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에서 아침 일찍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사마르칸트. 중앙아시아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이름이다.
열차는 KTX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기본으로 나오는 빵과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건조한 중앙아시아의 대지를 바라보는 시간도 나름 운치가 있다. 추가로 시킨 과일이 놀랍도록 달고 맛있어서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점 —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로 갈 땐 40,000숨인데, 올 때는 20,000숨이었다. 박물관에서 콜라 한 캔이 10,000숨인데, 기차역에서는 20,000숨. 이 나라의 가격 체계는 아직도 내 이해 범위 밖이다.
사마르칸트역에서 내리자마자 전쟁 시작
기차역을 나서면 택시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외국인 얼굴만 보면 바가지부터 씌우려 달려드는 건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 같다. 현명한 방법은 역에서 조금 걸어 나와 얀덱스(Yandex) 앱을 켜는 것. 단, 사마르칸트는 데이터가 불안정한 구역이 있어 픽업 위치가 엉뚱하게 잡히기도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앱으로 차를 불렀더니 오토바이가 왔다 — 짐을 나르는 사람이었다. 차를 부른 뒤 취소하면 5,500숨이 빠져나간다는 것도 이날 배운 교훈이다.



티무르 아미르 영묘 — 검은 관의 주인
첫 번째 목적지는 티무르 아미르 영묘다. 중앙아시아를 호령했던 티무르 제국의 창건자 티무르(타메를란)가 잠든 곳이다. 출발 전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챙겨봤던 게 여기서 빛을 발했다. 마침 카자흐스탄에서 온 여행 친구가 어떤 게 티무르의 관이냐고 물어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 당연히 가운데의 검은 관이다. 생각보다 관이 작아서 의외였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사진 찍기가 늘 난감한데, 마음씨 좋은 카자흐스탄 친구가 사진을 여러 장 찍어줬다. 덕분에 다음엔 카자흐스탄도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레기스탄 — 사마르칸트에서 단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사마르칸트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레기스탄 광장이다. 정면의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를 중심으로, 양쪽에 대칭을 이루는 티야 카리와 셰르도르 마드라사가 웅장하게 서 있다. 푸른 타일과 황금빛 돔이 하늘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경은 사진으로는 절대 그 압도감을 담을 수 없다. 건물 안에는 전시물과 공예품 상점도 있고, 밤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더해져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고 하니, 일정이 된다면 야간 방문도 강력 추천한다.
레기스탄에서 비비하눔 모스크로 걸어가는 길, 극심한 더위에 맥주와 샤슬릭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식당 안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에어컨을 세게 틀어주지 않는 것을 보면, 이 정도 날씨는 이곳 사람들에겐 그냥 좋은 날씨인 듯하다.
비비하눔 모스크와 맞은편 마우솔레움(귀인의 묘소)도 둘러봤다. 솔직히 말하면, 레기스탄을 보고 나니 이후의 건축물들이 비슷한 양식의 반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훌륭한 유적인 건 맞지만, 외국인에게만 비싼 입장료를 받으며 동일한 양식을 계속 보여주는 건 조금 아쉽다.





샤히 진다 — 타일 가까이서 소원 빌기
샤히 진다는 이슬람 성인과 귀족들의 묘지가 모여 있는 골목 형태의 유적이다. 비슷한 청록색 타일이지만, 이곳은 좁은 골목을 걸으며 타일 문양을 훨씬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더 여행하는 기분이 난다. 입구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 센 숫자가 같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계단이 불규칙하게 흔들려서 숫자 셀 정신이 없었다. 소원은 다음 기회로...



아프로시압 박물관 — 1,400년 전 고구려 사신을 만나다
샤히 진다에서 아프로시압 박물관까지 걸어갔다가 다리가 녹을 뻔했다. 날씨도 덥고, 거리도 만만치 않으니 꼭 택시를 타기를 권한다.
이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7세기 소그드 왕국의 바르후만 왕을 알현하는 외국 사신들이 그려진 궁전 벽화다. 벽화의 서쪽 벽 오른쪽 끝에 머리에 깃털을 꽂은 조우관을 쓰고 허리에 환두대도를 찬 두 인물이 그려져 있는데, 학계는 이들을 고구려 사신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에서 중앙아시아까지, 도대체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야생동물도, 알 수 없는 길도 많았을 그 여정을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
일부 학계에서는 고구려 사절이 실제로 사마르칸트에 간 것이 아니라 당시 현지 화가가 '동쪽 끝의 나라=고구려'라는 인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갔든 이미지로 남겨졌든, 1,400년 전 고구려의 흔적이 이 머나먼 땅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을 통해 전시실과 궁전벽화 전시실이 새단장되었다. 낯선 이국의 박물관에서 태극기를 발견하는 순간의 뿌듯함은 직접 경험해봐야 안다. 에어컨과 모니터는 모두 LG 제품이었다. 공금은 이렇게 써야 한다.



울루그 베그 천문대 — 기대와 현실의 간극
마지막으로 울루그 베그 천문대를 찾았다. 티무르의 손자이자 천문학자였던 울루그 베그가 세운 유적이지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것에 비해 볼거리가 너무 적다. 결론적으로 비비하눔과 울루그 베그 천문대는 일정이 빡빡하다면 과감히 생략해도 좋다.



당일치기 여행자를 위한 추천 코스
샤히 진다에서 아프로시압까지는 반드시 택시를 이용할 것. 사마르칸트 교통 체증은 심각하니 기차 시간은 넉넉하게 잡아두는 게 상책이다. 온 도시가 공사 중이라 5년쯤 뒤엔 꽤 달라진 모습일 것 같다.
실크로드의 찬란한 역사와 먼지 섞인 현실이 공존하는 도시, 사마르칸트. 불편함도 많고, 바가지도 있고, 더위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레기스탄의 황금빛 돔 앞에 서는 순간, 그리고 벽화 속 고구려 사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 그것만으로 이 긴 여정은 충분히 값진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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