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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여행

안개 속의 섬, 대마도 여행

by 도서관경비원 2026.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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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배를 탔다. 제트포일이라고 했다. 바다 위를 나는 배. 해수면 위로 2미터를 부상해 달린다는 그 배는, 파고가 낮은 날이면 마치 아무것도 밟지 않고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한 시간. 그 짧은 시간이 지나면 일본이다.

 

갑판 밖으로 펼쳐지는 바다는 잔잔했다. 멀리서 섬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분명히 일본인데, 비행기도 타지 않았고, 긴 여정도 없었다. 그 짧은 거리가 오히려 낯설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것이.


이즈하라 항구에 내리자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빗물에 젖은 도로, 안개에 반쯤 가려진 산자락, 작은 버스들과 일본 번호판을 단 차들. 화려한 관광지의 얼굴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조용한 일상이 그대로 놓여 있는 동네였다. Panasonic 간판 하나가 익숙한 듯 낯설게 눈에 들어왔다.

 

대마도는 내내 흐렸다. 여행 내내 하늘은 회색빛이었고, 산에는 안개가 걸려 있었다. 처음엔 아쉬웠다. 그러나 걷다 보니 알게 됐다. 흐린 날씨가 이 섬에는 어울린다는 것을. 맑고 화창한 빛보다, 안개와 습기와 낮게 깔린 구름이 대마도의 진짜 얼굴에 더 가깝다는 것을.


첫날 오르막길을 올라 만을 내려다봤다. 안개 속에 작은 어선 두 척이 항구에 묶여 있었고, 짙은 초록 산이 물을 감싸 안고 있었다. 고요했다. 사람의 소리가 없었다. 바람 소리와 빗소리만 있었다.

 

미우다 해수욕장
와타도 미신사의 도리이

 

해변으로 내려가자 파도가 잔잔히 밀려왔다. 작은 바위섬 하나가 바다 한가운데 솟아 있었고, 그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기울어진 채 서 있었다. 오랫동안 혼자 거기 있었을 것이다. 폭풍도 맞고, 안개도 맞고. 그래도 거기 있었을 것이다.

 

빨간 다리를 건넜다. 만제키바시. 굵은 빨간 철골이 회색 하늘과 초록 산 사이에서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해협은 좁고 깊었다. 러일전쟁 당시 이 해협을 통해 러시아 함대가 지나갔을 것이다. 1905년, 쓰시마 해전. 역사책에서 한 줄로 읽었던 그 사건이 발 아래에 있었다.

 

절벽 위에는 그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콘크리트 구조물, 바다를 향해 열린 포대 자리. 100년이 넘은 것들이 무너지지 않고 거기 있었다. 안개가 그것들을 반쯤 지우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숙소에서 일본식 밥상을 받았다. 검은 쟁반 위에 생선구이, 미소국, 단무지, 김. 소박하고 정갈했다. 창밖엔 여전히 안개가 끼어 있었다.

 

이즈하라 시내를 걸었다. 운하를 따라 난 길 옆 석벽에 타일 벽화가 하나 붙어 있었다. 조선통신사선이 이즈하라 항구에 입항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었다. 조선의 배가 이 섬에 닿았던 것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이 섬이 오랫동안 두 나라를 이어주는 통로였다는 것을, 그 벽화 앞에서 새삼 느꼈다.


안개 낀 숲길을 걸었다. 이끼 낀 돌담, 무너져가는 아치형 석조 구조물. 가이드가 설명했지만 절반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나무들은 가지를 사방으로 뻗은 채 안개 속에 서 있었다. 그것들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시간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 앞에 섰다.

 

솔직히 말하면, 그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항일 의병장. 을사늑약에 저항한 사람. 교과서 어딘가에서 읽었을 이름. 그 정도였다.

가이드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마도로 떠나기 전, 부산 앞바다에서 선생이 버선 속에 조선의 모래를 채워 넣었다는 이야기. 왜적의 땅을 밟지 않겠다는 뜻으로. 일본이 주는 음식도 물도 거절하고, 끝내 이 땅에서 순국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묘 앞에 서 있었다. 흐린 하늘 아래, 안개 낀 대마도 땅 위에서.

 

가이드가 시를 읊었다. 옥중에서 쓴 시였다. 나라를 잃어버리는 것을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한자어가 섞인 시구였지만, 그 목소리의 무게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설명을 듣기 전과 후가 달랐다. 그전까지 그것은 그냥 오래된 묘였다. 그 이후에는, 살아있던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被囚日獄口號

萬里風霜苦旅魂
孤臣端委耿忠存
扶危未展平生志
却使蠻奴肆侮言

 

일본 옥중에 갇혀서 읊다

만 리 풍소리 서리 맞은 나그네 혼은 괴로운데,
외로운 신하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충성된 마음 변치 않네.
위기를 바로잡으려다 평생의 뜻을 펴지 못하고,
도리어 오랑캐 노예들로 하여금 함부로 업신여기는 말만 하게 하는구나.

 

배경 및 의의: 1906년 전라북도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일옥(日獄)'은 일본의 감옥을 뜻하며, 이역만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의로움을 굽히지 않겠다는 굳건한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본 땅에 묻힌 조선 의병장. 부산에서 한 시간 거리에 그런 사람이 숨을 거두었다.


舟志 삼림공원을 걸었다. 안개가 더 짙어진 오후였다. 숲속 정자가 안개에 반쯤 잠겨 있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자 작은 폭포가 나타났다. 빗물을 머금은 숲이 짙은 초록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두웠지만 어둡지 않았다. 안개가 빛을 부드럽게 산란시켜 숲 전체가 은은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저녁에는 이시야키를 먹었다. 대마도 향토 음식이다. 석영반암, 특별한 돌을 한 시간 이상 달구어 그 위에 해산물을 올려 굽는다. 벌겋게 달궈진 돌 위에서 오징어와 생선이 지글지글 익어갔다. 불과 돌과 바다의 것들. 참깨소스를 찍어 입에 넣었다. 단순한데 깊은 맛이었다.

 

다다미 방에 앉아 식사를 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웠다.


마지막 날, 항구로 나오자 하늘이 열려 있었다. 파란 하늘이었다. 여행 내내 안개와 비만 보다가 처음 보는 파란 하늘이었다. 항구에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고, 초록 산이 선명하게 빛났다.

 

떠나는 날에야 얼굴을 보여주는 섬이었다.

 

제트포일에 올랐다. 배가 바다를 박차고 나아가자 대마도가 멀어졌다. 한 시간. 다시 부산이었다.

 

가깝지만 먼 곳. 일본이지만 일본 같지 않은 곳.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곳. 조선의 사람이 잠든 곳. 안개가 어울리는 섬.

 

대마도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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