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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는 별개였던 세 개의 흐름이 프라하에서 합류하여 큰 강이 되었다. 그 계기를 만든 것은 종교개혁왕궁의 존재였다. 인쇄 기술의 발명관측 장비의 발전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 거대한 흐름은 우리가 대대로 물려받은 고전적인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거대한 흐름의 실제 참여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자리에서 일어난 일은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우주관을 근본으로부터 뒤엎는 일이었다. 이제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1600년 2월, 케플러는 《천체의 회전에 대해》와 기하학적 우주관을 완성하려는 뜻을 가지고 프라하에 왔다. 베인 섬의 성주 브라헤는 점점 혼자의 생각대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행동하게 되었고, 새로운 조수인 케플러에게만 약간의 관측 데이터를 주었다. 장대한 우주관을 검증하려는 케플러에게는 그다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케플러가 도착한 지 1년 반 만에 브라헤는 갑자기 죽고 말았다. 만찬회에서 화장실에 가는 것을 참다가 방광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진상은 알 수 없다. 브라헤의 죽음은 케플러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브라헤가 받고 있던 루돌프 2세의 황실 수학 관리를 케플러가 이어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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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니보르그 천문대

 

그러나 과학사의 관점에서 브라헤가 수집한 방대한 관측 자료에 드디어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관측 자료의 보고였다. 그 화려한 삶이 끝날 때까지 브라헤는 777개의 ‘고정된 별(항성)’의 정확한 지도를 만들었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숫자였다. 이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아무리 많아도 250개를 넘지 않는다. 다음에 밤하늘을 올려다볼 기회가 있다면, 그가 평생 일해 왔던 지루하기 짝이 없는 관측을 실제로 흉내를 내서, 그 업적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다. 몇 시간이나 밤하늘의 작은 빛을 내는 어떤 점을 계속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한쪽 눈은 다른 쪽보다 커져 버렸다고 한다.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떠나서 어쨌든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확실히 크게 그려져 있는 초상화가 남아 있다. 이것이 사실인지, 화가의 소행인지, 아니면 브라헤의 선전 방법이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과학] 루터의 95개 조항

종교개혁은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수도사로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이기도 한 마르틴 루터에 의해 시작되었고, 루터와 북유럽 국가의 사람은 가톨릭교회의 타락에 대한 비판을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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