휴대전화 로밍 품질이 고르지 않다. 중계기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데이터 속도가 느리거나 아예 연결이 끊긴다. 길을 모르는 여행자에게 구글 지도는 필수 도구인데, 이 부분은 여행 전 현지 유심 카드 구입이나 오프라인 지도 사전 다운로드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 인프라 전기차 충전 인프라도 아직 초기 단계다. 오만은 2040년까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겠다는 비전 아래 신재생 에너지와 그린 수소 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있지만, 일반 여행자가 체감하는 전기차 관련 인프라는 아직 UAE 등 인접국에 비해 부족하다.
오만은 현재진행형이다
무스카트는 여전히 '진행 중인 도시'다. 두바이처럼 화려하지 않고, 도하처럼 새것투성이도 아니다. 하지만 천 년의 해양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골목과 시장, 세계 무대의 중재자로 자리매김한 조용한 자부심, 그리고 현대중공업이 만든 배를 전시하는 국립박물관의 작은 자랑까지 — 무스카트는 분명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여행지다.
아라비아의 향신료 냄새 속에서, 신라의 유리잔과 오만의 선박이 교차하는 이 도시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참고 자료: 민병훈(1999), 「서역인상 토용과 통일신라의 서역 교류」 /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 아랍-신라 교역 연구 / 오만 국립박물관 현지 조사 / 오만 리알 고정환율 정책(198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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