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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의 초기 우주관은 모두 같았다. 그것은 바로 지구가 중심에 있다는 《천동설》이었다. 수메르인, 바빌로니아인, 이집트인의 세계는 태양, 달, 별, 행성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고대 문명에 따라 다르지만, 유럽인의 사고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그리스인 철학자가 확립한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그들을 ‘고대 그리스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존재했고, 그들의 우주관은 6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후세에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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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설

 

천구 또는 반구에 고정된 별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가장 먼저 생각한 사람은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메네스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는 당시 지구는 납작한 원반 모양, 또는 와인의 코르크 뚜껑처럼 윗부분이 납작한 원통 모양이고, 그것이 공기 중에 떠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반대로 지구는 원반이 아니라 공 모양이라고 주장한 것은 바로 피타고라스이다. 또한 지구는 태양, 달, 여러 행성이 각각의 궤도를 형성하는 동심구의 중심에 있고, 거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고정된’ 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는 동심구끼리 간격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달과 태양을 포함하여 행성의 수는 7개이며, 항성이 있는 캐노피를 포함하여 각각의 간격은 7개 음계의 비율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천공의 하모니’라는 우주관으로서 2천년간 인류의 마음속에 계속해서 존재하였다.

 

그 후 확정된 우주관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플라톤이 기원전 400년경에 주장한 것이다. 플라톤은 궤도를 완벽한 원형으로 잡고, 여러 행성, 태양과 달은 공 모양의 지구 주위를 원 궤도를 그리면서 공전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론적 설명은 제자에게 맡겨졌는데, 에우독소스라는 인물이 독창적인 《동심 천구설》을 만들었다. 그것은 달의 궤도로 설명할 수 있었다. 달의 하늘에서 보이는 궤도를 설명하려면 달에는 3개의 천구가 필요하였다. 하나는 매일 운행하는 것으로 달이 뜨고 지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달 운행하는 것으로 황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세 번째는 매달 운행에서 조금 축이 어긋난 경우로 위도가 어긋났을 때 움직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고대 천문학자를 괴롭힌 것은 행성의 이동이 불확실했다는 점이다. 지구에 점점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도 하고, 이동이 빨라졌다 느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원래 '행성'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의 '방랑'에서 유래한다. 이를 해결하려고 에우독소스는 모두 27개의 동심구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동시대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완성도 높은 형태로 개량해 나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 주위에는 55개의 동심구가 있다면서 실제 관측 결과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각 동심구는 특정 천체의 궤도를 나타내며, 언제나 완전한 원 궤도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행성은 그가 ‘에테르’라고 불렀던 하늘을 가득 채우는 물질을 통과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부동의 동자(움직이지 않는 채 움직이는 자)'라는 궁극의 존재를 인정했다. 나중에 이것은 기독교의 전능한 신으로 진화한다.

 

그로부터 200년 후, 아테네가 모든 그리스를 제압하고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 만일 아리스타르코스의 생각이 사람에게 받아들여졌다면,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무의미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아리스타르코스의 가설은 기본적으로 완벽했다. 그 우주관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그 주위를 지구와 그 외의 행성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법칙으로 공전하고, 아득히 먼 곳에 항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당시 전혀 지지받지 못했다. 당시의 수준을 너무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 방식을 거스르는 일은 당시에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리스타르코스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 ‘상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만약 지구가 우주 공간을 이동하고 있다면, 바로 위에 던진 물건이 어떻게 바로 아래로 떨어질까? 던졌을 때의 위치는 이동하고 있으니, 물건은 당연히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지구가 움직인다면 왜 바람을 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역시 상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는 과거와 미래의 행성 위치를 계산할 수 있는 일련의 별자리표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48개의 별자리가 게재되었다. 서기 100년경에 고안된 그의 우주관은 지구가 중심에 있고, 다음에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과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고정된 별'(항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 우주관을 실제 관측 결과에 맞추기 위해 고대 그리스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각각의 행성은, 어느 점을 중심으로 한 작은 주회 운동을 하면서, 한층 더 지구의 주위를 공전하는 큰 주회 운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프톨레마이오스는 이것에 더해, ‘에칸트’라는 가상의 중심을 설정해, 행성의 주회 운동은 원운동이라는 자기의 주장을 밀어붙였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은 이렇게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과학] 천동설을 확신했던 아랍인

고대에 철학자나 수학자조차 과학적 지식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철학을 지탱하는데 기둥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수 세기가 지나면서, 이번에는 로마제국 흥망의 시대를 통해 기독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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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B.C.585?~B.C.528?). 만물의 근원은 공기라고 하였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ㆍ수학자ㆍ종교가(B.C.580?~B.C.500?). 숫자를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하였으며,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발견하여 과학적 사고를 구축하는 데에 큰 구실을 하였다.

플라톤(Platon):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B.C.428?~B.C.347?).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생애를 교육에 바쳤다. 철학자가 통치하는 이상 국가의 사상으로 유명하다.

에우독소스(Eudoxos):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ㆍ천문학자(B.C.400?~B.C.350?). 처음으로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동심 천구설을 주장하였으며, 무리량(無理量)에도 적용할 수 있는 비례론을 완성하고 원뿔과 뿔체의 부피를 구하였다.

황도(黃道): 태양의 시궤도(視軌道). 지구에서 보아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운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천구상(天球上)의 궤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B.C.384~B.C.322). 소요학파의 창시자이며, 고대에 있어서 최대의 학문적 체계를 세웠고,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비롯하여 후세의 학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B.C.310~B.C.230). 지구의 일주(日周) 운동과 지동설을 처음으로 제창하였으며, 지구에서 태양과 달까지의 거리의 비(比)를 측정하여 19 대 1이라고 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ㆍ지리학자(?~?). 2세기 중엽의 사람으로 천동설에 근거를 둔 수리 천문서 《알마게스트》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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