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항, 여행의 첫 시험대
비행기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그런데 타슈켄트 공항에서의 첫 장면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슬람 카리모프 타슈켄트 국제공항(TIA)은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공항으로, 국제선과 국내선 터미널이 활주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우즈베크어·러시아어·영어 안내판이 갖춰진 현대적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택시 기사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얀덱스(Yandex) 앱으로 미리 확인해 둔 요금의 다섯 배를 부르는 것은 예삿일이다. 문제는 얀덱스 택시가 공항 내부까지 진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걷기 싫으면 바가지를 감수해야 한다.
얀덱스는 러시아의 차량 호출 플랫폼으로, 한국의 카카오택시와 유사한 서비스다. 우즈베키스탄 시내에서의 택시 요금은 통상 20,000숨(약 2,200원) 내외로 매우 저렴하지만, 공항 앞 호객 기사들이 부르는 가격은 그 몇 배에 달한다. 중앙아시아의 대표 관광지를 꿈꾼다면, 첫인상부터 바꿔야 한다. 공식 픽업존 하나만 조성되어도 여행자의 기분은 완전히 달라질 텐데.
거리에서 마주친 자동차 산업의 지각변동
공항을 빠져나온 타슈켄트의 거리는 온통 스파크와 마티즈다. 한국에서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차량들이 이곳에서는 현역으로 질주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오랫동안 GM과의 합작 법인(UzAuto Motors)을 통해 한국형 소형차를 대량 생산·보급해 온 나라다. 그 결과, 구형 대우 모델들이 지금도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데 새 차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분위기가 다르다. BYD 로고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한국 자동차가 중앙아시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자리를 중국 브랜드가 조용히 파고들고 있다. 가격 경쟁력과 전기차 라인업을 앞세운 중국산 차량의 공세는 이미 가시적인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뭔가 대응이 없으면, 철 지난 한국 차들이 중국 차로 대체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아미르 티무르 광장 — 권력은 정의에 있다
시내 관광의 첫 번째 목적지는 아미르 티무르 광장(Amir Temur Square)이다.
광장의 역사는 1882년 러시아 제국이 타슈켄트를 투르키스탄 군사 사령부의 중심지로 삼으면서 시작된다. 20세기 들어 레닌 동상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하면서 광장의 정체성은 완전히 바뀌었다. 레닌 동상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14세기 중앙아시아를 호령했던 티무르 제국의 창건자 아미르 티무르(1336~1405)의 기마상이 세워졌다.
기념비 받침대에는 티무르의 신조인 "권력은 정의에 있다(Power is in Justice)"가 4개 언어로 새겨져 있다. 신생 독립국 우즈베키스탄은 다민족 국민들의 자부심을 하나로 묶을 구심점으로 티무르를 택했고, 그는 오늘날까지 우즈베키스탄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다. 2009년 대대적인 재건축을 거쳐 분수와 녹지로 정비된 광장은 거창한 볼거리보다는 나무 그늘 아래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도심 속 휴식 공간이다.
광장에서 무스타킬릭크 광장(Mustaqillik Maydoni)까지는 약 1킬로미터. 그 사이 스트리트 푸드 노점들이 늘어선 골목이 이어진다. 놀랍게도 떡볶이와 라면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한류는 이곳 중앙아시아까지 와 있다.

무스타킬릭크 광장 — 행복한 어머니와 비탄의 어머니
무스타킬릭크(Mustaqillik)는 우즈베크어로 '독립'을 의미한다.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과거의 레닌 동상을 철거하고 독립 기념 아치를 세운 이곳은 외국 정상들이 방문 시 가장 먼저 헌화하는 우즈베키스탄의 국가 상징 공간이다.

광장에는 두 개의 어머니상이 함께 서 있다. 아이를 품에 안은 '행복한 어머니상'과, 꺼지지 않는 불꽃을 바라보는 '비탄의 어머니상'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은 조국을 위해 전장에서 산화한 병사들을 기리는 상징이다.
두 동상은 단순하되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전쟁은 행복한 어머니를 비탄의 어머니로 만든다. 그 단순한 진실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모든 전쟁이 멈추기를 바라며 발길을 옮겼다.


