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반도에서 육로 여행이 가능한 곳
아랍에미리트(UAE)는 아라비아반도 북동쪽에 자리한 7개 토후국의 연방 국가다. 이 나라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이웃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단 두 곳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는 아부다비에서 직선거리로 약 900km에 달해 자동차로 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 먼 거리다. 반면 오만은 다르다. 알 아인(Al Ain)을 기준으로 국경 도시 소하르(Sohar)까지 불과 1시간 30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아라비아반도를 자동차로 가로질러 또 다른 걸프 국가로 넘어간다는 설렘이 이 짧은 거리에 모두 담겨 있다.
국경을 넘기 위한 준비 - 오렌지 카드와 서류들
차량으로 UAE-오만 국경을 통과하려면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오렌지 카드(Orange Card)'라고 불리는 오만 내 유효 자동차 보험 증서다. 오만에서는 UAE 자동차 보험이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국경 통과 전에 오만용 제3자 책임보험(Third Party Liability Insurance)을 별도로 가입해야 한다. 이 보험 카드의 색상이 주황색이어서 '오렌지 카드'라는 별칭이 붙었다.
자동차 등록증(Registration Card, 무루르 카드) 역시 출국 시와 입국 시 모두 제시해야 한다. 소프트카피(휴대폰 사진)보다 하드카피(출력 원본)가 훨씬 편리하다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는 실용적인 조언이다. 국경 검문소에서 여러 서류를 빠르게 처리해야 할 때, 종이 한 장을 내미는 것이 스마트폰 화면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운전면허증에 관해서도 알아두면 좋다. UAE에서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은 GCC(Gulf Cooperation Council, 걸프협력회의) 6개 회원국 (UAE,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에서 상호 인정된다. 따라서 UAE 거주자는 오만 국경에서 별도의 비자 절차 없이 운전이 가능하며, 오만에서의 개인 차량 및 렌터카 운전 모두 인정된다.
오만에서 돌아오는 귀로에 경찰 검문이 있었다. 경찰관이 "라이선스(License)!"라고 강하게 외쳤을 때, UAE 면허증이 유효하다는 걸 미처 알지 못해 국제운전면허증을 찾았더니, 경찰관은 더 큰 목소리로 "고(Go)!"를 외쳤다. 알고 보면 아무 문제 없는 상황이었지만, 사전에 GCC 상호 인정 규정을 파악해 두었다면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테슬라와 함께한 국경 통과 ? 데이터 로밍의 현실
현대 여행에서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은 사실상 필수 장비다. 그런데 UAE-오만 국경을 넘자마자 테슬라의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멈췄다. "데이터 로밍 불가(No Data Roaming)"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UAE 현지 유심의 데이터 로밍도, 한국 유심의 데이터 로밍도 원활하지 않았다.
이것은 오만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오만의 통신은 Omantel과 Ooredoo 두 회사가 주도하며, 외국 유심의 자동 로밍이 항상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도 있다. 테슬라 차량은 자체 SIM 카드를 내장해 셀룰러 네트워크로 지도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받아오는데, 오만에서는 이 서비스 커버리지가 제한적이다. 장거리 국경 여행 시에는 오프라인 지도 앱(예: Maps.me, Google Maps 오프라인 다운로드)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
소하르 - 오만이라는 이름의 발상지
소하르(Sohar)는 오만 북바티나 주(Al Batinah North Governorate)의 주도(州都)로, 수도 무스카트에서 북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다. 인구는 약 24만 명으로, 무스카트 광역권과 살랄라에 이어 오만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이 도시의 역사는 오만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중세 시대에 소하르는 오만 최대의 도시이자 인도양 무역의 핵심 거점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오만(Oman)'이라는 국명 자체가 소하르의 고대 지명인 '우마나(Uman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소하르는 18세기까지 오만의 수도로 기능했으며, 포르투갈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도, 야루바 왕조와 부사이드 왕조의 패권 다툼 속에서도 항상 오만 북부의 중심지로 존재해 왔다.
신드바드의 고향
소하르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의 전설적인 항해사 신드바드(Sindbad the Sailor)의 신화적 출생지라는 것이다. 신드바드는 아라비아해를 누비며 거대한 새 로크(Roc)와 외눈박이 거인 등 수많은 괴물과 모험을 헤쳐나간 인물로, 고대부터 인도양과 동아프리카를 주름잡은 오만 해상 상인들의 이야기가 그 원형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소하르 항구에서 돛단배를 타고 인도, 동아프리카, 심지어 중국까지 항해했던 오만 상인들의 용기와 탐험 정신이 신드바드라는 신화 속 영웅으로 응결된 셈이다.
테슬라에게 밥을 주다 ? 충전의 현실
오만에는 아직 테슬라 수퍼차저(Supercharger)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 소하르의 쇼핑몰을 방문한 것은 관광보다 먼저 충전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쇼핑몰에 충전기가 있었지만, 급속 충전이 아닌 완속 충전기(AC 충전기)였다. 알 아인에서 충분히 충전한 덕분에 최종 목적지인 무스카트까지는 주행 가능한 상태였다.

