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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해외여행

하루 짜리 중앙아시아 — 알마티 스톱오버 기행

by 도서관경비원 2026.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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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오가는 길이 익숙해질수록 문득 이 길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엔 스톱오버를 택했다. 목적지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하루 만에 돌아봐야 하는 짧은 일정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비행기 창밖, 산이 보인다

착륙을 앞두고 기내 창밖을 내다봤다. 평지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산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알마티는 톈산산맥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어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스케일일 줄은 몰랐다. 산이 없는 곳에 살다 보니 그 기분이 더욱 각별했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에도 활주로 너머로 눈 덮인 봉우리가 펼쳐져 있었다.

비행기에서 본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은 작고 단순했다. 짐을 맡길 곳을 찾으니 'NOMAD'라는 짐 보관소가 있었다. 유목민의 나라에서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직원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알고 보니 그분의 할아버지가 '고려인'이라고 했다. 독립운동을 하다 간도를 거쳐 이 먼 중앙아시아까지 흘러온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가 불현듯 스쳤다. 짐을 맡기고 택시까지 잡아주는 그분의 친절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알마티 공항
캐리어 보관 서비스

젠코프 성당 — 못 하나 없이 지은 기적

택시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나를 젠코프 성당 앞에 내려줬다. 관광객이라는 걸 알아챈 듯, 기사는 따로 묻지도 않고 이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젠코프 대성당은 20세기 초에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전적으로 나무로 지어진 건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목조 건물이다. 건축가 젠코프의 설계에 따라 1904~1907년에 완공됐으며, 도시가 거의 폐허로 변했던 1910년의 대지진을 포함한 모든 지진을 견뎌냈다. 유럽의 대성당들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못 하나 쓰지 않고 이 규모를 지어낸 장인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 수수함 자체가 경이롭다.

판필로프 공원
젠코브 성당

 

성당 왼편으로는 영광의 기억(Memorial of Glory)이라 불리는 추모 공간이 있다. 구소련 시절 특유의 무겁고 거친 조각상들이 서 있고, 그 앞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구소련의 유산을 품은 나라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나라를 지키다 쓰러진 이들을 기리는 그 불꽃 앞에서는 발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진다.

영광의 기억
꺼지지 않는 불꽃
Memory of Glory (출처: 위키피디아)
 

공원 안쪽에는 전쟁사 박물관이 있고, 야외에는 구소련 시절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카츄사(BM-13 Katyusha)'.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사용한 세계 최초의 다연장 로켓으로, 14~48발의 로켓을 단 8초 안에 모두 발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조용히 야외에 세워진 낡은 차량이지만, 전선에서 이 소리를 들었을 병사들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참고로 러시아에서 '카츄사'는 여성 이름이기도 하다.

악기박물관
전쟁사박물관
탱크 등 무기 야외 전시
카츄사 다련장 로켓
실제 카츄사 발사 장면
구소련의 특이한 자주포 또는 견인포

황금인간 — 수천 년을 넘어온 빛

이번 스톱오버의 진짜 목적지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황금인간'이었다. 얀덱스 택시가 엉뚱한 박물관 앞에 나를 내려주는 해프닝 끝에 겨우 도착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저 멀리 독립기념비가 보인다.
독립기념비 (출처: 카자흐스탄 관광청)
카자흐스탄 국립중앙박물관
 

1969년,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이시크 쿠르간 고분에서 발견된 인골 한 구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나이 15~18세, 키 168cm 가량의 이 남성 인골은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화려한 황금 장식으로 치장한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금제품으로 장식된 이 미라는 '황금인간'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는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발굴에 버금가는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받는다.

황금인간

박물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전시물이 바로 이 황금인간이다. 4,000개 이상의 금 조각으로 장식된 복제품이지만 매우 정교하게 복원되어 실물처럼 보인다. 신라의 금관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그 유사성이 우연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목민의 이동 경로를 따라 문화가 흘렀을 테니, 이 황금의 기억이 먼 신라까지 닿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피어올랐다.

영화 토미리스 (2019) 출처: 위키피디아

 

카자흐스탄 영화 <토미리스>의 포스터에서 마사게타의 여왕 토미리스가 입고 있는 옷이 황금인간의 옷과 사뭇 비슷하다.

 

박물관 한편에는 유목민의 집인 '유르타'도 전시되어 있었다. 몽골에서는 '게르', 중국에서는 '파오'라 부르는 바로 그 이동식 주거다. 초원을 따라 삶을 옮겨다녔던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공간이 박물관 안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유목민의 집
박물관 앞 공원

알마티, 스톱오버로 딱 좋은 도시

반나절 남짓 돌아본 알마티는 많이 가진 도시가 아니었다. 거창한 관광지가 즐비하지 않고, 영어 안내도 부족하고, KFC 키오스크조차 카자흐어와 러시아어만 지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는 무언가 담겨 있다. 알마티라는 이름은 카자흐어로 '사과의 도시'를 뜻하며, 실제로 톈산산맥 일대는 사과의 기원지로 여겨진다. 이름처럼 소박하지만 알찬 도시다.

쇼핑몰

 

포토북 하나 사지 못하고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 창밖으로 다시 톈산산맥이 보였다. 언젠가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하루 이틀 더 머물며 저 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봐야겠다.

텐산산맥 난연봉 (5,697m) 출처: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에 톈산산맥을 설명한 글이다.

톈산산맥(天山山脈, 천산산맥), 줄여서 톈산(天山, 천산)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산맥이다. 현지 발음으로 탕그리 토그라고 부르며 중국어로 톈샨은 탕그리 토그에서부터 유래된 이름이다. 중국어로 바이산(白山, 백산), 쉐산(雪山, 설산)이라고도 불렸다. 최고봉은 포베다산이고, 두 번째 높은 최고봉은 한텡그리봉이며 여러 높은 산들이 많이 있다. 이곳 산들은 봉우리에 빙하가 남아 있다. 텐산산맥은 타림 분지와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 서쪽과 동쪽은 지형이 서로 다르다. 서쪽이 날카로운 봉우리와 빙하가 많은 데 비해, 동쪽은 빙하와 날카로운 봉우리가 적다. 교통로가 발달해 있고, 농업과 목축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해발고도는 3,600∼4,000m, 길이는 2,000km, 너비는 400km이다. 2013년에 캄보디아에서 개최하는 제37회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톈산산맥이, 2016년 제40회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의 톈산산맥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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