여행자를 당혹케 하는 것들 — 현금과 교통
우즈베키스탄 여행에서 현금은 필수다. 일부 관광지는 입장권을 현금으로만 받으며, 외국인 카드로는 결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유로를 환전하면 한 뭉치의 지폐가 손에 쥐어진다. 라오스에서처럼 자릿수가 커서 순간 당황하지만, 결산하면 얼마 되지 않는 그 감각이다.
지하철 사정도 만만찮다. 타슈켄트 지하철은 총 4개 노선이 운행 중인 꽤 규모 있는 시스템이지만, 외국인 여행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다. 현금 구매처를 찾기 어렵고, 키오스크와 앱은 외국 전화번호로는 가입 자체가 되지 않는다. 중앙아시아 최대 도시를 표방하는 타슈켄트에서 교통 편의성은 여전히 관광 경쟁력의 과제로 남아 있다.
첫날에는 크고 작은 실수도 있었다. 한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마치고 계산하려는데 트래블월렛 카드가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카드를 교체하면서 이전 카드를 그대로 챙겨온 것이었다. 여행은 아무리 꼼꼼히 준비해도 반드시 예상 밖의 일이 생긴다. 다행히 신용카드가 살아 있었다.

알리셰르 나보이 극장 — 건물에 새겨진 역사
알리셰르 나보이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Alisher Navoiy State Academic Bolshoi Theatre)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닌, 타슈켄트의 살아있는 역사다.
극장의 이름은 15세기 우즈베키스탄의 위대한 시인이자 사상가인 알리셰르 나보이(1441~1501)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우즈베크어로 쓰인 최초의 문학 작품을 남긴 인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로 여겨진다. 극장은 1947년 완공되었으며 수용 인원은 1,500석에 달한다.
이 극장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담겨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에 억류된 일본인 전쟁 포로들이 건설에 참여하여 완성에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극장 외벽에는 이를 기리는 명판이 부착되어 있다. 1966년 타슈켄트 대지진 당시 인근 건물들이 대거 붕괴되었음에도 이 극장만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은, 시공에 임한 이들의 정성을 방증한다. 극장 맞은편에는 롯데 시티 호텔이 자리하고 있으며, 극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루프탑 레스토랑으로도 유명하다.
유럽의 극장들에 비해 외관의 화려함은 다소 절제된 편이다. 하지만 구 소련의 문화적 영향 아래 오페라와 발레의 전통이 깊이 뿌리내린 이 극장에서는 오늘날도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같은 고전 발레는 물론, 우즈베키스탄 고유의 색채를 담은 공연이 저렴한 가격에 정기적으로 올라간다.


샤슬릭과 맥주 — 여행의 마침표
긴 하루를 마무리하며 호텔로 돌아가는 길, 중국인 거리를 지나쳤다. 이슬람 국가임에도 노천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정겨웠다.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샤슬릭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샤슬릭(Shashlik)은 중앙아시아·동유럽·중동 전역에 걸쳐 사랑받는 꼬치구이 음식으로, 양고기나 쇠고기를 향신료에 재운 뒤 숯불에 구워내는 우즈베키스탄의 대표 음식이다. 중국 양꼬치와 형태는 유사하지만 육량이 훨씬 풍성하고, 향신료의 조합도 독특하여 전혀 다른 풍미를 낸다.
맥주를 주문하며 익숙한 이름을 댔지만 점원은 알아듣지 못했다. 나온 맥주 이름은 '헌터(Hunter)'였다. 샤슬릭 한 꼬치만 주문했더니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점원이 "너무 작을 텐데요"라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잠시 후 나온 접시를 보니 그 걱정은 기우였다. 맥주 두 병은 거뜬히 비울 수 있는 양이었다.


불완전한 하루가 남기는 것
첫날의 타슈켄트는 불편하고 어수선했다. 공항의 호객 행위, 외국인을 위한 교통 인프라의 미비, 예상치 못한 카드 사고까지. 그러나 그것이 또 여행이다.
완벽하게 계획된 하루보다, 예상치 못한 장면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두 어머니상 앞에서 느꼈던 서늘한 감동, 나보이 극장 벽면에서 마주친 조용한 역사, 그리고 낯선 맥주와 함께 비운 샤슬릭 꼬치. 타슈켄트는 그렇게 첫날부터 자신의 방식으로 여행자를 붙잡는다. <끝>
'일상 >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소련의 흔적과 K-문화가 공존하는 도시, 타슈켄트 여행기 (0) | 2026.04.12 |
|---|---|
| 실크로드의 심장, 사마르칸트 여행기 (1) | 2026.04.11 |
| ✈️ 두바이 에어쇼 2025 — 하늘이 열리는 5일간의 축제 (0) | 2026.04.08 |
| Qasr Al Sarab Desert Resort by Anantara — 사막 한가운데의 신기루 궁전 (2) | 2025.03.08 |
| 🛡️ IDEX 2025 — 세계 최강 방산 기술이 아부다비에 집결하다 (0) | 2025.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