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5. 20:32ㆍ과학/과학사
지구 중심 우주관의 가장 큰 난점은 바로 화성의 운동이었다. 만약 화성이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면, 그 운동이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심지어 역행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수학에 자신이 있었던 케플러는 1주일 안에 화성의 궤도를 그리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몇 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케플러는 행성 연동의 진정한 비밀에 다가갈 수 있었다.
올바른 우주관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 우주관의 복잡성을 하나하나 검증해 나갔다. 바꿔 말하면, 행성의 궤도가 태양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 행성의 속도가 균일하다는 것, 주회 궤도의 기본 형태가 어떻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관점의 변화는 매우 중요했다. 첫째, 그는 달걀 모양의 궤도를 생각했지만, 관측 결과와 일치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타원형으로 만들었을 때 모든 게 거짓말처럼 잘 설명되었다. 주전원과 역행의 문제가 모두 한 번에 사라져 버렸고,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화성의 궤도를 완벽한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모든 행성은 태양을 한 개의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 위를 움직이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것은 행성의 운행에 관한 「케플러의 제1 법칙」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다른 두 가지 법칙이 모두 그의 수학적 재능으로 만들어졌다. 하나는 행성의 속도가 상대적이고, 다른 하나는 행성의 태양으로부터 거리와 공전 속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케플러가 발견한 행성의 세 가지 운동 법칙을 요약하면, 제1 법칙은 모든 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돈다는 것이고, 제2 법칙은 태양과 행성을 연결하는 직선이 같은 시간 동안에 그리는 면적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며, 제3 법칙은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태양과 행성의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케플러 법칙」이 이론적으로 증명되려면 75년이 지난 후 태양계를 지배하는 역학을 밝혀낸 뉴턴의 등장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케플러는 내심 복잡한 생각이었다. 행성의 타원 궤도는 관측 결과에 잘 맞았지만, 비밀리에 신봉하고 있던 그 엄청난 '플라톤 입체(Platonic solid)'는 잘 맞지 않았다. 그 이후, 이 두 가지 생각의 조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바쳤다. 그는 《새로운 천문학》을 1609년에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일단 지구 중심의 우주관에 관한 추적은 완전히 지워졌다. 그래서 이 책은 혁명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별로 사람이 읽지 않았다. 모처럼의 수학적 탁견도 그가 집착하는 신비주의 속에 파묻혀 다른 사람은 전혀 따라갈 수 없었다.
그 후 브라헤의 죽음으로 케플러는 남겨진 일에 몰두한다. 이 일은 브라헤가 남긴 방대한 데이터를 행성운동에 관한 표 형태로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케플러는 이것을 끝내 해냈고, 1627년 「루돌프 표」를 출판했다. 이 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도 완전히 지워 버리는 것으로, 이후 한동안 최고의 별자리표로 이용되었다. 수학으로 도출된 케플러의 우주관은 후세 혁명적이라고 평가되었지만 1630년 그가 죽음을 맞이한 시점에서는 이 표야말로 최대의 공적으로 여겨졌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케플러의 혁명적인 해답은 거의 사람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 혁명적이고 참신한 해답을 사람이 받아들이게 하려면 케플러보다 더 설득력이 있고, 인맥이 넓은 사람이 필요했다.
루돌프 표의 권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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