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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비문에 국한되어 있어서 그 범위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짧은 기록으로 제한되었다. 따라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재료가 필요했다.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의 발명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파피루스는 나일강 삼각주 습지에 풍부했던 갈대와 같은 파피루스 식물의 줄기를 세로로 얇게 잘라서 만들었다. 이 조각들을 판 위에 나란히 놓아 한 장의 시트를 만들고, 첫 번째 층에 직각으로 다른 층을 추가했다. 이것을 모두 물에 담그고 망치로 두드려서 햇볕에 말리면 식물의 천연 껌이 단면을 서로 붙였다. 그런 다음 조개껍데기로 글을 쓰는 표면을 매끄럽게 긁어내어 완성된 시트(보통 폭 10~18인치)가 거친 갈색 종이와 비슷해지면 이집트인들은 이 시트의 가장자리를 겹쳐 붙여서 최대 100피트 길이의 스트립을 만들 수 있었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말아서 보관했다. 이집트인들은 붓처럼 생긴 펜과 껌이나 물을 섞은 유색 흙이나 숯으로 만든 잉크를 사용해 글을 썼다. 파피루스의 내구성뿐만 아니라 곰팡이와 곰팡이를 방지하는 이집트의 극도로 건조한 기후 덕분에,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상태의 두루마리가 상당량 보존되어 있다.

 

파피루스가 도입되면서 필기를 단순화하기 위한 추가 단계가 거의 불가피했다. 첫 번째 단계는 주로 이집트 사제들이 펜과 잉크에 더 적합한 보다 빠르고 덜 그림 같은 스타일을 개발했다. 소위 ‘신성한(hieratic)’ 일에 쓰는 문자(신관문자)로 불리는 이 문자는 필기체 또는 자유자재로 쓰여서 언뜻 보기에 그 형태가 오래된 상형문자와 거의 닮지 않았다. 상형문자가 인쇄물에 해당하는 것처럼 우리의 손 글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문자가 보편화되면서 상형문자조차도 너무 느린 것으로 판명되어 ‘민중(demotic) 문자'로 알려진 일종의 속기가 생겨났다. 상형문자는 최악의 경우 쉼표가 연속적으로 나열되어 각각 완전히 다른 기호를 나타내는 민중 문자에 비하면 어린아이의 장난이다.

 

이 두 가지 표기 방식은 모두 10의 거듭제곱을 바탕으로 한 덧셈식 숫자 표현이었지만, 상형문자의 반복적인 원리는 하나의 표시를 사용하여 비슷한 기호의 집합을 표현하는 장치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표기법을 ‘암호화’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는 다섯 개의 세로획으로 표시하는 대신 고유한 표시를 할당받았다.

 

숫자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신관문자의 체계는 앞의 표와 같다. 1, 10, 100, 1000의 기호는 기본적으로 앞서 사용된 상형문자의 약어이다. 상형문자에서 숫자 37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 문자를 신문자로 대체하면 덜 번거로워진다.

이 표기법에서 필요한 기호의 수가 많으므로 기억에 많은 부담을 주었지만, 이집트 서기들은 그 속도와 간결함 때문에 이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암호화의 아이디어는 바빌로니아가 위치 원리를 채택한 것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숫자 발전의 결정적인 단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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