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없다. 아이클라우드가 어느 날 조용히 다 지워버렸다. 트윈타워도, 노부의 그 근사한 접시도, 272개 계단도 — 전부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쿠알라룸푸르는 처음부터 내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도시였는지도 모른다.

12월의 쿠알라룸푸르는 덥고 습했다. 한국의 겨울 공기에 익숙한 몸으로 내리자마자 이마에 땀이 맺혔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창밖으로 야자수와 고층 빌딩이 번갈아 스쳐갔다. 낯설다기보다는 어딘가 어정쩡한 풍경이었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는 물론 갔다. 쿠알라룸푸르에 오면 누구나 가는 곳이니까. 가까이서 올려다보면 분명 거대하고 반짝였지만, 감동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높은 건물이구나, 싶었다. 타워 안에는 쇼핑몰이 있었고, 사람들이 많았고, 에어컨이 시원했다.
그날 저녁은 노부(Nobu)에 갔다. 미슐랭 셰프 노부 마츠히사의 이름을 딴 일본-페루 퓨전 레스토랑. 무엇을 먹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위기가 근사했고, 조명이 낮았고, 음식이 예뻤다는 느낌은 남아 있다. 여행지에서의 고급 식사란 그런 것 같다 — 맛보다 분위기가 더 오래 기억된다.
다음 날은 바투 동굴에 갔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힌두교 성지로, 입구에 황금빛 무루간 신상이 우뚝 서 있었다.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동굴 안으로 올라가려면 계단을 272개 올라야 했다. 12월이라도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였다. 땀을 흘리며 올라가는 내내 원숭이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사납다는 말이 딱 맞았다. 무언가를 들고 있으면 낚아채고, 괜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으르렁댔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원숭이를 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동굴 안은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석회암 천장 아래 서 있으면 잠시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쿠알라룸푸르는 딱히 잘못한 게 없는 도시다. 트윈타워는 크고 반짝였고, 밥은 맛있었고, 바투 동굴은 볼 만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 별로 볼 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충분히 봤는데, 마음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사진이 남아 있었다면 달랐을까. 아마 이따금 꺼내보며 "여기 갔었지" 하고 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도 없으니, 기억만 남았다. 덥고 습했던 공기, 원숭이의 눈빛, 낮은 조명 아래 놓인 예쁜 접시.
그걸로 충분한 여행이었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1일차 - 도심 핵심 코스
- 오전: 메르데카 광장 &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 (말레이시아 독립 역사의 중심지)


- 점심: 자란 알로르 거리 음식 탐방
- 오후: 부킷 빈탕 쇼핑 & 카페
- 저녁: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야경 (낮보다 밤이 훨씬 예뻐요)
2일차 - 문화 & 자연 코스
- 오전: 바투 동굴
- 오후: KL 버드파크 (세계 최대 규모 자유비행 조류공원)
- 저녁: 현지 고급 레스토랑
3일차 - 근교 코스
- 오전: 말라카 당일치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 KL에서 버스로 2시간)

- 또는 겐팅 하이랜드 (KL 근교 고원 리조트, 시원해요)

팁
- 그랩(Grab) 앱이 택시보다 훨씬 편하고 저렴해요
- 12월은 우기라 스콜이 자주 오니 우산 필수
- 현지 음식은 나시르막, 락사, 차 꿰 띠아우 꼭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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