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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철학자나 수학자조차 과학적 지식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철학을 지탱하는데 기둥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수 세기가 지나면서, 이번에는 로마제국 흥망의 시대를 통해 기독교의 교리로 들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라고 불리는 그리스인 철학자에게 계승되어, 중동의 아랍인 학자나, 기독교 교리의 확립에 크게 공헌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기 기독교 신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 또는 기독교의 해석은 사람의 상식에 잘 맞았기 때문에 지지받았다. 그리고 '신성한 하늘의 움직이지 않는 동자'가 전능하신 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하늘에 대한 해석은 기독교의 권위 아래서 천 년 동안 신성불가침한 것이 되었다.

 

로마제국이 분열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유럽에서 고대 그리스 문명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그 일부는 단편적으로 새로운 수도의 통상으로 중동으로 운반되어 ‘비잔틴 제국’ 문화의 핵심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랍인 학자가 의욕적으로 흡수하면서 6세기에 탄생한 이슬람교와 함께 서서히 북아프리카 지방이나 스페인까지 퍼져나갔다. 이슬람 학자에게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완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또,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 칼리프도 대대로 그 권위를 보이면서 선정을 베풀기 위해 거대한 도서관인 ‘지혜의 집’을 만들었다. 거기에는 오래되거나 새로운 많은 문헌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쓰인 문헌은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사람은 이것을 흡수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아라비아 과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수학, 광학, 의학을 남겼지만, 고대의 우주관도 계승이라는 형태로 강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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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도서관의 학자들

 

 

[과학] 고대 우주관의 불완전성

1085년 스페인의 톨레도 함락 때 아라비아인이 얼마나 다양한 지식을 축적하고 있었는지 밝혀졌다. 이 전투는 지중해를 건너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오랜 전쟁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이 도시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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