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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해외여행

양쯔강 너머에서 만난 우리의 역사 — 충칭, 2007년

by 도서관경비원 2026.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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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北京)은 알았다. 남경(南京)도 알았다. 하지만 중경(重慶), 충칭은 몰랐다. 솔직히 그랬다. 2007년, 학회 참석차 처음 그 도시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이름만 들으면 여느 중국 도시 같지만, 충칭은 하나의 성(省)에 맞먹는 거대한 직할시다. 양쯔강과 자링강이 만나는 험준한 산악 지형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도착하는 순간부터 스케일로 먼저 압도해 온다. 그리고 그 스케일 안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가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 시간이 멈춘 부두 — 장강 케이블카와 롱먼하오 옛 거리

양쯔강,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장강(長江)을 끼고 있는 롱먼하오(龍門浩) 옛 거리는 충칭 역사의 한 축이다. 샤오시즈역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강 건너 난안구로 넘어가며, 강 위에서 충칭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산과 강과 빌딩이 뒤엉킨,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이었다.

장강 케이블카

 

충칭은 1890년 세계에 문을 열면서 롱먼하오가 중국 역사상 최초의 내륙 항구가 되었다. 거리엔 서구 영사관과 레스토랑이 들어섰고, 부두는 사람과 물자로 넘쳐났다. 그 분주하던 시절의 모습은 이제 사라졌지만, 2018년부터 수리를 거친 롱먼하오는 오래된 건물 안에 식당과 주거지를 품은 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골목을 걷다 발밑의 맨홀 뚜껑에 다채로운 그림이 그려진 것을 발견했을 때, 이 도시가 얼마나 섬세하게 자신의 역사를 가꾸는지 느꼈다. 거대한 것만이 역사가 아니라는 걸, 발밑의 작은 그림이 말해주고 있었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부채감 —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충칭 여행에서 가장 크게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 문 앞을 지나쳤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을 때,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충칭 임시정부

 

상해 임시정부는 많이들 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는 일본의 압박과 중일전쟁의 포화를 피해 항저우, 창사, 광저우를 거쳐 1940년 9월, 마침내 충칭에 마지막 둥지를 틀었다. 8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도달한 곳이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이곳에서 독립을 향한 불꽃을 꺼뜨리지 않았다.

 

연화지 38호에 위치한 청사는 1929년에 지어진 호텔 건물이다. 장제스가 통째로 전세를 내어 임시정부가 쓸 수 있게 해준 것이라 한다. 건물 중앙의 돌계단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 직전 태극기를 들고 기념촬영을 한 역사적인 자리다. 1995년 충칭시의 지원으로 복원된 이 청사에는 지금도 김구 선생의 흉상과 독립신문, 한국광복군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임시정부가 충칭에 머문 6년은 독립운동이 비밀 활동에서 공개적 활동으로 전환된, 가장 활발했던 시기로 평가된다. 이 머나먼 땅에서,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버텼다. 그 돌계단 앞에 서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다. 충칭에 가보긴 했지만, 이걸 못 봤으니 반쪽짜리 여행이었던 셈이다.


🌃 눈이 바쁜 도시 — 훙야동, 래플스 시티, 대극원

역사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면 충칭은 또 다른 얼굴을 내민다.

 

강변을 따라 11층 높이로 세워진 훙야동(洪崖洞)은 묘족 전통 가옥 형태인 조각루 양식으로 2006년 완공된 복합 문화 공간이다. 1층 앤티크 숍부터 꼭대기 시티 발코니까지, 층마다 표정이 다른 이 건물은 밤이 되면 빛으로 가득 찬다. 강물 위에 반사되는 훙야동의 야경은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한 장면 같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훙야동

 

강 건너엔 래플스 시티 충칭이 우뚝 서 있다. 250m짜리 빌딩 네 동을 하늘에서 연결하는 기다란 스카이 브리지가 인상적인 이 건물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와 같은 건축가의 작품이다. 이 일대가 예전 부두였다는 역사에서 착안한 '돛의 형태'가 설계 모티프라 하니, 충칭은 현대 건축으로도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셈이다. 충칭대극원은 범선처럼 보인다 하여 '고범원영'이라 불리지만, 탱크 같다는 별명도 있다. 보는 이에 따라 해석이 갈리는 그 건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래플스 시티 충칭
충칭대극원


🚝 삶 속으로 들어온 교통수단 — 리즈빠 모노레일과 츠치커우

충칭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진풍경이 있다. 리즈빠 모노레일이 주거 건물을 통과해 달린다. 처음엔 그저 신기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달라졌다. 매일 소음과 진동을 감내해야 하는 그 집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흥미와 주민의 일상은 늘 같은 온도일 수 없다.

리즈빠 모노레일

 

시내에서 서쪽으로 14km 떨어진 츠치커우(磁器口) 고진은 조금 다른 여유를 선물한다. 도자기 공방이 모여 이름이 붙은 이 옛 마을의 좁은 골목에서는 쓰촨과 충칭의 먹거리가 골목마다 넘쳐흘렀다. 그리고 비파원(枇杷苑).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 훠궈 식당으로 테이블만 700개, 수용 인원이 5,800명이라니 식당이라기보다 거의 하나의 도시에 가깝다. 충칭의 매운 훠궈 한 입은 그 날의 피로를 한 번에 날려버렸다.

츠치커우 고진
비파원


🌆 야경보다 역사가 더 빛나는 도시

아령공원 꼭대기에서 충칭의 야경을 내려다봤을 때, 솔직히 크게 감동받지 못했다. 마천루 야경은 서울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를 안내하던 중국 학생이 눈을 반짝이며 이 발전을 자랑하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난다. 그 마음이 이해됐다. 누군가에게 충칭의 스카이라인은 자랑스러운 현재였고, 우리에게 충칭은 잊혀진 역사가 숨 쉬는 땅이었다. 같은 도시를 보면서도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아령공원

 

반짝이는 빌딩들 아래 어딘가, 연화지 38호의 돌계단이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태극기를 들고 그 계단 위에 섰던 사람들의 마음이, 지금도 그 돌 안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다음에 충칭을 다시 간다면, 가장 먼저 그 문을 두드릴 것이다. 반쪽짜리로 남은 여행을 완성하러. <끝>

난빈루
해방비 광장
몇 장 안 남은 당시 찍은 사진
몇 장 안 남은 당시 찍은 사진
몇 장 안 남은 당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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