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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

물리학의 역사와 인류 기술 문명의 발전 — 아리스토텔레스에서 MOSFET까지

by 도서관경비원 202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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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수백만 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도구와 물건을 창조해왔다.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와 같이 이른바 '기술의 시대'는 특정 재료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다루는 능력을 기준으로 명명되었다. 암석을 다듬어 창끝을 만드는 방식,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의 용광로에서 철과 탄소를 결합해 고품질 강철을 제조하는 기술, 정밀하게 연마된 유리를 조합하여 광학 기기를 완성하는 방법 — 이 모든 지식의 근저에는 물리학(Physics)이 자리하고 있다.


물리학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서 《자연학》에서 다양한 운동 현상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면서 시작되었다. 경험적 방법으로 지식을 추구하는 전통은 이후에도 이어져, 이븐 알하이삼 같은 학자들이 광학 이론을 재정립하는 등 물리학의 기초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쌓아올려졌다. 이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를 통해 물리학의 기틀을 다졌으며, 아이작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고전 역학을 완성하였다. 뉴턴이 미적분학을 활용해 역학을 정립한 이후, 베르누이·오일러·라그랑주·라플라스 등의 학자들이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특히 라그랑주는 1788년 《해석역학》을 통해 변분법을 활용한 라그랑주 역학을 발표하였고, 해밀턴은 1834~35년에 광학과 역학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이들을 하나의 원리로 통합한 해밀턴 역학을 정립하였다. 


역학 외에도, 전자기학 분야에서는 맥스웰이 1873년 《전자기론》을 통해 이론적 체계를 완성하였다. 열역학은 보일의 법칙과 샤를의 법칙을 거쳐 클라페롱의 이상기체 상태 방정식으로 정립되었고, 이후 판데르발스 상태 방정식으로 보완되며 한층 발전하였다. 고전물리학의 두 축은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으로, 19세기 말에 이르러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거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고전 물리학은 원자보다 크고, 빛의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운동하는 물체를 설명하는 데에만 적합하다는 한계가 드러났다. 이 범위를 벗어난 현상에서는 고전 물리학의 예측과 실제 관측 결과 사이에 큰 괴리가 발생하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05년, 등속 운동하는 물체에 고전 전자기학이 항상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새로운 시공간 개념을 담은 특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다. 또한 1900년 막스 플랑크는 흑체복사 에너지가 특정 상수(플랑크 상수)의 정수배가 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제시하였으며, 이는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전제로 하는 양자역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아인슈타인이 광양자 가설로 광전효과를 설명하였고, 루이 드 브로이는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는 물질파 이론을 제창하면서 양자역학의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형성되었으나, 결국 같은 현상을 기술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통일된 양자역학 체계로 통합되었다. Wikipedia 1925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주장하였으며, 이는 오늘날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로 자리 잡았다. 


1940년대 후반, 리처드 파인만과 도모나가 신이치로 등은 양자전기역학(QED)을 완성하였고, 이처럼 상대성이론을 양자역학에 적용한 이론의 총칭이 양자장론이다. 또한 일반 상대성이론은 휘어지는 시공간의 역학을 기술함으로써 블랙홀이나 중력장이 강한 대규모 천체 현상까지 설명할 수 있게 하였다. 현재의 물리학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각각이 거시 영역과 미시 영역에서 잘 작동하지만, 이 둘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로 초끈 이론과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이 연구되고 있다. 

 

오늘날의 정보화 시대는 이처럼 축적된 물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협력하여 이룬 결과물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MOSFET(금속 산화막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의 발명이다. 강대원 박사는 1959년 벨 연구소에 입사하여, 이듬해인 1960년 이집트 출신의 마틴 아탈라 박사와 공동으로 MOSFET을 최초로 개발하였다. 당시 강 박사의 나이는 불과 29세였으며, 이전까지 상용화의 걸림돌이었던 전력 소비와 집적화의 문제를 MOSFET이 근본적으로 해결하면서 반도체 대량생산의 시대가 열렸다. 

강대원이 발명한 최초의 MOSFET

 

강대원 박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67년 플로팅 게이트 기술을 개발하여,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유지되는 비휘발성 메모리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 기술은 훗날 플래시 메모리, EPROM, EEPROM 등 대용량 저장 장치로 이어져 현대 전자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MOSFET 개발의 공로를 인정받아 강대원 박사는 2009년 미국 특허청 산하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18년 기준 이 전당에 오른 한국인은 그가 유일하다. 


MOSFET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물건보다도 많이 생산된 소자로, 컴퓨터·스마트폰·전자레인지·자동차 제어 시스템·의료 기기 등 거의 모든 전자 장치에 사용되고 있다. 서울 출신의 물리학자와 이집트 출신의 공학자가 뉴저지의 작은 연구소에서 함께 이루어낸 이 발명은, 물리학이 인류 문명을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에서 시작된 물리학의 여정은, 오늘도 양자 컴퓨터와 통일장 이론을 향해 계속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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