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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항로 개척과 그 뒤를 이은 대담한 해양 항해는 전 세계를 변화시켰다. 16세기는 세계 일주 항해의 시대로, 1519년 최초의 세계 일주 탐험은 해양 유럽 국가들의 전례 없는 영토 확장을 예고했다. 신대륙에서 채굴되어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으로 돌아온 금과 은의 부는 막대했다. 16세기 후반 스페인 국가 예산의 5분의 1을 차지한 것은 아메리카 대륙의 은이었다. 이 새로운 세계 무역과 해양 탐험은 수 세기 동안 인식됐던 문제, 즉 지구의 동쪽 또는 서쪽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을 해결해야 하는 훨씬 더 시급한 과제를 가져왔다. 영토 확장 초기에는 별, 달, 행성 측정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실질적인 경제적 압박이 있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정부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상금을 내걸었고, 프랑스에서는 항해술 개선을 위해 왕립과학아카데미를 설립했으며, 영국에서는 1675년 그리니치에 왕립천문대가 설립되었다. 천문학은 당시 가장 중요한 과학적 노력이자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Kolumbus-Santa-Maria.jpg

1492년 콜럼버스의 함대가 바하마에 상륙했을 때 그는 처음에 자신이 동아시아 지역에 도착했다고 믿었다. 다음 세기에 동서 무역로가 열리면서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이 필요해졌다.

 
크로스 스태프(cross-staff), 아스트롤라베(astrolabe) 또는 사분면과 같은 초기 천문 기구는 수평선과 태양 또는 알려진 별 사이의 각도를 측정하여 항해자의 의도(적도의 북쪽 또는 남쪽 위치)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도구였다. 경도는 매우 다르다. 지구는 24시간에 한 번씩 자전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해결책은 바다 위의 현재 위치에서 정오가 언제인지 모함에서의 시간을 알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시차를 통해 현재 위치가 지구를 얼마나 돌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고 정확한 선상 시계(요크셔 목수인 존 해리슨이 완성한 것으로 유명한 크로노미터)는 1700년대 후반부터 사용할 수 있었고,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가격이 별로 저렴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은 '달의 거리'로 알려진 것으로, 달의 위치가 전 세계의 다른 지점에서 별에 대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아는 것에 의존했다. 이를 위해서는 수천 개의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달의 거리표를 작성해야 했다. 최근까지 선박은 크로노미터가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 달의 거리표를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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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찰스 프로드샴(Charles Frodsham)이 제작한 마린 크로노미터 (사진은 무브먼트). 1844-1860년경 크로노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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