전기차로 오만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출발 전 충전 경로와 충전 인프라를 세밀하게 계획하는 것이 필수다. 현재 오만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빠르게 확장되고 있지만, 아직은 UAE에 비해 충전 옵션이 제한적이다.
Sultan Qaboos Grand Mosque, 소하르 -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가 만난 곳
소하르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는 단연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Sultan Qaboos Grand Mosque)다. 이 모스크는 전(前) 오만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Qaboos bin Said, 재위 1970~2020)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으며, 2016년 10월에 봉헌된 비교적 최신 건축물이다.

이 모스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이슬람 건축 양식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는 점이다. 전체 부지는 약 181,000㎡에 달하며, 건축 면적만 28,778㎡를 차지한다. 대형 정원 세 개의 주출입문, 4개의 미나렛(첨탑), 그리고 아름다운 파란색 메인 돔이 그 외관을 구성한다. 오만의 다른 모스크와 달리 목재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건축에 통합한 것도 특징적이다. 실내 기도 공간은 최대 4,600명의 예배자를 수용할 수 있으며, 여성 전용 공간도 별도로 740명을 수용한다.

내부에는 크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위용을 자랑한다. 돔 구조물의 꼭대기에 구멍을 내어 구조적 응력 특이점(stress concentration)을 분산시키고, 거대한 샹들리에의 하중을 돔 면내 응력으로 전달하는 공학적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이 빚어낸 건축 예술의 결정체다.

모스크 외벽을 가득 메운 세라믹 타일 장식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타일 장식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Registan) 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레기스탄은 15~17세기 티무르 제국이 건설한 세 개의 마드라사(이슬람 학교)로 구성된 광장으로, 청색과 금색의 화려한 타일 모자이크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소하르의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는 이 중앙아시아 이슬람 건축 전통의 영향을 받아, 아부다비의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Sheikh Zayed Grand Mosque)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아부다비 모스크가 순백의 대리석으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면, 소하르 모스크는 색채와 장식의 정교함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오만의 자연 - 산악 지형이 만든 초록빛 풍경
UAE와 비교할 때 오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풍부한 녹색 식생이다. UAE의 도시 외곽이 대부분 사막과 평지로 이루어진 반면, 오만 북부 알 바티나 지역은 하자르 산맥(Hajar Mountains)의 영향을 받아 산악 지형이 발달해 있다. 이 산지는 계절풍과 지형성 강수를 유발해 상대적으로 강수량이 많고, 덕분에 야자수와 아카시아 등 다양한 수목이 자생한다. 붉은빛과 갈색빛 산악 지형에 녹음이 더해진 오만 북부의 풍경은 황토빛 사막 국가를 연상시키는 UAE와는 전혀 다른 자연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소하르 게이트를 지나 무스카트로
무스카트로 가는 길에는 소하르 게이트(Sohar Gate)를 지나게 된다. 소하르 게이트는 도시의 상징적인 관문으로, 고대 항구 도시의 영광과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구조물이다. 이 게이트를 통과할 때, 소하르가 단순한 경유지가 아닌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미리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감동을 만나기도 한다. 소하르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무스카트로 가기 위해 어차피 지나쳐야 했던 도시에서, 신드바드의 전설과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 그리고 오만 사람들의 따뜻한 친절을 동시에 만났다. 이제 소하르 게이트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달리면,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가 기다리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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