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해외여행

처음 계획한 여행, 그리고 일본 — 고베·히메지·교토·오사카

by 도서관경비원 2026. 4. 17.
반응형

2009년 5월

 

여행이란 무엇일까. 혼자 하는 것일까,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일까. 동행이 있으면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매번 뜻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혼자 떠나는 길이 더 편하기도 하다. 어찌 보면 여행은 삶과 맞닿아 있다. 혼자가 편할 때도 있고, 외로울 때도 있는 것이 삶이듯, 여행도 꼭 그렇다. 그래서 여행을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삶을 배우는 길이기도 하다.

첫 발걸음

2008년, 내가 스스로 계획을 세워 처음 떠난 해외 여행. 지난 여행이 모두 뚜렷한 목적을 가진 출장이었다면, 이번은 온전히 나를 위한 첫 여정이었다.

항공권, 여행의 첫 단추이자 첫 함정

여행의 첫 단계는 항공권 구매다. 그런데 저렴한 항공권에 눈이 꽂히다 보면 일정 전체가 꼬이기 십상이다. 새벽 도착 편을 사면 욕심에 그날부터 무리하게 일정을 우겨 넣게 되고, 늦은 밤 도착이면 숙박비가 하루 더 붙는다. 여행도 균형이 중요하다. 마치 인간의 삶처럼. 저렴함을 쫓다가 전체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는 것을 첫 여행에서 몸소 배웠다.

고베 - 항구도시의 아름다움과 아픈 기억

효율적인 동선을 위해 오사카보다 고베를 먼저 들렀다. 고베는 일본의 3대 항구도시 중 하나로, 개항 이후 이국적인 문화가 스며든 도시다. 화병처럼 생긴 철골 구조의 고베타워가 항구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독특하고 낭만적이다.

 

하지만 토목공학을 공부한 나에게 고베는 무엇보다 1995년 대지진의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도시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 46분, 효고현 남부에서 규모 7.3의 대지진이 발생해 6,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피해액은 약 186조 원에 달했다. 당시 일본 최대의 항구이자 아시아의 중심 항이었던 고베시는 이 지진으로 지자체의 모든 기반시설이 무너지면서 막대한 부채를 안게 됐다. 유독 피해가 컸던 이유 중 하나는 고베에 지난 400년간 지진이 없었던 점, 그리고 활성 단층이 도심 바로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점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내진설계를 층수에 관계없이 전 건물에 적용시키고, 24시간 지진 모니터링 시스템을 대폭 강화했다.

 

지금도 고베항에는 지진 메모리얼 파크가 조성되어 있어, 당시 파손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복구 과정에서 대지진의 교훈, 항구의 중요성,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부흥에 노력한 모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공간이다. 기울어진 가로등과 솟구쳐 오른 땅, 그날의 흔적이 먼 곳에서 온 여행자에게도 묵직하게 닿는다. 재건된 번화가를 걸으면서도, 이 도시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딛고 일어섰는지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고베 항구
고베 항구
고베타워

히메지 - 백로가 날개를 펼친 성, 그리고 전쟁을 생각하다

고베에서 전철을 타고 히메지로 향했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워 보여도 실제로는 꽤 긴 여정이었다. 히메지역에서 내리면 일직선으로 뻗은 대로 끝에 새하얀 천수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첫인상만으로도 먼 길을 온 보람이 충분했다.

 

히메지성은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꼽히는 곳이다. 성벽을 두껍게 칠한 흰 회반죽이 화재와 총탄에 강한 특성을 가지며, 백로가 날개를 펼치고 춤추는 듯한 모습을 닮아 '시라사기성(白鷺城)'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1993년, 호류지 지역 불교 건조물과 함께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천수각(天守閣)'이었다. 현존하는 천수각을 가진 12곳의 성 가운데 하나이며, 천수각이 국보로 지정된 성은 히메지성을 포함해 일본 전국에서 단 다섯 곳뿐이다. 천수각은 지상 6층, 지하 1층 구조로, 중앙을 관통하는 길이 24.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기둥이 건물 전체의 안정성을 받쳐주고 있다. 성의 안팎을 두루 살펴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전법을 구사하는 동시에, 그 웅장한 규모로 적군을 주눅 들게 만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화려한 건축물 앞에 서 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란 인간의 욕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민초의 고혈로 이런 건물을 짓고, 또 그것으로 싸움을 준비하는 악순환. 우리의 성곽과는 다르게 무척 화려하고 요란했다. 말이라는 의사소통 수단을 가진 인간이 서로 평화를 선택한다면 이 고리는 쉽게 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성벽 위로 퍼져나갔다.

히메지 성
히메지성에서 내려다 본 모습
히메지성에서 내려다 본 모습
히메지성에서 내려다 본 모습
히메지성

교토 - 다시 가고 싶은 도시

도쿄나 오사카는 어느 나라의 대도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교토는 다르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같은 곳이랄까.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교토의 킨카쿠지(금각사)는 말로만 듣던 것과 실물이 전혀 다른 곳이었다. 원래는 1397년 무로마치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은퇴 별장으로 지어졌으며, 그의 사후 선종 사찰로 개조되었다. 건물의 각 층이 서로 다른 건축 양식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으로, 1층은 헤이안 귀족의 침전 구조, 2층은 무가 구조, 3층은 선종 사찰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설계는 당시 북산 문화의 화려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건물의 파란만장한 역사다. 1950년, 한 젊은 승려의 방화로 금각이 소실되었고, 그 사건은 훗날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로 문학화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55년에 재건된 것으로, 1987년에는 금박을 더 두껍게 입혀 내구성을 높였다. 재건된 것임을 알고 봐도, 쿄코치(거울 연못)에 황금빛 누각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모습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것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금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준다고 믿어졌으며, 사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칠해졌다고 한다. 그 믿음이 지금도 이 빛 속에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금각사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사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보이는 곳으로도 유명해서, 봄의 벚꽃이나 겨울 설경 속 금각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고 한다. 다음에 교토를 다시 찾는다면 꼭 겨울에 오고 싶다.

금각사

킨카쿠지 (금각사)
어딘가
어딘가
교토
교토
교토
교토
쿄토
철학의 길
쿄토 시내
쿄토
쿄토
쿄토 어딘가의 극장
쿄토
쿄토
쿄토

오사카 - 하늘에 떠 있는 도시

여행의 마지막은 오사카였다. 이 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메다 스카이 빌딩이다. 40층짜리 타워 두 동이 최상층에서 유리 다리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로, 건축가 히로시 하라가 프랑스 파리의 그랑드 아치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1993년 완공 당시 스카이데크를 지면에서 조립한 뒤 유압 엘리베이터로 끌어 올리는 방식을 세계 최초로 시도한 건축 사례이기도 하다. 오사카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야외 전망대에서 바라본 야경은, 여행의 마지막 밤을 채우기에 충분한 선물이었다. <끝>

우메다 스카이 빌딩
우메다 스카이 빌딩
우메다 스카이 빌딩
우메다 스카이 빌딩에서 본 모습
우메다 스카이 빌딩
어딘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